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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말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하는..."
그게 바로 소설일까?
그게 바로 현실일까?
몇년간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있었다는 작가는 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날들을 지내며 절망적인 죽음들이 이어졌음을 회고했다.
그리고 희망도 없이 조용히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 여러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참고와 영감이 된 것은, 몇년간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현실...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가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이라는 타이틀.
그 주인공인 만큼 혼불문학상의 정신, 색깔이 얼마나 담겨있는지가 관건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이지만 현대적인 소설. 이번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은 그렇게 우리시대의 현실, 현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의 목숨 값이 이렇게 싼 시대가 있었던가. 누군가 목숨을 걸고 이야기하다 결국 목숨을 끊어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죽겠다고 하소연하면 죽으라고 냉소한다. 죽고 싶으나 죽지 못해서 골방에서 진통제를 한 움큼씹 집어 삼킨다. 동정은 사치이고 특권이다. 자신들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감수성 제로의 인간이 되었다." (p.204)
"점점 더 알 것 같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나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양심을 팔고 정의를 외면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살아가는 우리를, 사람들은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 것처럼 가진 자가 옳은 것이 되어버린 세상." (p.248)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p.261)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감성보다는 이성을 건드린다.
등장인물들은 이름도 없다. 정신과 의사였던 사라진 쌍둥이 언니의 기록을 찾아 그 자리를 지키는 기록에도 없는 여자 D, 15년 동안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남자 X, 그리고 X의 감시자이자 약혼녀가 된 Y,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Y의 엄마, 그리고 소설가 Z, 또다른 이들... 모두 스파이들의 이야기이다. 실타래가 풀릴 것 같은 해결과 답을 던져주지 않으면서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문장 하나하나에 반어와 은유, 사유가 가득하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던 내게는 오히려 더 편안했던 책이라고할까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슬프고 화가나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D가 봤다는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야기 중, 작가의 희망을 읽어내 보았다.
"누군가에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물었을 때 그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대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사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그 모든 깨달음으로부터 치유가 온다고, 스스로 돌아보며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눈을 뜨고 공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참여하라고. 진부하지만 늘 사랑은 정답이죠. 그 이야기가 저에게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인생 문제의 해결책처럼도 보였어요.
지금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 이 나라, 이 지구, 그리고 결국은 나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p.287)
겉으로 드러난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이야기 구조는 마치 스파이소설처럼 보여지지만, 전혀 스파이소설이 아닌... 뉴스를 통해서 늘 접하는 이 시대의 모순과 불합리에 <책>이라는 매개체로 '저항','혁명'을 살포시 보여주는 소설.
"매순간 한 사람 한 사람이 피우는 장미가 모여 백만 송이 장미가 된다고. 십 년도 더 된 그 생각에 이제 답한다. 고요한 밤의 눈처럼 아침이 오면 알게 되는 달라진 세상이 있다고." (p.309)
감시시대, 스파이, 고요한 밤의 눈... 시적이지만 현실적고, 현실이지만 희망을 말해주는... 표지 색깔만큼이나 강한 느낌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