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말들 - 사람만 보면 말문이 막혀서 그 많은 책을 샅샅이 뒤졌다 문장 시리즈
윤성근 지음 / 유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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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노란 책을 받았다. 궁금한 마음에 책장을 빠르게 넘기는데 연인과 나의 대화가 생각났다. 자꾸 답을 확인하고 그중에서도 정답을 바라던 나의 조급함과 달리, 때로는 모호하게 돌려 말하고 아예 내 말을 씹어 잡숫기도 하는 나의 연인. 우리의 연애는 8년이 되어간다. 8년은 우리의 대화가 부드럽게 흐르거나 천천히 흐르거나 거칠고 신경질적으로 부딪히며 흐르거나, 어쨌든 계속 흘러가고 있음을 경험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와 함께하며 나는 조급하지 않음을 익혀 왔고 정답을 강요하지 않음을 익혀 가고 있다. 그도 변화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많은 면에서 나의 선배 같기에 그에게 나와 같은 식의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잘 포착하지 못했다. 그는 나처럼 조급하지 않은, 나보다 완성형 사람으로 보였다. 내 쪽을 보자면 나는 변화하고 있다. 조급함을 풀어내고 있다.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 나라는 감옥 안에서 눈을 반짝이며 살았다면 그 감옥의 천장이 사라지고 벽이 많이 투명해졌거나 혹은 벽이 많이 낮아졌거나 하는 식으로 나 이외의 세계를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변했다. 이건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더 편하게 만들었다.

 

작가가 서두에서 이 책은 대화 소통의 정답이 있는 책이 아니며 자기계발서의 기능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대화의 범위는 나와 타인이 직접 말을 나눈다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숱한 잡담, 길가의 고양이와 풀과 나누는 말들(인간의 말소리와 더불어 서로를 향한 호감의 기운일 수도 있다), 나와 내가 나누는 치열한 공방, 활자와 말로 기록하지 않더라도 활자에, 말에 스미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화 당시의 분위기와 맥락, ai가 해 주는 말의 달콤함과 경계할 점 등. 심장한 문장에서 포착한 백 개의 대화 이야기는 대화를 단편적으로 다루는 듯하지만 보이지만 통찰한다.

 

작가는 이야기 도중 클래식 음악에 대한 취향을 드러내는데, 세계 곳곳의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내 취향으로 대입하면 작가의 이번 글은 파두의 쓸쓸함을 머금는다. 대화는 사람이 소통하기에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하지만 완벽한 소통은 어렵다. 소통은 기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해와 대화는 한 몸처럼 작용하는데, 이해하면 이해라는 말도 필요 없고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한다는 말은 쓸 수가 없다. 이미 몸에 스며든 지식과 감정은 이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나는 그것을 안다. 이질적인 상식과 행동에 대해서는 표면의 글자를 읽고 듣는 것에 불과할 뿐, 그것이 내게 스미는 시간을 겪어야 하니 당장 대화의 순간에 상대를 이해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화, 소통, 이해 - 완벽히 소통할 수 없고 상대 마음 그대로를 이해한다는 건 착각이며 대화는, 완벽한 소통과 이해를 바랄수록 괴로워지고 만다. 쓸쓸함은 대화의 숙명인데도 우리는 알면서도, 아님 대화만이 방법이라며 끊임없이 대화를 해 댄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 시절 이해 못 한 대화라도 뒤늦게 깨닫고 알아간다. 느릿하더라도 우리는 그때 완성하지 못한 대화소통이해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니 불완전한 채로 끝나도 그게 끝이 아니다. 또 시작할 것이니. 대화는 이어진다.

 

작가는 책방 일을 하며 자신의 존재감으로 책을 압도하려는 대신 자신을 덜어내고 책에 담긴 연주에 귀를 기울이려 한단다. 지금 나에게는 내 이십 대나 삼십 대 같은 대화의 짜릿함과 전율은 없다. 그 시절 사람들이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때,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온기와 서글픔을 느꼈고, 그들과 나눈 대화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고마워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은 욕심이 별로 없다. 대신 이런 것을 생각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만 약간은 무덤덤하고 잔잔한 반응, 이야기에 끼어들며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을 잠잠히 가라앉히기, 당신이 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조금씩 보여 주는 행동 등. 격앙시키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잔잔히 다독이는, 말소리로의 대화보다 분위기로서의 대화를 해나가려는 내게 이 책은 참 적절한 시기에 왔다. 책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대화의 말들을 들려주고, 나는 고요하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말들을 읽었다.

 

제목을 오래된 연인과의 대화 같은 책이라고 달았는데 이 말이 가장 어울리는 부분은 마지막 에필로그이다. ‘고도를 연상시키는 짧은 극본이 들어 있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말꼬리 잡는 것도 같은 짧게 치는 대화가 이어진다. 아니, 이것도 대화일까? 꼭 내가 연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고 하면 무기력하게 답변하는 식이란 참 비슷하다. 말장난 같아서 따지고 들면 깊은 진심이 시니컬하게 들어 있다. 이 따위 대화를 끝낼까, 어떻게든 이어갈까를 고민하며 연애의 기간은 또 하루 늘어가고 어느새인가 높낮이가 별로 없는 평안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누리고 있다. 우리의 대화 방식이 현명하게 완성되는 날이 있을까. 질문형 문장을 쓰면서 그럴 일은 없다고, 뭣 하러 묻냐고 스스로 대답한다. 완성되는 일은 없다. 개울처럼, 돌에 막혀 솟구치고 좁은 물길을 격렬히 물거품을 내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듯, 그러할 거다. 한순간 우리의 대화가 완전할지도 모른다. 한순간일 뿐이다. 완성의 찰나에 기뻐하며 머무르는 순간 그 완성은 고집이 되고 불통이 시작될 것 같다.


책 중에 8년 된 연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 연인이 한 이야기인 줄 알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결이 비슷했다. 이 정도는 각색해서 얘기했겠지 하는 정도였다. 이 사람이 나 때문에 누군가에게 하소연도 했나 하니 스르르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물어봤다. 당신 이랬냐. 아니라고 한다. 그의 눈과 고갯짓을 보니 진짜 아니다. 우리만의 이야기라니 마음 편해지는 동시에 김이 빠졌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누구한테 나에 대해 상담이나 할 사람이면. 우리의 대화는내가 이 책을 보며 계속 생각을 이어나가니 더 좋아지겠지그러겠지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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