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기담 수집가 : 두 번째 상자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지음 / 프시케의숲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관심을 끊은 지 몇 달이 됐다. 글쓰기 없이 살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래도 친구가 책 얘기하는데 무관심한 게 민망하여 느릿느릿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기담집 2편이 나온 것을 보았다. 1편에 이어 의리로 샀다라고 하기에는 책표지가 너무 좋았다. 어쩜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성실하게 책 분위기를 담아냈을까. 나무 상자에 밀실 분위기로 표현된 책방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책방 주인장이 열어 준 이야기 상자 안에는 주인장과 의뢰인의 거래가 이미 시작되었고, 이야기 상자의 뚜껑을 잡고 있는 주인장의 손은 의뢰인의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책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인장의 저 손이 상자를 닫고 다시 열 때면 또 어떤 인물이 나타나고 무슨 장면이 펼쳐질까. 책표지만 보고도 이건 단순히 인기작에 이어지는 속편이 아니라 또 하나의 완벽한 헌책방 기담집이라는 판단이 들어버렸다. 2편의 부제는 두 번째 상자이다.

 

2편은 1편보다 더 기담에 어울리는데 기이하게 연결된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인연뿐 아니라 이계異界와 연결된 듯한 기담도 있다. 작가 스스로도 책과 사람의 인연이 얽힌 이야기를 수집하려 했다지만 어떻게 이런 오묘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데이터 박스에 들어왔으며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풀어냈는지 난 그저 신기하다. 책을 받고 나서도 무덤덤했다가 본문을 한 번 펼친 뒤에는 밤이 늦도록 계속 읽었다. 본격 기담인 3부를 읽을 때는 연심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서도 내려놓지는 못했다.

 

1편에서도 그렇지만 2편에서도 나는 여전히 작가가 만난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오묘해서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지금 느낌으로는 2편이 더하다. 현실인가, 가상인가. 이런 느낌이라면 작가는 환상문학도 무척 잘 쓸 것 같고 그가 쓴 이 이야기들도 상당 부분 환상문학을 읽을 때와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 분명 에세이 작가로 알고 있고 이 이야기들도 실제 에피소드를 적은 것인데 이야기꾼으로서의 문장력도 탁월해서, 난 이 작가가 쓴 추리소설이나 환상문학을 너무 읽고 싶다. 이제는 헌책방 주인장이라고 부르기보다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작은 가게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다. 이 작가처럼 이야기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전국을 찾아다닐 자신은 없다. 내가 부러운 부분은 작가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배워가는 모습이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람과 삶에 대해 생각하고 깨달아가는 경험을 하고 싶다. 가장 생동감 넘치는 시절의 내 모습이 그렇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마음의 더께가 사르르 씻겨져 가벼워지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에, 마음에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세상을 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그에 감응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고 내 바운더리를 넓히기 바랐지만 그가 몇 권의 책을 내고 나는 몇 번의 감응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내 세상을 내가 바라는 만큼 확장하지는 못했다. 그가 다음 책을 낼 때쯤이면 나도 오롯이 나의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이제는 좀, 그러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참혹하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좋고 묘사도 매력적이어서 한 번 읽으면 빠져들지만 다음 날 남은 부분 읽으려다 잠시 망설였다. 서글프고 참혹해서. 인간, 특히 군중 또는 대중으로 군집할 때 나타나는 우둔함과 잔인함이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 모두 안녕하세요!
홍선주 지음 / 꼬마이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테일이 넘 좋은 그림책이에요. 작가가 다양한 집 답사 많이 다니셨을 듯. 다양한 가구 형태가 나오는데 한 가구나 한 인물에 주목하지 않고 두루두루 다루어서, 편견 없이 그저 사람살이로 전하는 점이 좋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지음 / 프시케의숲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헌책방 주인장의 책을 읽은 게 한 4년 전부터인가. <작은 책방 꾸리는 법>을 읽으며 나는 주인장이 말하는 책방 이야기에서 내가 운영하고 꾸려갈 공간에 대한 팁을 얻고 상상을 키웠다. 내가 꿈꾸는 공간이 책방은 아니지만 그의 말들은 내가 꾸밀 공간에서 내가 상상할 것이 무엇인지, , 내가 구상하고 준비할 것이 무엇인지 권하고 제안했다. 일이 밥벌이이자 지속가능한 놀이이기를 바라는 나에게는 좋은 자극을 주는 책이었다.

