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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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목, 박완서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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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작가정신 펴냄

 

 

2011년 1월 22일 타계한 故 박완서 작가님을 그리워하는 독자들이라면 한결같이 반가워할 만한 책이 나왔다. 책의 서문이나 발문을 차분히 읽다보면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느낌이 온다. 박완서 작가님의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을 이렇게 따로 모아 놓은 책을 펴낼 생각을 하다니 '작가정신'도 참 멋지다.

 

놀랍게도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기도 하고 불끈 용기가 솟기도 하고 눈물이 어리기도 합니다. 타인을 생각하고 전체 속에서 자신을 낮추는 가식이 아닌 겸양, 진실과 책임과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반성이 밑받침이 된 오만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처음 읽는 것도 아닌데 재미가 있어서 그다음은 무얼까 아껴가며 넘기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장녀 호원숙)

 

 

나이 마흔,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왠지 더 친숙한 마음으로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하나 하나 만나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그간 제대로 읽어본 박완서 작가의 책이 거의 없구나 싶어 부끄러워지다가 금새 이렇게라도 맛보니 참 좋다 싶다.

첫 산문집을 내면서, 책 인세를 받으면서 부끄러움을 굳이 감추지 않은 글귀들, 같은 책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올 때 글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정작 그러지 못했던 부족한 '초판' 그대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출판사의 독려와 노고에 항상 감사해 하는 마음들... 작가의 솔직한 문장들에서 따뜻한 인간미와 사람 냄새가 뭍어난다.

처녀작 [나목]에 담긴 마음은 각별했다.

 

 

요새도 나는 글이 도무지 안 써져서 절망스러울 때라든가 글 쓰는 일에 넌더리가 날 때는 [나목]을 펴보는 버릇이 있다. 아무데나 펴들고 몇 장 읽어내려가는 사이에 얄팍한 명예욕, 습관화된 매명으로 추하게 굳은 마음이 문득 정화되고 부드러워져서 문학에의 때묻지 않은 동경을 들이킨 것처럼 느낄 수 있으니 내 어찌 이 작품을 편애 안 하랴.

23쪽,[나목] 재출간 발문

 

 

1977년 소설집 [창밖은 봄]의 서문을 통해서 작가 자신이 쓴 '박완서 연보'를 통해 그녀의 삶을, 초기 작품을 썼던 시기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머리 꽁당이를 쌍둥 잘라 단발머리를 시키더니 서울로 데려가 국민학교에 입학시켰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며, 깨어있는 의식과 앞서가는 교육철학이 있었던 '부모'가 흠칫 부러워진다. 결혼해 1남 4녀를 다 키우고 마흔이 넘어 시작한 작가생활이 참 도전이 된다. '나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나는 잘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만 하다 어느새 마흔 중반이 된 까닭 때문인가 보다.

처녀작 이후 자발적으로 글을 쓸 겨를 없이 청탁에 덜미잡혀 쫓기듯 글을 쓴 세월을 '고달팠다' 말한다. 독자에겐 글쓰기가 그저 꿈 같고, 멋진 일거리로 생각되지만 작가들에게는 '고달픔' 이 되는 것, 그 고단함에 공감해본다. 그런데 1980년 샘터에서 출간한 동화집 [마지막 임금님]은 글을 쓰는 동안 거짓 없이 순수했기에 행복했다고 한다. '순수한 마음'을 찾고 싶다면 동화를 써볼까? 한참 후에 나온 장편동화 '부숭이는 힘이 세다'와 동화집 '자전거 도둑'등은 손주를 본 육십 넘어서 쓴 동화이니 어찌 더 말하랴.

소설 속 화두가 되는 6.25, 독립투사의 후손, 이산가족, 결혼, 분단... 등에 관한 작가의 생각과 개인적인 신앙,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을 보여준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읽을 때는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 했다. 이상문학상에 당선된 [엄마의 말뚝2]가 실린 문학사상사의 [침묵과 실어]의 발문을 읽으면서는 어떤 작품일까 너무 궁금해지기도 했다. "저는 그 작품이 활자가 되어 돌아다니는 동안 줄창 이렇게 불편했고 불안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소설이기 이전에 한바탕의 참아내지 못한 통곡 같은 거였습니다. 저는 통곡을 참아내지 못한 자신에게 정이 떨어졌고 쓴다는 것은 과연 뭘까? 하는 근원적이여 주기적인 질문으로 자신을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닦달질해야 했습니다." 이런 수상 소감이라니... 어떤 작품이길래.

작년 요맘때 작가정신에서 개정판으로 펴낸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초판 발문도 반갑고 이걸 읽고 개정판의 장녀 호원숙 수필가의 서문을 읽어보면 더욱 의미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글쓰기의 연륜이 쌓여도 작가에게 '쓰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싶은 대목들, 새삼 작가들에 대한 고마움이 올라오기도 했다.

 

 

소설이 점점 단명해지다 못해 일회적인 소모품처럼 대접받는 시대건만 소설 쓰기는 손톱만치도 쉬워지지 않는구나. 억울하면 안 쓰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웅진에서 성장소설을 써보라는 유혹을 받았을 때, 성장소설이란 인물이나 줄거리를 새롭게 창조할 부담이 없이 쓸 수 있는 자서전 비슷한 거려니 했기 때문에 솔깃하게 들었다. 요컨대 좀 쉽게 써보자는 배짱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바로 보기처럼 용기를 요하는 일은 없었고, 내가 생겨나고 영향받은 피붙이들에 대한 애틋함도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105쪽, [그 많던 상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서문

 

 

읽는 내내 내 어머니도 아닌데 내 어머니의 글귀처럼 참 자상하고 친근한 느낌이었다. 책 말미에 작가 연보, 작품 연보, 작품 화보가 부록으로 상세히 실려있어서 박완서 작가님 팬이라면 소장책으로 더욱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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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시대를 향한 자상하고 진실된 증언

박완서 문학, 그 시작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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