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사생활 - 이토록 게으르고 생각보다 엉뚱한 프린키피아 6
알베르 무케베르 지음, 이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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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알베르 무케베르의 『뇌의 사생활』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깊이 자기 뇌에 속으며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이성이 언제나 합리적으로 작동한다는 오래된 믿음을 해체하고, 우리의 판단이 감정과 욕구, 기대, 그리고 수많은 인지 편향에 의해 조용히 왜곡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드러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 “나는 꽤 이성적인 편”이라고 믿어온 확신이 조금씩 흔들리면서, 나의 생각을 신뢰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뇌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단순히 결함이나 오류로 보지 않고, 일종의 생존 전략이자 ‘다정한 거짓말’로 해석하는 시각이었습니다. 뇌는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그대로 견디기보다, 세상을 단순하게 정리해주는 편리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옳다고 우기고, 사소한 단서 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근거가 빈약한데도 확신을 키워나갑니다. 이 책은 그런 현상을 비난하기보다, 인간 뇌가 가진 기본적인 작동 원리로 이해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지나치게 책망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동시에 그러한 ‘다정한 거짓말’이 관계를 망치고 현실 인식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짚으면서, 그 위험성을 직시하게 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개념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메타인지였습니다. 뇌의 자동적 작동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지만, 그 자동적 사고에 무조건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바로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능력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그럴까?”, “내가 지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단순한 행위가, 생각보다 강력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은 일상에 바로 적용 가능한 실천법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지거나 확신이 치솟을 때, 예전보다 한 박자 늦춰서 스스로의 판단 과정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왜 가짜 정보와 가짜 뉴스에 반복해서 속아 넘어가는지도 설득력 있게 설명합니다. 단순히 미디어 환경이나 교육 수준의 문제로 돌리는 대신, 뇌가 인지 부하를 줄이고자 빠른 결론과 익숙한 해석을 선호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가짜 정보에 쉽게 속는 것은 ‘어리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뇌의 진화적 전략과도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접하고 나니, 다른 사람의 잘못된 믿음을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그 이면에 있는 보편적인 뇌의 메커니즘을 떠올리게 되었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덜 공격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뇌의 한계를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뇌가 어떤 습관적 왜곡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수록,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뇌를 ‘통제해야 할 문제적 존재’가 아니라, 이해하고 조율해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 파트너’로 바라보게 만드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느꼈습니다. 뇌를 적으로 돌리는 순간 자기혐오와 체념으로 빠져들기 쉽지만, 뇌를 동료로 대할 때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통찰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뇌의 사생활』은 뇌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어려운 수식이나 전문 용어를 늘어놓기보다는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만한 사례들로 내용을 풀어냅니다. 덕분에 책을 읽는 과정이 학술서 공부가 아니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다시 해석해보는 흥미로운 관찰 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사소한 실수나 부끄러운 행동을 떠올리며 “그때 내 뇌는 왜 그렇게 작동했을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총평하자면, 이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인간 인지의 복잡성과 매력에 대한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뇌의 오류를 알게 되었기에 더 조심스러워졌고, 동시에 그런 불완전함을 끌어안은 채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 흥미롭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완벽하게 이성적인 사람으로 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자기 생각을 절대적 진리로 믿기보다, 언제든 수정 가능한 가설로 대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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