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논어×중용 필사책
공자.자사 지음, 최종엽 편저 / 유노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논어 중용 필사책》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단순한 필사 노트가 아니라, 고전의 정신을 손끝으로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는 한 편의 정신 수양서로 느껴졌습니다. 저자 최종엽은 단순히 ‘논어’와 ‘중용’의 문장을 옮겨 적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행위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삶의 중심을 찾아가도록 안내합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붓이나 펜 끝으로 사유를 함께 새겨 넣는 듯한 감각이 들었고, 읽는 시간 자체가 곧 사색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배움의 형식’을 굳이 강요하지 않는 점에 있습니다. 최근의 고전 해설서들은 친절하게 풀이를 붙이고 사례를 제시하지만, 최종엽의 필사책은 오히려 여백을 제공합니다. 그 여백 속에서 스스로 문장의 뜻을 곱씹으며, 지금의 내 삶과 겹쳐 보게 됩니다. ‘온기 없는 지식이 아닌 살아 있는 글’을 손으로 되새기는 구조가 오히려 더 깊은 내면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특히 논어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주제 의식이 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쓰는 행위가 바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며, 기쁨은 그 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납니다.
또한 이 책은 ‘중용’의 정신을 삶의 균형감으로 풀어내는 점에서 특별했습니다. ‘극단을 피하고 중도를 지킨다’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언행과 판단 속에서 어떤 중용이 가능한지를 스스로 묻도록 합니다. 필사를 하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가다 보면, 문장의 무게가 손끝을 통해 가슴으로 전해집니다. 행동을 재촉하던 마음이 점차 느려지고, 생각이 깊어지며, 문장 속에 담긴 선인들의 호흡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고 즉각적인 시대에, 글씨를 쓰며 스스로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오히려 치유의 과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책 전반에서 ‘정성’이라는 키워드를 잔잔히 강조합니다. 논어의 핵심이 인(仁)과 예(禮)에 있다면, 그것을 실천하는 첫걸음은 마음가짐의 정성입니다. 필사라는 행위는 단순히 문장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정성의 연습’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글자를 흘려 쓰면 문장 또한 쉽게 흘러가 버리지만, 마음을 모아 정자로 써 내려가면 그 한 획 한 획이 마음의 결을 닮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맑히는 훈련은 결국 논어와 중용이 전하고자 한 인간됨의 길과 연결됩니다.
읽는 내내 느낀 것은, 이 책이 현대 독자에게 ‘고전의 언어를 자기 언어로 되살리는 통로’라는 점이었습니다. 단순히 옛 성인의 말씀을 감상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뜻을 직접 몸으로 새기게 하는 구조를 통해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게 합니다. 특히 ‘중용’의 문장을 필사할 때는 유교적 가치가 단순히 윤리적 규범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평형 감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지나친 감정이나 판단에서 벗어나 ‘적정한 마음의 무게’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곧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입니다.

총평하자면, 《논어 중용 필사책》은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식의 제안서입니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마음 한편이 한결 단정해지고, 말과 행동에 여백이 생깁니다. 손이 따라간 문장이 곧 마음의 근육이 되어,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만들어 줍니다. 선현의 말씀을 손끝으로 다시 쓰며, 자신과 세계를 가다듬는 일은 단순한 필사 이상의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은 서두르지 않고 자신을 다지는 법, 그리고 고전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이유를 조용히 일깨워주는 귀한 안내서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