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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4월
평점 :
"섹스 스캔들이 일어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소년 소녀들의 불안과 가장을 대담하게 파고드는 이 작품은 신비롭고 달콤한 문장으로 사춘기의 정수를 냉철하게 잡아낸다. 트럼프 카드의 한 팩처럼 조각난 장면들을 절묘하게 연결하며 연극과 현실을 노련하게 넘나드는 극적인 구성은, 짜릿한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빛나고 순결한 얼굴 속에 감춰진 욕망과 질투, 그 은밀한 폐쇄성을 공유하는 10대들의 당돌한 연기를 생생하고 매혹적으로 비춘다." (출판사 리뷰)


엘리너 캐턴의 맨부커상 수상작 <루미너리스 1,2>를 읽을 때 어렵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그래서 그녀의 23세 데뷔작이라는 이번 소설은 좀더 용기내어 읽어야겠다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리고 완독했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 만큼이나 정말 독창적인 소설이다. 한창 자유분방한 고등학생들, 주 등장무대는 연기학교, 학생들이다. 펼쳐놓은 솔직하고 활기 넘치고, 복잡 미묘한 문장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남자 교사와 여학생의 스캔들로 시작되는 소설 전반부. 그러나 한국적(?) 정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 부분들을 감안하며 읽어나가야 한다. 월별, 요일별로 기록된 짧은 단락의 사건, 대화들은 얽히고 섥혀 있다.
섹스폰 선생님과 학생들, 연기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 부모들과 아이들,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 빅토리아와 동생 이솔드,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이 현실과 연극 리허설이라는 두 가지 장에서 예리하고 압축된 언어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마치 등장인물 모두가 무대 위의 연기자인 듯 뿜어내는 대사들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특히 이솔드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대목들이 그렇다.
이솔드가 소리를 질렀다.
"병이 퍼지지 않게 우리를 한 장소에 모아놓고 백신을 찾으려고 그런다고. 우리를 콘크리트 바닥에 세워놓고 옷을 벗기고 물을 끼얹고 사포랑 테레빈유랑 회색으로 변한 오래된 와이셔츠로 만든 천으로 벅벅 문지르겠지. 언니가 언니랑 만난 적 있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검은 손자국을 남겼고, 특히 나는 완전히시커메져서 잉크를 뚝뚝 떨어뜨리고 다니는 것 같은 거야. 내 팔다리를 타고 손끝에서 뚝뚝 떨어져서 바닥에 점점 더 얼룩이 커지는 거지." (p. 141)
"하지만 난 핵심을 말하려는 거야. 그저 관객이 꽉 찬 객석 앞에서 무대에 서 있을 때 '진짜'라는 건 아무 쓸모도 없는 말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거지. '진짜'라는 말은 무대에선 아무 의미 없어. 무대에서는 진짜처럼 '보이는' 데에만 신경을 쓰지. 진짜저럼 보이기만 하면 그게 진짜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치 않아. 상관없어. 그게 핵심이야." (p.205)
청소년들의 감취어진 성적 욕망, 동성애 등을 복잡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신선한 충격임에는 확실하다. 더불어 소설 전체에서 젊은 작가의 넘치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나본 그녀의 작품이었으니, 다음 작품을 만날 때는 좀더 쉽게 만날 수 있으려나? 어쨌든 나의 독서 영역에서는 새로운 도전이 되는 책이었다.
애비 그레인지의 여자아이들은 상냥하게, 사납게, 가끔은 악의적으로 서로를 규정한다. 그것은 5학년 말과 마지막 학년 때 칼날처럼 날카롭고 갈고닦는 기술이다. 각각의 아이들이 나머지 아이들의 이미지를 만들거나 부술 수 있기에 그건 그들의 기술 중에서 가장 어둡고 치명적이다. (p. 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