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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 염상섭 중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9
염상섭 지음, 김경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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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만세전은 좋아하던 소설 중 하나이다. 소설에 멋있고 생각을 하게 해주는 구절들이 많다. 오랜만에 읽어서 새로운 맛이 있었지만 역시 다 읽고 나면 소설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조선의 현실 속에서 다르게 살아간 사람들의 삶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후에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로 시작해서 소설에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로 생각은 이어진다.

만세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의 기억 덕분이다. 그때는 학생들이 모두 쉬는 시간에는 밖에 나가서 뛰어 놀고 수업시간에는 거의 대부분이 엎드려 잠을 잤었다. 특히 국어시간은 선생님이 나긋나긋하셔서 그 정도가 심했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생각하신 방법은 문학관련 수업의 대부분을 조별 토론형식으로 바꾼 것이었는데 당시 우리들에게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비록 소설의 전문을 읽지는 못하더라도 줄거리와 중요한 부분은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셨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업 전에 소설을 읽고 오는 아이들이 훨씬 많아졌었다. 읽은 소설을 바탕으로 선생님이 주제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 주면 한 시간동안 소설에 대해 돌아가며 이야기 하곤 했었다. 학급이 작아서 반의 거의 모두가 몇 년씩 친구였기 때문에 소외되는 친구들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때 염상섭의 만세전의 원제가 묘지인 이유에 대한 토론을 했었다. 주인공 에 대해 세상 물정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쉽게 비판도 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주제에서는 학급의 반 이상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던 기억도 난다.

지금 다시 책을 읽으니 그 때 생각도 나면서 다시 그 질문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이고, 당시 현실에 대한 자각도 없다. 극복하려는 의지, 미래에 대한 고민도 찾기 힘든 인물이다. 아내의 소식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조선의 부조리한 현실을 보고 분노하고 절망하지만 그 뿐이다. 그리고 아마 나도 그랬을 것 같다. 멀리 가지 않아도 주위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눈 감는 나를 문득문득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 알면서도 모른척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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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의 슬픔 외 - 중.단편소설 한국문학산책 2
김동인 지음, 김명진 엮음.해설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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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의 슬픔』은 20세기 현대인의 표본으로 그려진 강 엘리자베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세련된 도시인의 삶을 살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휘둘리는 타율적인 삶을 산다. 즉, 설움이 있는 약자의 삶을 산다. K남작으로 대변되는 강자에 의해 휘둘리는 삶이다. 엘리자베트는 강제적으로 K남작과 불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그 결과 원치 않는 임신도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쫓겨난 후 남작에게 건 재판은 ‘증거 없음’으로 기각되고 만다. 그녀는 결국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주관 없이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즉 자신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의 이유로 삼은 것이다. 현재에도 약자와 강자의 싸움 끝에는 이러한 결말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신문기사를 통해 보고 있다. 불편한 생각의 흐름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은 주인공의 심리가 독백의 형태로 쏟아지고 있다. 현대적인 문체와 자세한 심리묘사 덕분에 소설 자체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좋았던 점은 작가의 개입이 거의 없고 오로지 모순된 두 가지 생각이 매번 공존하는 주인공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온전히 그려내고 있어서 읽으며 그녀를 마음을 따라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졌다. 현대적인 이환과 여전히 남존여비사상을 지닌 남작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자신의 사랑을 찾는 과정, 자신이 잉태한 것에 대해 모순된 감정들이 오가는 생각을 읽다보면 그 약한 정신이 나에게 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그녀의 질투, 갈등, 슬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어오면서 나는 점점 엘리자베트를 이해하기 싫어졌다. 소설은 그녀가 진실 된 사랑을 깨달으며 기뻐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갑작스러운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 속 엘리자베트는 사랑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은 내게는 단지 강한 자의 싸움에서 모든 것을 잃은 약자의 정신승리 정도로 보였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마지막에 언급되는 ‘참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 소설을 다시 읽어도 내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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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은 형식, 영채, 선형의 마음이 오가는 삼각관계가 소설을 전반을 끌고 가는 소설이다. 무정은 워낙 유명해서 여러번 접하고 배울 기회가 있었고, 세 남녀의 감정의 엇갈림 덕분에 지루하지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지금 보면 진부하고 못마땅한 생각이 많이 담겨있지만 그래도 현대 소설과 많이 비슷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설이다. 소설이 마지막에 와서 갑자기 폭탄 터지듯 터트리는 계몽성은 읽다가도 당황스러워 책을 덮고 싶게 만든다.
형식은 전형적인 '남자 신데렐라'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몇년전에 '남자 신데렐라'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들이 유행했었는데 고정관념을 깬 신선한 설정이라는 평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독특한 설정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100년 전 연재된 무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니, 계몽성을 빼면 무정을 뼈대로 한 아침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큰 규모의 재창조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유교적 사상을 지닌 여성인 영채와 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나오는 선형은 서로 성격적으로도 대립되며 삼각관계의 각 틀을 이루고 있다. 형식은 머릿속으로 이 두 여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는 영채가 힘든 일을 당한 그 순간에도 처녀성의 유무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이렇게 진부한 합리성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는 교육을 통한 계몽으로 이어지며 끝을 맺는다. 부산으로 향하는 경부선 열차에서 만난 인물들은 수재민을 돕는 행동을 통해 교육을 통한 개화를 다짐한다. 삼각관계를 이어오던 세 남녀는 병욱의 등장과 함께 과학을 외치는 계몽주의 소설로 끝맺는다. 교육을 통한 근대화, 변화가 가장 이상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소설이 별로인 가장 큰 이유는 무정의 인물들이 계몽주의라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지고 작가가 원하는 관념을 내세워 결말 짓고자 한 듯 보여서 소설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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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 - 이인직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9
이인직 지음, 권영민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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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의 혈의 누는 중학생 때 대충 읽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학급 수가 3개 밖에 없던 작은 학교여서 국어선생님의 책 선물을 종종 받았다. 직접 선별하여 제본한 소설이라던가, <논술한국대표문학> 같은 그런 책들이었다. 혈의 누도 그 중 하나로 아직도 내 방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약 10년 만에 꺼내 읽었다.

소설은 주인공 옥련이 청일전쟁으로 부모와 이별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지식인으로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는지 옥련은 나이에 비해 생각이 매우 깊다. 읽으면서 정말 7, 11살이 맞는지 17, 21살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생각과 실천력이 놀라울 정도다. 이인직이 당시 여성계몽에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근대화와 신교육, 그리고 여성계몽을 촉구하는 모습이었다. 옥련은 7살 어린나이에 조선에서 벗어나 신교육을 받게 된 여성이다. 고국에 남아있는 조선 여성인 어머니와 대비되는 옥련은 3개월 만에 일어를 깨치고 1년 만에 영어를 구사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 똑똑한 아이로 묘사된다. 하지만 조선을 이끌어갈 이런 똑똑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도 읽을수록 소설은 약간 불편하다.

혈의 누를 읽는 내내 불편하게 다가 온 것은 끊임없이 소설이 외치고 있는 근대화의 열망 속에 녹아있는 사대주의와 친일의 냄새 때문이다. ‘일청전쟁이라는 표현과 잔혹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은 청나라 사람이고 일본인은 도움을 주는 존재인 듯 쓴 점이나, 우리나라는 미개하고 야만적이라 폄하하면서 대조적으로 일본은 문명국이고 선진국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점 등이 그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남아있던 조혼풍습을 우리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쉽게 비판하고 구완서와 옥련은 서양의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빠르게 받아들이는 점 등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당대 조선 사회의 이념과 그 풍습은 모두 부정하면서, 일본과 미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즐거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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