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2 - 하나님을 외면한 세속 이념을 뛰어넘는 오직 예수 2
라비 재커라이어스 & 빈스 비테일 지음, 이상준 옮김 / 두란노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진리를 '이해하라'가 아니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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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수 없다. 그동안 읽었던 몇몇 기독교 변증 책들에 이어 이번 두 저자의 글은 처음 접해보는지라 C.S. 루이스나 팀 켈러의 문체와 비교하며 읽어 보았다. 기독교 변증가로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라비 재커라이어스. 전작 '오직 예수1'에 이은 두 번째 변증책이다. 1권을 못 읽어봤지만 '왜 예수여만 하는가'라는 세상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임을 변증해 주는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종교가 궁극적으로 신(神)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라면, 각각의 종교는 분명히 다른 산이다. 길만 다른 것이 아니라 최종 목적지도 다르다. ‘손에 손잡고’의 휴머니즘적인 이상으로 접근한다 해도 본질이 다른 종교들을 통합하거나 단일화시킬 수 없다. 더 이상 종교 다원주의적인 접근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현실의 문제를 풀고, 참된 해답을 주어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이르게 해 줄 이는 오직 예수, 한 분 뿐이다! ('오직예수1' 출판사 서평)

1권에 이은 이번 <오직 예수2>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현대 사상들 즉, 무신론, 과학주의, 다원주의, 인본주의, 상대주의, 쾌락주의를 비판하고 그에 대한 기독교의 진리를 설파했다. 학문적인 접근이 어렵기도하지만 중간중간 들려주는 풍성한 예화는 좀더 쉬운 이해로 이끌어준다. 다음세대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가르쳐지는 인본주의 교육은 만연화 되어 있는데 교회와 교회교육은 이에 대해 말하지도 않고 말할 장도 마련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의심을 가지고 질문해 올 때, 그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주고 같이 고민함으로 또 다른 질문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음에도 음지에 덮어버리는 주제들이 이제는 논쟁이 아닌 변증으로, 설득이 아닌 사랑으로 뿌리내리면 좋겠다.

기독교의 진리는 사람들을 영생으로 이끄는 것이다. 진리 자체이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더 이상 진리는 지적 개념이나 감성적 상징이나 종교적 관념이 아니다. 진리는 나를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를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라. 거기에 구원이 있고,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고, 삶의 존재 이유가 있다.
(옮긴이의 글)

<만들어진 신>으로 유명한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에 대한 변증. 무신론자들이 항상 들고 나오는 악의 문제를 살펴본다.

우리는 신에게 잔학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으킨 잔학 행위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면제를 시켜준다. 그리고는 그런 것들을 비극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원인 제공의 책임에서 쉽게 면제한다. 반면 거대한 세상의 구조 안에서, 하나님은 비극들에 대해서도 주관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선악에 대해 부정한 범주들을 되살리지 않고는 신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싸움의 무게 아래 이중적인 현실이 놓여 있다.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 선하고 어떤 것들은 그 자체로 악하다. 무신론은 이런 개념들을 지탱할 힘이 없다.(라비 재커라이어스)

얼마전 어느 장관 후보자의 발언과 관련되어 '젊은지구론'을 주장하는 창조과학회 관련 뉴스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과학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비롯된 과학주의의 오류를 말하는 빈스 비테일.

설명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과학이 설명해 낼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너무나 순박한 생각이다. 심지어 "진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라는 주장 자체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될 수가 없다. 게다가 과학의 진보가 신의 부재를 증명한다는 가설과 정반대로, 오히려 지난 세기에 이룩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전진 두 가지, 즉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는 사실과 우주는 생명체를 위해 미세 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모두 강력하게 신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쾌락주의에 관한 빈스 비테일의 글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 보다 교회 안에 있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기독교 신앙을 따르면서도 실상은 "행복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된다"는 쾌락주의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따르고 있는가. 특히 '성'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독단적이고 구시대적인 규칙으로 보지 말고 일종의 언어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주의깊게 읽었다.

쾌락주의는 실패한다. 성적 충족은 누구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재정적 안정은 그 누구의 정체성도 안정시켜 주지 못한다.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들과 가장 성적 자유를 누리며 산 사람들이 연이어 인정하는 바는, 쾌락주의는 사람을 공허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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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변증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책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복음의 진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고 나가는 뭉클한 책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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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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