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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실험하는 고고학자』는 고고학을 박물관 유리장 안에 놓인 유물을 바라보는 학문이 아니라, 과거의 삶을 직접 재현하고 검증하는 생생한 탐구로 느끼게 해 준 책입니다. 평소 고고학이라고 하면 유적을 발굴하고 오래된 물건의 연대를 추정하는 모습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고대인이 무엇을 먹고,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어떻게 불을 피우고, 무엇을 만들며 살아갔는지를 직접 실험하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고학의 범위를 훨씬 넓혀 주었습니다. 과거는 죽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질문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실험고고학이 유물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복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돌로 만든 칼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자르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자들은 당시의 돌을 직접 깨고, 같은 방식으로 칼날을 만든 뒤 고기나 식물을 잘라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긴 흔적을 실제 유물에 남은 자국과 비교합니다. 이렇게 직접 해 보아야만 유물에 남은 작은 흔적이 과거 사람들의 행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보는 것과 몸으로 확인하는 것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방식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효모를 채취해 빵을 굽고, 과거의 처방대로 연고를 만들며, 중세의 화약과 대포를 재현합니다. 누군가는 로마 시대 여성의 머리 모양을 직접 만들어 보고, 누군가는 고대의 문신 기법을 되살립니다. 겉으로 보면 다소 엉뚱하고 위험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과거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말이나 기록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과거 사람들의 기술과 선택을 알아냅니다.

특히 고대 이집트의 빵을 재현하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빵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대 도기의 형태, 밀가루의 성질, 효모의 상태, 불의 세기와 조리 순서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고대인이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 먹은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재료를 관찰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쉽게 사용하는 빵과 불, 도구 하나에도 수많은 지식과 노동이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의 편리함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실험과 발견 위에 세워졌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고대인을 원시적이고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던 시선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기술을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기 쉽지만, 실험을 직접 해 보면 당시 사람들의 지혜가 얼마나 정교했는지 알게 됩니다. 제한된 재료와 도구만으로 불을 다루고, 사냥 도구를 만들고, 음식을 보존하고, 몸을 꾸미는 방법을 찾아낸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현대인보다 덜 지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과거 사람들의 삶을 낡고 미개한 것으로 보지 않고, 그들만의 합리성과 창의성으로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실험고고학은 과거를 단정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의 재현이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작동할 수 있었는지를 좁혀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재료와 방법을 비슷하게 재현해도 연구자의 경험이나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실험고고학은 겸손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한 답을 서둘러 내리기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가설을 수정하면서 더 정확한 이해에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과학은 실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롭게 느꼈습니다. 고고학자뿐 아니라 공학자, 미생물학자, 화학자, 요리사, 미용사, 문신 전문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과거의 삶을 복원하는 데 참여합니다. 여러 분야의 지식이 함께 모일 때 하나의 유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학문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일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과 기술을 연결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과거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해 줍니다. 유물의 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소리와 냄새, 맛과 촉감을 상상하게 합니다. 돌을 깨는 소리, 장작이 타는 냄새, 갓 구운 빵의 맛, 손으로 만든 도구의 거친 감촉이 책을 읽는 동안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덕분에 고대인은 더 이상 역사책 속에 멈춰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먹고, 만들고, 실패하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했던 생활인들이었다는 사실이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총평하자면, 『실험하는 고고학자』는 과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직접 질문하고 직접 해 보는 것임을 알려 주는 책이었습니다. 유물은 그 자체로 모든 답을 말해 주지 않지만, 실험과 관찰을 통해 과거의 행동과 지혜를 조금씩 되살릴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고고학은 죽은 물건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라진 삶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기술과 생활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직접 실험하며 이해해야 할 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조금 달라졌습니다. 실험고고학의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과학, 역사, 인간의 창의성을 함께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