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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 - 이인직 소설선 ㅣ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9
이인직 지음, 권영민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4월
평점 :
이인직의 『혈의 누』는 중학생 때 대충 읽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학급 수가 3개 밖에 없던 작은 학교여서 국어선생님의 책 선물을 종종 받았다. 직접 선별하여 제본한 소설이라던가, <논술한국대표문학> 같은 그런 책들이었다. 혈의 누도 그 중 하나로 아직도 내 방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약 10년 만에 꺼내 읽었다.
소설은 주인공 옥련이 청일전쟁으로 부모와 이별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지식인으로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싶었는지 옥련은 나이에 비해 생각이 매우 깊다. 읽으면서 정말 7살, 11살이 맞는지 17살, 21살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생각과 실천력이 놀라울 정도다. 이인직이 당시 여성계몽에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근대화와 신교육, 그리고 여성계몽을 촉구하는 모습이었다. 옥련은 7살 어린나이에 조선에서 벗어나 신교육을 받게 된 여성이다. 고국에 남아있는 조선 여성인 어머니와 대비되는 옥련은 3개월 만에 일어를 깨치고 1년 만에 영어를 구사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 똑똑한 아이로 묘사된다. 하지만 조선을 이끌어갈 이런 똑똑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도 읽을수록 소설은 약간 불편하다.
혈의 누를 읽는 내내 불편하게 다가 온 것은 끊임없이 소설이 외치고 있는 근대화의 열망 속에 녹아있는 사대주의와 친일의 냄새 때문이다. ‘일청전쟁’이라는 표현과 잔혹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은 청나라 사람이고 일본인은 도움을 주는 존재인 듯 쓴 점이나, 우리나라는 미개하고 야만적이라 폄하하면서 대조적으로 일본은 문명국이고 선진국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점 등이 그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남아있던 조혼풍습을 우리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쉽게 비판하고 구완서와 옥련은 서양의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빠르게 받아들이는 점 등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당대 조선 사회의 이념과 그 풍습은 모두 부정하면서, 일본과 미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즐거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