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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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한 것이다. "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해방시킨다. 에로스를 통해 자발적인 자기부정, 자기 비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사랑의 주체는 특별한 약화의 과정속에 붙들리지만,  이러한 약화에는 강하다는 감정이 수반된다. 물론 이 감정은 주체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타자의 선물이다. "​

 

 -본문 중-

 

 

 

 

저자의 책은 피로사회 밖에 보진 않았지만, 피로사회에서 줄기차게 얘기해온게 "부정성"이다.

성과 사회. 긍정성의 사회. 타자가 없는 사회...

피로사회를 읽었을 때 내가 느꼈던 점은 무슨말 하는진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는건지 였다.

부정성이 좋다는건지, 규율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건지.. 피로사회를 독서토론 하는데서 정해서 읽었었는데 내가 질문을 했을 때 다들 아무말도 없었더랬다.

근데 이 책이 그 답이 아닌가 싶다.

타자를 받아들일수 있는 유일한 방법. 사랑. 에로스.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 자기 자신을 버리고 타자로 자신을 채울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사랑.

저자는 부정성을 획득할 수 잇는 방법으로 에로스를 말한다.

 

 

 

나로 말하자면 늦은 나이인데 결혼도 하지 않았고 사람을 사귀어본지도 십년쯤 된거 같다. 모태솔로는 아니지만 두번째 만남을 끝으로 사랑이라는 것에 그닥 가치를 두지 못해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누군갈 좋아하게 되면 너무 변해서인데, 나를 잃어버리는게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젠, 내가 나를 잃어버릴 정도의 사랑을 받아줄 남자가 그리 대단하단 생각을 못해서 만남에 흥미를 잃었다고 해야하나.

이 책을 읽는동안 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인간인가, 아닌가가 관심사였다.

전엔 할 수 있는 인간이엇어도 나이를 먹어가며 마음을 문을 잠근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나르시시스트??? 저자가 말하는 우울증적인 정신. ㅋㅋㅋ

그런데 내 나름 결론을 내린것이 사랑이 어째서 꼭 남자여야 하는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타자로 채울 수 있는 정신, 살아 있는 정신이면 되는거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난 사랑하는게 많은데. 라는 결론이다.

 

 

 

앞 부분은 쬐끔 이해했는데 뒤로 갈수록 더욱 난해해졌다.

내 나름 이해한 것은 타자를 받아야들여야 생동감있고 확대된 정신을 가진 인간,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 무언가로 변할수 있는 사회, 창조할 수 있는 사회 가 될 수 있는데 지금 이 시대는 그 해법인 에로스가 죽고 있다는 것.

에로스를 통해 내가 죽고 타자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내가 탄생하는것.

그렇게 끊임없이 새로워지는것, 살아있는것, 생동하는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인거 같다.

그리고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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