 

다음 책인 <서점의 말들>을 읽었을 때는 좀 많이 놀랐다. 작가는 그저 책 속 말들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각 책의 구성을 이용하고 유희를 펼치고 있었다. 인용이나 겨우 하는 나로서는 그의 독서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과 그로써 책을 갖고 노는 경지라는 것만 짐작했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는 앞의 두 권과는 또 다르다. 주인장은 책을 찾아 주고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헌책방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특수한 이벤트이자 가장 잘 어울리는 미션이 아닐까 싶다.

 

2

주인장은 이 책의 처음-프롤로그에 자신의 역할이 이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이야기 수집가임을 밝힌다. 더 나아가, 자신은 헌책방 주인이지만 사실 책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고 하니 마치 그의 비밀스런 임무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현실에는 기묘한 일이 많다며 앞으로 읽은 이야기들은 소설이 아니라고 한다. 프롤로그부터 환상문학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시작해서 4개 챕터, 29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재미있다. 그리고 다채롭다. 책 탐정, 사연 수집가가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단편소설이자 연작 드라마 같다. 한편 한편의 사연이 놀랍지 않은 것이 없고, 반대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아니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삶에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삶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책과 함께 숙성되고 숙성되며 드라마가 되었다. 헌책방 주인장을 거쳐서 우리는 그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는 반복해서 책과 사람의 운명 또는 이끌림을 이야기하는데, 이 많은 이끌림의 이야기 속에 어느새 주인장도 등장인물이 되었고 그 역시 이 이끌림으로 새로운 책을 만났으리라.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헌책방의 주인장이고 이 글들은 그가 책을 찾아 주며 들은 사연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읽다 보면 이 글들이 실제 사연인지 '어메이징 스토리'에 나올 법한 기묘한 이야기인지 경계가 흐릿해진다. 내 부족한 표현력 대신 추천사를 쓴 장강명 작가의 표현에서 빌려 온다면, '마법'으로 빨려 드는 느낌이다. 작가는 이런 느낌까지도 의도했을 것 같다.

 

3

한 번에 다 읽었다. 만족스러운 독서였는데, 이 책의 모든 면에서 그랬다. 이야기를 관망하는 게 아니라 환상문학처럼 내레이터가 이야기에 빨려들어가는 과정, 다락방처럼 아늑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 놀라운 능력의 조력자들(HN은 실존 인물일까, 가상 인물일까?), 이 책의 무대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주인장임이 분명한 표지 그림, 본문의 옛날 책 표지까지 '헌책방 기담 수집가'라는 제목이자 컨셉이 전체적으로 꼼꼼히 스며들어 있고 잘 어우러졌다. 심지어 책장을 넘기며 종이 두께와 폰트 크기까지 잘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4

그리고 내가 근래 읽은 책 중에 사람에 대한 예의가 가장 돋보인다. 모든 책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만, 타인의 삶에 대한 경청과 사려 깊은 전달로는 이 책만한 것이 없었다. 팬데믹 이후 사람에 대한 경계로 이제는 지칠 지경이다. 책을 덮는데 문득, 이제는 마음을 열 때라는 생각이 스르르 떠올랐다. 각자의 사연을 들을 여유조차 없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사람살이와 그들의 사연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온기 배인 품격이 있는 글들이다. 물론 미스터리와 쓸쓸함도 있다. 그래도 드라마로 만든다면 각 에피소드는 따스함과 선함으로 마칠 것 같다. 각자의 삶에서 자신이 획득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거기에 나름의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책 속 청탁자뿐이겠는가. 모두의 삶이 그러하지 않겠는가. 작가가 그러라고 하는 문장은 없지만 나는 새삼 따뜻한 미소와 사람에 대한 존중을 다짐한다.

