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0 영 ZERO 零

김사과 지음, 작가정신 펴냄

 

 

1575271467746.jpg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식자들의 속삭임

은밀하게 일어나는 투명한 학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가 텅 빈 '제로'라는 것에 대하여

 

 

소설은 오랜만이다. 김사과 작가에 대해 궁금해 검색해보니 젊은 나이에도 이미 많은 소설을 썼고 특히 제목에 '0'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더욱이 이번 책은 '0'이 네번이나 반복되는데 책 부록에 실린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것이 곧 '0'이에요. 잡아먹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먹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즉 플러스 마이너스를 합쳐 제로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제목으로 적절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0을 반복적으로 쓰는 건....... 저도 왜인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중편소설이지만 금새 다 읽었다. 주인공 ‘나’는 타인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사실 이 소설은 무서운 소설이다. 피 튀기는 장면도, 끔찍한 장면도 없는데 냉냉하고 무서운 기류가 소설 내내 흐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먹잇감이 되어 망가지기 전에 먼저 타인을 내외면적으로 망가뜨려야한다니 얼마나 살인적인가!

 

 

1575357561675.jpg

 
 

누군가 나에게 성공한 식인종으로서, 예비 식인종들에게 해줄 말, 나누어 줄 지혜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하하! 솔직히, 사람을 잡아먹는 데 지혜 따위 필요 없죠. 그리고 식인종이 뭐 특출난 종족이 아니다. 식인종 또한 식인종에게 잡아먹힌다. 세기의 식인종도 다른 식인종에게 잡아먹히는 순간 쫑 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다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55쪽

 

 

이렇게 주인공은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 다른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린다. 소설의 이런 발상이 현실 속에서 있을까? '식인'이라는 표현이 비록 비유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 속 '잡아먹는' 사람들과 그들의 은밀하고 조용한 전략, 반면 '잡아먹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는 주인공 '나'를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타입의 인물 또, 뱀파이어적인 경향의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제 성연우가 헤어지자고 했다." 이렇게 첫 문장이 시작되는 이야기. 그러나 성연우와의 이별은 극도로 준비된 것이었고, 계속 되는 등장인물들에게 심지어 자신의 엄마에게까지도 '먼저 잡아먹기' 위한 행동들이 이어지고, 그런 태도는 점점 더 강도가 쎄지게 된다. 분명 이해가 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이 계속되지만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공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끔찍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김지영 선배는 미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인간내면의 이런 '악'의 요소를 독특한 설정으로 소설 속에 잘 담아낸 것 같다. 주인공 '나'가 어쩌면 진짜 솔직한 캐릭터일까? '각별한 타인의 불행'에 관한 주인공의 이 논리로부터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독성도 좋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이 남는 소설이다.

작가정신에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소설, 향> 시리즈를 계속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있게 지켜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