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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영국 책방 도감 - 개성 넘치고 아름다운 영국 로컬 서점 해부도
시미즈 레이나 지음, 이정미 옮김 / 모두의도감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영국 책방 도감」은 영국 곳곳의 독립 서점을 공간 단위로 세밀하게 해부해 보여 주는 책으로, ‘책방’이라는 장소를 단순한 상업 시설이 아니라 동네의 시간과 사람의 취향이 켜켜이 쌓인 문화적 생명체로 느끼게 해 주는 작업이었습니다. 저자 시미즈 레이나는 런던부터 북잉글랜드까지, 동네 주민에게 사랑받는 19곳의 로컬 서점을 선정해 그 구조, 동선, 진열 방식, 채광과 색감, 책의 큐레이션과 점주의 철학까지 한곳씩 들여다보며, “좋은 책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간적으로 답을 제시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점은, 이 도감이 관광 가이드북이 아니라 ‘공간 설계의 기록’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자는 각 서점의 외관과 내부를 사진으로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입구에서 계산대까지 이어지는 동선, 어느 지점에서 시선이 멈추는지, 어린이 코너나 카페 좌석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 등을 도면처럼 풀어냅니다. 덕분에 독자는 서점 안을 실제로 걸어 다니듯이 상상할 수 있고, 왜 어떤 책방은 들어서는 순간 편안함이 느껴지고, 또 어떤 곳은 괜히 위축되는지 그 이유를 공간 구조 차원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책방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동안 막연히 “분위기가 좋다”고 느꼈던 감정 뒤에, 빛, 동선, 높이, 책장의 위치 같은 치밀한 설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각 서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책방이라는 공간이 ‘책을 파는 곳’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의 거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서점은 아이들의 독서 모임과 그림책 읽어주기 시간을 중심으로 동네 부모와 아이들을 연결하고, 또 다른 서점은 정치·사회 이슈를 다루는 작은 토론회나 저자 강연을 열어 지역의 지적 허브 역할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지 행사를 많이 여는 것이 아니라, 서점 주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와 동네 사람들의 관심사를 절묘하게 교차시키는 큐레이션 감각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서점 주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책을 들여놓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곧 “이 동네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시작하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시선은 공간을 단순히 ‘예쁘게 꾸민 인테리어’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입니다. 사진만 보면 비슷해 보이는 두 서점도, 실제로는 진열 방식 하나, 안내문 한 줄, 손글씨 POP 카드에 담긴 문장만으로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는 사실을 꼼꼼하게 짚어 냅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 코너를 어른 공간과 유리로 분리하지 않고, 바닥에 가까운 낮은 책장을 둔 뒤, 아이 눈높이에 맞는 그림책을 정성껏 골라 꽂아 둔 서점의 사례는, 물리적 높이와 동선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환영받는 느낌’을 만드는지 잘 보여 줍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같은 책도 어디에,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운명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갔던 부분은, 저자가 각 서점에 깃든 ‘온기’를 세밀하게 포착하는 대목들이었습니다. 오래된 목재 서가와 삐걱거리는 계단, 창가에 놓인 작은 1인용 의자, 차를 마시며 책을 펼치기 좋은 조도, 구석진 자리에 마련된 낡은 소파와 담요 하나까지, 공간의 세부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앉아 책을 펼쳐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런 요소들이 “시간을 써도 아깝지 않은 장소”,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든다고 말하며, 결국 좋은 책방이란 책을 사는 곳이기 전에, 책과 함께 머무는 경험을 선물하는 곳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설명에 깊이 공감하며, 책을 읽는 내내 실제로 영국의 서점들을 여행하는 듯한 대리 체험을 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지점은, 책이 ‘도감’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감이라는 말에는 수집과 분류, 표본화의 뉘앙스가 담겨 있는데, 저자는 각 서점을 기능과 분위기, 동선과 콘셉트 측면에서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비교할 수 있게끔 구성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나는 어떤 유형의 서점을 좋아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보게 되고, 나아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어떤 서점이 더 필요할까?”라는 상상을 해 보게 됩니다. 저 역시 그동안 좋아했던 서점들을 떠올리며, 내가 특히 끌렸던 요소가 조용한 2층 독서 공간이었는지, 주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큐레이션이었는지, 혹은 동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열린 구조였는지 하나씩 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총평하자면,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영국 책방 도감」은 단지 영국 서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당신이 사랑하는 서점은 어떤 모습인가요?”라고 묻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책과 사람, 도시와 동네를 잇는 공간으로서 서점의 가능성을 다시 보게 만든,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공간 기록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