 

읽으면서 계속 영상으로 그려진다. 드라마로 봐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은근한 유머를 연출할 수 있는 누군가들이 만들어 준다면 말이다.



*리뷰 제목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를 따라했다. 타이틀 못 정해서 등록 못하던 차에 옆에 있는 책 제목을 베꼈다. 그런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사연자는 마음에 오래 묻어 두었던 사연을 풀어 놓고 절판이든 독자의 외면이든 죽어 있던 책을 꼭 필요한 자리에 돌려 놓았을 때, 사연자와 책은 여러 의미에서 생명 또는 생명력을 얻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점의 말들 -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서점에서 배웠다 문장 시리즈
윤성근 지음 / 유유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특한 경험인데읽고 나서 뭐, 이런 요물이 다 있지, 이런 생각이 든 책이다.

 

몇 년 전에 유유에서 나오고 독자들을 강타한 글쓰기 책을 읽었다. 워낙 평판이 좋았다. 그 책이, 글에서 멀어지는 내게 힘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책을 읽으며 갈증은 더 심해졌다. 나는 지금이 짧은 글이 적합한 시대라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짧은 글을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글이 짧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편집이 아닌 까페에서 일하며 돈을 버느라 글과 가까이할 시간이 더 없어졌음에도, 나는 꾸역꾸역 긴 글에 매달렸다.

 

그러나 이 책, 서점의 말들을 봤을 때. 많이 놀랐다. 유유의 작은 책 시리즈답게, 구성은 짤막짤막한 100개의 챕터로 이루어졌다. 내용에서 지은이가 공들여 자신의 10년 책방 경험과 생각을 꼼꼼하게 담아냈음은 당연하고, 구성에서 나름의 장치와 다양한 변주를 부려서 그 내용이 더 입체적으로 읽힌다. 작가에게 있는 아이디어, 문학성을 발휘하여 실용서일 법한 책을 인문 에세이로, 평면적 에세이일 법할 책을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인스턴트식 작은 책이 아니라 요물.

 

서점 관련한 인용 문구도 다채롭고 새롭다. , 서점이 언급된 문구뿐 아니라 사물에 대한 문구가 종합되었다. 사람에 대한 궁리, 책방 주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점이 좋았다. 당연히 서점이란, 책이란,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문제 아닌가. 여기에 문구 34, 87쪽처럼, 본인 책방의 변화를 위트 있게 넣기도 했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말이 많다며 그도 횡성수설 하는 페이지에서는 책 많이 읽은 이가 능란하게 부리는 유머에 작게 경탄했다. 잠이 퍼뜩 깨는 기분이었다.

 

한 번 완독으로 그의 지적 유희에 다 따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작가가, 각자의 독서 수준에 따라 독자가 알아채고 재미있어 할 유희 요소를 숨겨놨다는 점이 내게 이 책을 더 요물로 느끼게 했다. 실용-에세이 도서에서 창작물로서의 이런 시도를 뚜렷이 느낀 기억이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영감을 받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같은 작가의 작은 책방을 꾸리는 법도 보았다. 나는 두 권의 책에서 그가 일관적으로 생산자, 창작자로서의 태도를 제시한다는 점을 읽었다. 나는 지금 한 회사의 직원으로 일하며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하지만, 창작-생산의 꿈이 늘 내재되어 있음을 오히려 작은 책방을 꾸리는 법을 읽으며 알았다.

 

책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책과 독서는 가장 창의적 영역 중 하나이다. 그런 책을 대변하는 책이나 메타북스 역시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이 점을 간과해 왔다는 점을, 문득 깨달았다. 짧아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작가의 시작(나는 구판인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으로 읽었다)도 짧은 글의 연속인데 내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