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관한 좋은
예로 포도원에 늦게 일하러 들어간 일군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려준다.
또, 요한복음 3장 16절을 통해 '독생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이 '취약함(vulnerability)'에서 기인함을
보게 한다. 니고데모에게도 어려웠던 '거듭남'에 대한 놋뱀의 비유는 세상이 '믿음'을 불편해 하는 대표적인 예가 되기도 했다. 놋뱀을 바라보는
순간 내 죄와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 기독교의 믿음은 '나의 죄'를 먼저 대면하고 인정해야하는 불편한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니체, 데카르트 등 철학자들의 철학과 믿음을 풀어주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던 시대적 배경을 알고나니 철학과 신학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 같았다. 당시 신은 교황이나 교회
권력자들이 자신의 절대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기독교 신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를 향한 일침이 아니었을까. 또,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제2의 로마서로 지칭하며 믿음의 공식을 인문학으로 풀어내주는 장도 참 좋았다. 주인공 장발장처럼 내일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세상의 법은 공평하지 못하지만 기독교는 '믿음을 통해 소통된 사랑의 취약성'으로 희망이 되어준다. 우리는 그 사랑의
취약성(vulnerability)으로 타자 앞에 설 수 있어야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이런 정체성을 잃어버린 지금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대해
'우리는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믿음을 불편해하는 세상을 불편해하고 담을 쌓는 게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교회, 환난을 통해 진짜 믿음을 가지는 교회, 완전한 끝에서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장 가까이 나아가는 교회되길
소망해본다.
마지막으로,
- 천국을 내가 죽어서 갈 나라로 더 크게 소망했지,
내가 살아서 오늘 이 땅에서 살아 내는 나라로 꿈꾸는데는 소홀했음이
부끄러웠고
- 가장 능력이 많으신 분이 가장 연약한 아기가 되시고, 가장
거룩한 자가 더러운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죽음을 알지 못하는 초월자가 죽음을 경험하신... 독생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취약성'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사랑의 취약성이 희석되어진 나와 교회의 모습이 부끄러웠고
- 세상과
교회 사이에 울타리를 쌓으며 소통하지 못함으로 점점 더 '불편한 믿음'을 만든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