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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평점 :
전쟁 영화, 전쟁
드라마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은 잘 못보는 경향이 있다. 올해 제7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칼과 혀》는 딱히 전쟁 소설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지만 읽는 동안 전쟁, 피, 칼, 총, 죽음과 관련된 문장들이 계속 되기에 개인적으론 비위가 약해지기도 했다. 특히 개, 닭 등 도마 위에서 재료를 다루는 장면이 그랬다. 하지만 주요 인물 세 명이 화자가
되어 각기 자신의 상황을 써내려가는 형식은 중간중간 소설의 긴장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었고, 단숨에 읽어내게 하는 매력은 분명히 있었다.
한 접시의 요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접시에 담긴 요리사의 진심이다. 모든 일에는 흥하고 망함이 있다. 너희들이 매 순간 중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자들의 힘도 무뎌지는 것이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자신이 오늘 하루 소꼬리를 잘라내는데 썼던 그
칼이 진정으로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p.54)
요리사 첸의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은 어느 장면 하나 지루하지
않고 박진감 넘친다. 요리를 통해 상대 지배국의 장수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발상이 신선했고, 소설 속 관동군 사령관인 오토조(모리)가 사실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이 재미있기도 했다. 사찰의 미륵과 일찍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그로 하여금 충분히 허상을 쫓게 했을 법하다. 오토조는
그렇게 제국주의 일본을 잘 표현해주는 인물이 되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또한 혀를 잘리는 수모 속에서도 해방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투박한 외모의
중국인 요리사 첸과 여인으로서 한 개인의 인생이지만 우리나라의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길순, 세 인물을 통해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였다.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만주,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
그를
암살하려는 천재 중국인 요리사 챈,
그리고 그들 사이에 끼어든 조선 여인
길순!
제목이 왜 칼과 혀일까 했는데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요리라는 뜻밖의 주제로
한.중.일의 전쟁사를 끄집어 내면서 도마 위의 칼과 요리의 맛을 쫓는 혀를 말해주기도 하고, 또 죽음을 부르는 칼과 혀를 연상케 한다. 요리의 맛에 그토록 집착하던 오토조의 결국은 끔찍했다. 제국주의의 맛에
빠져있던 일본군의 마지막 또한 모두를 끔찍하게 한
것처럼!
나는 자네 사령관의 혀,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둔다. 나의 목적은, 나의 유일한 기대는, 사령관이
나의 요리에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것. 착각이 아니라면, 계획대로 나의 요리는 조금씩 사령관의 혀를 길들여가고 있다. 내가 이렇듯 목숨을 연장받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놈은 결코 죽이지 못할 것이다. 놈은 제 혀가 기억하는 죽한 그릇의 고소함을 결코 쉽게 물리치지 못할 것이다.
(p.202)
책을 덮으며 궁금해지는 것 하나는 이 책에 등장한 특이한 재료를 이용한
갖가지 요리들이 진짜 있는 요리일까 하는 의문이다. 실제 중국요리는 지방별로 상이하고 그 가짓수도 엄청날텐데... '세상에 없는 요리'로 내기에
맞었다고 하니 소설을 위한 요리를 만들어 낸 작가가 대단한 것 같다. 중국에 가서 요리를 먹어볼 기회가 생긴다면 요리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첸>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또, 길순을 통해 소개되는 선지국과 청국장은 소설가가 담아내고 싶어한 우리의 정서임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