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설픔 -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기웅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참으로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한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일본 대지진과 강대국들의 리비아 공격 소식을 접하며, 아름다운 새 봄의 찬란함을 노래하지 못했던 지난 화요일(3월29일), 반가운 벗님, <어설픔>을 만났습니다.
한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어설픔'이 갖는 의미가 뭘까..생각하면서. 또 무엇보다도, '아프다는 것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라는 신호이니 어설퍼지라'고 말씀하시는 한의사선생님께서 쓰셨다는 책 소개글을 보고, 마음 한 켠에 쿵쾅거리는 울림을 느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하라는, 그런 말을 하시는 의사선생님이 또 계시다는 말이지? 제가 존경하는 의사선생님들, 선우경식(몇 년 전 소천하신 요셉의원 원장선생님), 전홍준님, 김진목님 科(?)에 속하는 분이 또 계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으니 얼릉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가슴이 뛸 수 밖에요~
<어설픔>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기대를 넘어 고귀한 가르침으로 귀하고 귀한 깨달음을 준 참으로 고마운 책입니다. 단아한 표지와 표지를 넘겨 앞날개장을 펼치면 바로 만나는, 두 장의 빈 여백(뒷부분도 여백이 있음), 그 느낌이 주는 단순함과 정갈함은, 저자의 살고 계신 모습도 그러하지 않을까, 독자인 제가 즐겁게 상상하면서, <어설픔>을 천천히 만났습니다.
쉼, 여행, 만남...
우주를 떠나 아름다운 지구별로 여행온 우리들에게, 우주의 품성을 지닌 고귀한 우리들이 엄마의 자궁을 떠나 나이를 먹으면서 잊게 되는 '존재의 근원'을 기억하기위해, 저자는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조금 느슨하라고. 느슨해도 살아지고, 무엇보다도 나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하면서, 나 뿐만이 아닌 또 다른 나인 그대를 온전한 존재로 만나야함을, 간곡히 말합니다. 그윽한 눈빛으로, 어눌한 말로, 고요한 음악으로, 한걸음한걸음 내딪는 발길로..무엇보다도 다른 이의 있는 그대로의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는 천진함으로.
처음엔 이 책을 빨리 읽을 수가 없었어요. 얼른 읽기엔 한 줄 한 줄 行間 사이에 담긴 저자의 순한 눈빛이 느껴져서, 아끼며 만났답니다. 봄 햇살 환한 한낮, 운동장 벤취에 앉아 천천히 그리고 어설프게 만났지요. 글 한 줄 읽고 파란 하늘 한번 올려다 보고, 글 한 줄 읽고 바람 한 줄기 만나고, 글 한 줄 읽고 그대로 눈 감아 버리고...글 한 줄 읽고.......
지헤로운 인디언들은 4월을, 生에 기쁨을 주는 달이라 한다지요?
4월의 첫 날,
개교기념일로 휴업이었던 오늘, <어설픔>과 함께하며 온전히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토록 맑은 영혼을 지닌 이기웅선생님과 길벗 배선생님 그리고 정민이와 지원이..그리고 햇님쉼터..벗님들.. 모두 귀하고 어여쁜 님들입니다. 어느 한 페이지인들 고맙고 기특하지(!) 않은 내용이 없지만, '만남을 위한 준비'는 그 느낌을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 부분을 읽는데, 어느 새 소리없이 맑은 눈물이 흐르며 그 순간, 탁했던 제 영혼의 한 부분이 밝고 맑게 淨化됨을..알았습니다. 텅...비었습니다. 모든 게 정지되고 텅 빈 듯한 느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느 새 저는 천사가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제 삶의 선택!
인연이 닿으면 사포리에서의 만남도 이루어지겠지요? 꼭 사포리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입니다. 이미 저는 <어설픔>안에서 사포리를 만났는걸요~
어설픔은 쉼으로 가기 위한 여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쉼을 구원으로 풀이한 오강남선생님의 글 내용을 부분 인용하며, <어설픔>과의 서평 만남은 이것으로 맺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출발임을 압니다. 제 삶의 여정에 든든한 길벗이자 등불로 함께할 것임을 믿기에. 無有正法!!!
***아래 내용은 오강남 선생님의 <또 다른 예수>에서 부분 발췌,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하느님의 영이 물 위에 움직이고"(창1:2), 엿새 동안 창조 사업을 다 마치신 다음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창2:2)라고 했는데, 이런 원초적 '움직임과 쉼'이 바로 하느님의 내재하심의 증거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래적인 근거인 궁극 실재로 되돌아가 그것과 다시 하나가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평화와 조화와 안식의 상태를 가리켜, 쉼이라 하고 그것은 곧 구원이라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