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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회도 살인사건 ㅣ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5
윤혜숙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평점 :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005
계회도 살인사건
윤혜숙 장편소설
《계회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한우리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던 작품이 이번에 서해문집을 통해 새
표지와 약간의 개정을 거쳐 《계회도 살인사건》로 출간되었다. 표지 도안
정할 때도 함께 참여했는데 조선시대의 살인사건을 다룬 역사추리소설이라니 나에게는 새로운 장르라 기대가 많이 되었다. 청소년문학이다 보니 피튀기는
잔인한 살인극은 전면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 '진수'가 아버지의 살인범을 밝히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며 내적갈등을 겪어가는 동안 함께
뛰고 마음조리며 긴장감이 끊이질 않는 이야기이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낯설기만 했던 단어 '계회도'. 계회도는 '사진이 없던 시절, 사람들이 환갑연.퇴역모임.봄맞이 시회 등 각종 모임의 소중한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 남긴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친교모임 단체 사진을 대신한 그림이라 보면 되겠다. 어진이나 풍속화 등은 잘 알고 있었는데
계회도라는 그림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조선시대 '그림' 문화에 대해 덤으로 공부한 셈이다. 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직된 문인 계회가 순수하게 열리면 좋았겠지만 사대부의 권력을 통해 신분상승의 기회를 삼고자 했던 욕심(?)이 결국 살인을 불렀던 사건의 처음과
끝을 보는 소설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도 지식배경이 많이 필요할텐데 거기다 '그림
그리는 일'과 관련된 특별한 영역을 다루기까지 또 얼마나 많이 공부했을까 생각하니 작가분의 노력이 짐작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단어 하나 하나가 생소했다. 지전, 화원, 계회도, 화사, 환쟁이, 어진화사...등등.
좀더 전문적인 용어들은 주석표를 통해 이해를 도왔고, 그림과 관련된 용어와 고어들은 이야기의 흐름상 얼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사극을 보면 어렵기도 하지만 사극만의 재미가 있는 것처럼!
'계회도'를 그린 후 의문의 죽임을 당한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려는 진수, 계회도와 아버지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그 그림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림에 욕심을 부리는
사대부, 사대부들의 그런 욕심을 또 이용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묵묵히 그림그리기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들, 분주하게 조명해 나가는 이야기를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화원에서 일하는 진수. 지수는 진품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모사가이기도 하다. 진수의 아버지는
몇해 전 검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렇게 덮여졌던 살인사건은 누군가 '인국'을 살인범으로 밀고하면서 다시 재수사 과정을 겪는다. 진수는 가족의
안위보다 그림 그리는 일에만 빠져지내던 자신의 아버지보다 오히려 자신과 어머니를 살갑게 돌봐준 인국을 더 믿고 의지하고, 인국이 살인범이 아님을
밝혀내고자 동분서주하게 되는데...
열일곱 진수에게 남겨진
아버지상, 책을 읽는 청소년들 중에도 공감이 많이 될것 같았다. 나에게도 그 나이 때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이었던 게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진수를 양자 삼고자 했던 또다른 아버지상 '장 화원'이란 인물과의 관계에서도 오해가 일어난다.
그림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의 모임을 쫓아다니며 계회도를 그리고, 쥐꼬리보다 못한 그림값에도 허허거리는 아버지.
푼돌 벌이에다 화사 대접도 제대로 못 받는 그런 아버지가 싫고 미웠다. p.50
3년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진화사' 건으로 모인 비밀 회합의 계회도를 그렸고, 모든 사건이 문제의 그 '계회도'로 부터 시작되었다. 삼촌처럼 살갑게 진수와 어머니를
챙기던 인국이 계획적인 살인범일지, 인국이 자신의 밀고자로 지목한 장 화원이 살인범일지, 아니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김
대감일지...마지막 챕터에서 그 답을 얻는다.
두루뭉술하게 말했지만 범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는 투였다. 살해범이 장 화원일 수도, 인국일 수도, 김
대감일 수도 있다니. 인국이 이 일과 연루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둘의 말싸움을 들으며 송화원은 연신 혀를 찼다.
p.146
살아생전에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들, 그러면서도 그림 솜씨며 하는 일이며 아버지를
쏙빼닮은 진수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아버지를 이해하고 재발견해가며 성장해간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문학으로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모든 현장과 사건 속에서 내적 불안과 외침, 추리, 추측 등을 끊임없이 말해주는 진수의 독백과 시선은 내적 외로움, 갈등,
불안을 잘 표현해주었다. 또, 김홍도, 안견 등 실존인물들이 거론되기도 하는데, 비록 계회도를 그리며, 진품을 따라 그리는
모사가로 살지만 진수 부자는 '그림'에 대한 애정과 도리를 지키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평민 계층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신분계층간의 부조리도
말해주고싶어한 소설로 보여진다.
때론 여리고 투덜거리며 불만
많은 캐릭터지만 반면 용기있고 당돌한 면이 매력 있었던, 한번 본 그림은 머리 속에 저장하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다는 설정의 주인공 진수가 그렸을
진품 같은 모사품 그림들이 실제로 있다면 꼭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화원으로서의 명성도, 부도 갖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알았고, 평생 그것을 지키시면서
사셨어요. 아버지는 양반들의 눈요기를 위해서도, 벼슬아치들의 권세를 위해서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셨어요. 살아가면서 위로가 되고 힘들고 괴로울 때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고 다시 살아 낼 힘을 주는 그런 그림이 어떻게 양반의 개가 되려고 하는 형님의 그림보다, 기껏 권력을 자랑하는데 쓰는
김 대감의 그림보다 더 하찮고 쓸모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겁니까?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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