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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적 사고 - 제3의 선택으로 세상을 바꾼 이노베이터들의 생각법
로저 마틴 지음, 범어디자인연구소 옮김 / 유엑스리뷰 / 2026년 2월
평점 :

로저 마틴의 「통합적 사고」는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에 “굳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습니다. 매출이냐 수익성이냐, 혁신이냐 안정이냐, 단기 성과냐 장기 투자냐 같은 양자택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서로 충돌하는 두 모델 사이의 긴장을 끝까지 견디며 전혀 새로운 제3의 해답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통합적 사고’라고 부르는 이 책은, 리더십과 문제 해결을 바라보는 제 시야를 크게 넓혀 주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통합적 사고를 ‘천재들만의 특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P&G의 A.G. 래플리, 포시즌스의 이저도어 샤프, 레드햇의 밥 영 등 서로 다른 업계의 리더들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위기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준 특징이 바로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두 모델의 장점만을 살린 새로운 해법을 집요하게 찾아 나가는 태도”였음을 보여 줍니다. 이들은 매번 정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반된 모델이 주는 불편한 긴장을 서둘러 정리하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해 보자”를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설명을 읽으며, 저 역시 어렵고 복잡한 상황 앞에서 ‘일단 하나를 정하고 보자’며 스스로 생각의 여지를 닫아 버렸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로저 마틴이 정의하는 통합적 사고는, 흔히 말하는 타협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타협이란 둘 다 조금씩 양보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라면, 통합적 사고는 각 모델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버린, 더 뛰어난 제3의 모델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고, 오히려 복잡성을 끌어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통합적 사고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견디며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빠른 해답보다 ‘생각의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저자의 철학을 잘 드러내며, 저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책의 구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부에서는 통합적 사고의 개념과 이론을 소개하고, 2부에서는 이를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과 템플릿을 제시합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통합 과정을 ‘선택지의 이해 → 검토 → 모색 → 평가’라는 네 단계로 정리한 부분이었습니다. 먼저 상반되는 두 모델을 최대한 선명하게 정의하고, 각 모델이 기반하고 있는 가정, 강점과 약점을 꼼꼼히 검토한 후, 두 모델의 요소를 어떻게 재조합할 수 있을지 모색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재구성된 모델이 처음의 두 선택보다 정말 더 나은지 평가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처럼 생각의 흐름을 분해해 보여 주기 때문에, 독자는 “저 리더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을까?”라는 막연한 감탄을 넘어, 실제로 따라 해 볼 수 있는 사고 절차를 배우게 됩니다.
저자가 탁월한 리더들에게서 발견한 또 하나의 특징은,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붙들고 있는 시야입니다.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문제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 분석하면서도, 각 조각을 독립된 것처럼 다루지 않고, 늘 전체 구조 안에서 위치를 살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제품 개발에서 생산 비용과 디자인, 브랜드 이미지를 따로 떼어 보지 않고, “이 요소들이 서로 어떤 긴장을 만들고, 그 긴장이 최종 고객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통합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읽으며, 제가 업무나 글쓰기를 할 때도 세부 요소에 몰입하다가 정작 전체 구조를 놓쳐 버린 경험들이 떠올랐습니다. 통합적 사고는 결국 줌인과 줌아웃을 오가며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문장은 “탁월한 리더에게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행동이 아니라 사고 방식이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저자는 성공한 리더들의 행동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표면적인 행동만 따라 하면 오히려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대신, 그들의 ‘보이지 않는 사고 과정’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이 진짜 학습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들이 종종 “성공한 사람이 새벽 4시에 일어나니 당신도 일찍 일어나라” 식의 행동 모방에 머무르는 한계를 날카롭게 찌르는 통찰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그런 통속적인 모방을 넘어, “그들은 어떻게 문제를 바라보고, 모델을 세우고, 가정을 의심했는가”라는 근본을 알려 주려 합니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실질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대립하는 선택지 앞에서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려 하지 말고, 더 깊이 생각하는 쪽을 택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만났을 때, 불안을 줄이기 위해 빠른 결정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연구한 리더들은 오히려 이 긴장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하면서, 기존 모델들이 놓치고 있는 제3의 요소를 끈질기게 탐색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일과 삶에서 “둘 다 중요하지만 동시에 잡을 수는 없는 것 같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실제로 양자택일이었겠지만, 적어도 몇몇은 제가 충분히 생각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이분법의 안전함’ 속으로 도망친 건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은 또한 현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적으로 조명합니다. 정치·사회 담론에서의 진보와 보수, 일상 속 ‘우리 편 vs. 남’ 구도가 얼마나 많은 갈등과 비생산적인 논쟁을 낳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얼마나 편리한 단순화 욕구가 숨겨져 있는지를 날카롭게 짚습니다. 통합적 사고는 이런 이분법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도 유효한 도구입니다. 상반되는 입장을 단순히 양쪽 다 옳다는 식으로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입장이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가치’와 ‘두려움’을 파헤쳐, 그 둘을 동시에 존중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조직 내 갈등이나 사회적 논쟁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시사를 주었습니다.
「통합적 사고」를 읽고 난 뒤, 저는 문제를 볼 때 자동으로 떠오르던 ‘혹은(or)’이라는 접속사 대신, ‘그리고(and)’라는 단어를 조금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빠른 실행과 깊이 있는 사고, 개인의 행복과 성과, 안정과 변화처럼, 그동안 서로 대립한다고 여겨 온 값들을 동시에 붙들어 보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저 마틴이 말하는 통합적 사고는, 결국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하나의 태도였습니다. 이 책은 탁월한 리더의 의사결정 방식을 분석한 경영서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일상적 선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생각의 기술서’로, 제 안의 이분법적 습관을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흔들어 놓은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