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은 형식, 영채, 선형의 마음이 오가는 삼각관계가 소설을 전반을 끌고 가는 소설이다. 무정은 워낙 유명해서 여러번 접하고 배울 기회가 있었고, 세 남녀의 감정의 엇갈림 덕분에 지루하지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지금 보면 진부하고 못마땅한 생각이 많이 담겨있지만 그래도 현대 소설과 많이 비슷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설이다. 소설이 마지막에 와서 갑자기 폭탄 터지듯 터트리는 계몽성은 읽다가도 당황스러워 책을 덮고 싶게 만든다.
형식은 전형적인 '남자 신데렐라'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몇년전에 '남자 신데렐라'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들이 유행했었는데 고정관념을 깬 신선한 설정이라는 평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독특한 설정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100년 전 연재된 무정에서 발견할 수 있다니, 계몽성을 빼면 무정을 뼈대로 한 아침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큰 규모의 재창조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유교적 사상을 지닌 여성인 영채와 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나오는 선형은 서로 성격적으로도 대립되며 삼각관계의 각 틀을 이루고 있다. 형식은 머릿속으로 이 두 여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는 영채가 힘든 일을 당한 그 순간에도 처녀성의 유무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이렇게 진부한 합리성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는 교육을 통한 계몽으로 이어지며 끝을 맺는다. 부산으로 향하는 경부선 열차에서 만난 인물들은 수재민을 돕는 행동을 통해 교육을 통한 개화를 다짐한다. 삼각관계를 이어오던 세 남녀는 병욱의 등장과 함께 과학을 외치는 계몽주의 소설로 끝맺는다. 교육을 통한 근대화, 변화가 가장 이상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소설이 별로인 가장 큰 이유는 무정의 인물들이 계몽주의라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지고 작가가 원하는 관념을 내세워 결말 짓고자 한 듯 보여서 소설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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