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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그림을 그리는 방법 - 무로이 야스오가 알려주는 ㅣ 그리다
무로이 야스오 지음, 김재훈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0년 10월
평점 :
아이가 어릴 때 일이었다. 너무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다고 갖고 싶다고 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게 상품으로 나온 것도 아닌지라 사줄 길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림으로 그려줄께 하고서 보고 그리니 얼추 비슷한 모양이 나왔다. 완벽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아이는 만족해하며 좋아했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도 여전히 아이는 갖고 싶은 인형이나 캐릭터가 있으면 '엄마 그려줘'하며 들이민다. '또?'하며 난색을 표하는 척하지만, 실은 아직까지 내 그림을 좋아해 주는 아이가 고맙다.
<최고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좀 더 잘 그리고 싶어서 어떤 기술이 있나 싶어서였다. 나루토,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을 작업한 경력이 있는 무로이 야스오가 알려주는데다가, 첨삭해설 80점까지 있어 볼거리도 풍부했다. 20년간의 그림 인생을 담아내 읽을거리도 풍부하다. 그림의 '기술'보다는 '기본'을 더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고수의 비법이라고 할까? 자잔한 싸움 기술보다 대가가 대기위한 기본 자세를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 무술 영화를 보면 체력 훈련을 하고 철사장에 손을 담그며 기초를 쌓아가는 모습들과 겹쳐졌다. 길게 그리고 잘 또한 즐겁게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무엇이 중요한지를 짚어주는 책이었다.

그림 그리기 팁은 80점의 그림들에 메모되어 있는 첨삭들을 통해서 짐작이 가능했다. 원본도 내 눈에는 엄청나기만 했는데 더 보완하면 좋은 점들, 놓친 부분들에 대한 메모는 더 놀라웠다. 정지된 화면 같던 그림이 무로이 야스오가 몇 개의 팁을 알려주며 수정한 그림을 보니 속도감이 달랐다. 어떤 표정인지 확실히 와닿지 않던 그림도 첨삭을 보니 확연히 달랐다.

6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 처음은 바로 '그리는 일이 좋아진다'여서 좋았다. 어떤 일이든 좋아야 되는 것이 기본인데 이를 놓칠때가 많으니 말이다. 나 역시 내가 그림을 완성해서 짜잔하고 아이에게 보여줬을 때 좋아할 모습을 기대하니 즐겁고, 그러니 완성하게 되었기에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p.12
의무감으로 즐겁지도 않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유한한 인생에서 가성비가 나쁜일.
즐겁지 않은 일은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p.14.
그림을 전혀 그려보지 않은 사람은 무엇부터 그리는 것이 좋을까요?
무수한 콘텐츠 중에서 한 장을 골라서 그리는 그 '선택'이야말로 자신의 재능이자 센스입니다.
그리고 정말 공감한 말.
p.18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진짜로 그리고 싶은 것'이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가 그려달라고 하기 전에는 그림을 먼저 그리는 경우가 잘 없다. 뭘 그려야 하는지 몰라서였다는 것을 덕분에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전 읽은 <드가*이연식>에서도 느낀점이었는데, 한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선 자신이 하려는 일의 기본을 제대로 익혀야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전통과 다른 새로운 형식일지라도 그 분야의 기초 기술을 익히고 나서야 그게 의미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 점을 확인했다.
p.32
솔선해서 잘하는 사람을 따라하세요. 앞서간 사람들의 기술없이 잘 그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보면서 그리지 않으면 절대로 잘 그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보지 않고 그리면 안 됩니다.
그림은 기술입니다. 개성은 기술을 얻은 뒤의 문제입니다. 우선 이론적인 순서를 확실히 배워야 합니다.
예술분야는 왠지 영감이 탁하고 내려오거나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이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본이 있은 후에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법이라는 말이 너무나 와닿았다. 즉, 그 기술을 연마한다면, 천부적 소질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의미이기에 자극이 되었다.
p.34
그림은 일단 기술입니다. 기술에는 역사, 문법, 작법,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빨리 깨우친 사람이 즐겁게 그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입문자를 위한 사람들에게 생각할거리를 준다. 또 학교 때 주위에 자신은 만화만 그려 성공하겠다며 기본적인 공부도 하지 않고 책이나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있던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더 발전할 수 있었을텐데 하고 말이다. 지금 자신의 아이가 혹시 만화 그리기에만 빠져있다면 그 방향을 잡는데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저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 이상으로 좋은 작품을 보고 따라해보고, 기본적인 공부들도 해야 제대로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기에. 실제로 지인의 딸이 맨날 그림만 그리고 딴 건 안 한다길래 책의 일부를 찍어 보내줬더니 너무 도움이 됐다는 답변을 받았다.

입문자뿐만 아니라 20년 그림인생의 노하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미 어느정도 실력을 쌓은 이들에게도 유용한 내용이 많다. 자신의 성장곡선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타성에 젖어버리는 것도 경계하게 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p.166
즐겁게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에서 보면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뛰어난 면도 있습니다. 프로는 반드시 돈을 지불하는 쪽이 있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만 합니다. 이것이 아마추어와 차이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마음대로 그릴 수 없게 됩니다. 프로는 특별한 존재도 아니며 동경의 대상도 아닙니다.
(생략)
취업의 일환으로 혹은 하고 싶지 않은 연습을 하고 있다면, 만일 프로가 된다고 해도 계속 지속할 수 없습니다. 프로 작가는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생활의 일부이자 생업입니다.
각 장 끝에 있는 Q&A는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데 질문할 곳이 없었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끝부분 저자 무로이 야스오 인터뷰도 이 분야를 지망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진로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여러 팁들도 얻으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일 자체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한 <무로이 야스오가 알려주는 최고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고 있으니 아이가 와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다며 그려달라고 해서 그린 그림.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또 의욕이 뿜뿜 솟아 오른다.

이 글은 영진닷컴으로 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