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와 상하이박물관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엄청난 수의 유물을 보면서 오랜 역사를 자랑할 만하겠구나 싶었는데 문제는 중국어 해설을 들을 수 없으니 영어 해설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거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겨우겨우 유물 관람을 마쳤다. 가장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여러나라에서 쓰고 있는 영어, 영어 실력이 좀더 좋았다면 나 스스로도 박물관 전시 관람이 더 즐거웠을 테고 아이에게도 잘 설명해주며 뿌듯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차에 만나게 된 책이다. <나를 잃기 싫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서 하는 영어 공부가 아니라 '나를 잃기 싫어서' 시작한 영어 공부라니!
사정은 이랬다. 미국일리노이공대 대학원에서 학업을 한 저자는 미국 이민 생활 18년차다. 두 차례의 계류유산 후 만난 예쁜 딸. 그러나 아이를 만난 행복도 잠시 심한 육아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육아만 하다 지친 나머지 데이케어에 아이를 보내게 되면서 자신의 얕은 영어 실력으로 앞으로 영어권에서 쭉 자라갈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18년을 살았을 정도면 얼핏 생각해도 내가 부러울만큼(^^) 영어를 잘할 것 같은데, 성장할 아이를 향한 애정과 영어 공부에 대한 도전이 참 특별하다 싶었다. 한창 독박 육아로 힘들었던 나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한국어로 쓰인 책 한 권도 못 읽고 지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어 책도 아닌 영어 책으로 하루 정해진 분량씩 리딩하며 자존감을 회복해나간 경우라니 어떤 일을 통해 작은 성취감이 반복될 때 일어나는 좋은 결과의 한 예가 되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