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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불세출의 천재로 추앙받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승강기 옆에 서 있다.
남자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스타코비치.
스탈린 정권의 눈밖에 난 그는 음악을 금지 당하는 것은 물론,
언제 끌려갈지 몰라 매일 밤을 이곳에서 지새운다.
친구도 동료도 모두 은밀히 사라졌다.
그렇게 그들은 그를 죽이는 대신 살려놓고,
살려둠으로써 그를 죽였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이번 책이 처음이었다. 수상 경력 작가들의 작품이 늘 그러했듯 쉽지않은 소설이었지만 한 실존 인물의 삶을 배경으로 역사와 예술, 삶과 죽음,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 전반에 담긴 작가의 고뇌와 외침이 무게있게 전해짐은 확실했다.
<시대의 소음>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생애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그래서 음악적 배경과 역사배경 지식을 사전에 미리 참고하여 읽어내려가면 한결 읽어내기가 좋다. 우리 역사에서도 독재정권 아래에서 죽음, 고문의 위협 속에서 분투하며 예술문화의 장을 지켜내었던 이들이 있었음이 생각나는 소설.
층계참에서, 비행기에서, 차 안에서 서사되는 소설의 이야기. 각기 다른 공간이 각기 다른 시간의 주인공의 달라진 상황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공통된 것.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다."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최악의 시기가 끝난 듯한 역사.
최악의 시기는 지나간 것인듯 한 역사.
그러나 지금도 어쩌면 여전히 최악의 시기는 아닐까?
한 인물의 전기로써 읽는 것이 아닌 소설로써 만나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가의 특별한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음악가로써 큰 명성을 얻기도 하지만 이후 국가의 압제, 협박 아래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질, 고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하나의 못이 다른 것을 몰아내듯이, 하나의 두려움이 다른 두려움을 몰아낸다. 그래서 고도를 올리는 비행기가 단단한 공기층을 들이받는 것처럼 보이듯이, 그는 눈앞의 부분적인 공포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희생 제물이 되고, 산산조각이 나고, 즉시 잊혀지는 데 대한 공포. 공포는 보통 다른 감정들까지도 모두 몰아낸다. 하지만 수치심만은 아니다. 공포와 수치는 그의 배 속에서 행복하게 같이 뒤섞여 빙빙 돌아갔다." (p.91)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야 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무심결에 슬그머니 떠오르도록 그저 놔두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죽음에 친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말로써든, 그의 경우에는 음악으로든. 우리 삶에서 죽음에 대해 더 일찍 생각할수록 실수도 더 적게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