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 - 내 인생을 주도하는 시간 설계의 기술
릭 파스토르 지음, 김미정 옮김 / 청림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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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립(Grip)』은 “바쁘게 살았는데, 돌아보면 정작 이룬 것은 없는 것 같다”는 막연한 허탈감에 정면으로 답을 던지는 책입니다. 저자 릭 파스토르는 스타트업에서 30명을 이끄는 매니저로 일하면서, 끝없는 회의와 메시지, 급한 일들에 쫓기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과 삶이 손에서 계속 미끄러져 나간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이 책은 그가 실제로 스스로의 시간을 다시 설계하고, 동료들과 함께 실험하며 다듬어 온 “일과 삶을 붙잡는 방법”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책이 시간을 쪼개는 기술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위해 시간을 쓸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책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 ‘Grip’, 즉 “내 시간과 에너지를 다시 붙잡는 힘”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늘 바쁜 이유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무엇을 먼저 할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이메일과 메신저부터 열어버리는 습관, 일정표를 타인의 요구로만 채워버리는 태도, ‘오늘 처리한 일’만 신경 쓰고 정작 “장기적인 목표”와 연결하지 못하는 방식을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 역시 하루를 ‘일정 관리’가 아니라 ‘알림에 대한 반응’으로만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일단 멈춰 서서 “3가지 레벨의 시간 관리”를 제안합니다. 1) 큰 방향(장기 목표·가치), 2) 프로젝트와 역할, 3) 오늘의 작업. 이 세 레벨이 연결되지 않으면, 바쁘게 살수록 허무해진다는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책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저자가 제시하는 매우 구체적인 실천법들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리뷰(Review) 시간’을 정해 놓고, 지난 주에 무엇을 했는지, 무엇이 잘 되었고 무엇이 막혔는지, 다음 주에는 어디에 시간을 쓰고 싶은지 적어보라고 권합니다. 이때 “해야 할 일(to-do)”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한다고 믿는 일,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분하는 과정 자체가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렬하는 훈련이 됩니다. 또 하루를 설계할 때는, 에너지가 높은 시간대에 가장 중요한 일(Deep Work)을 배치하고, 회의·이메일·행정 업무 같은 얕은 일을 에너지가 떨어지는 시간대로 몰아두라고 조언합니다. 단순한 시간표 만들기가 아니라, 나의 생체 리듬과 집중 패턴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추어 세상을 재배치하는 방식이어서, 실천해 볼 가치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회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저자의 태도도 신선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회의는 필요 이상 길다. 회의가 길어지는 이유는 목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회의 전에는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 얻고 싶은 단 하나의 결과”를 미리 명시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기 전에, 다음 행동(Action)과 책임자, 마감 기한을 분명히 기록하지 않는 회의는 사실상 실패한 회의라고 못을 박습니다. 이메일과 메신저 처리도 ‘실시간 반응’이 아니라 하루에 몇 번만 집중해서 처리하는 방식을 권합니다. 이런 원칙들은 결국 “타인이 내 시간을 계속 잘게 쪼개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늘 남의 요청부터 처리하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최소한 하루의 일부라도 ‘내가 먼저 정한 중요한 일’을 위해 예약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후반부는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시간 사용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일에서의 성취만큼이나, 관계·건강·성장·휴식에 시간을 의식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일이 삶 전체를 지배해버리고, 정작 회사 밖에서는 텅 빈 사람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는 “카렌더에 회의와 마감만이 아니라, 산책·독서·운동·가족과의 시간도 넣어 두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계획적인 삶처럼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요한 일은 일부러 시간을 비워 주지 않으면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특히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라는 조언은,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내게 많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총평하자면, 이 책은 새로운 생산성 앱이나 멋진 플래너를 소개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단순한 원칙—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고, 정기적으로 돌아보고 수정하고, 타인의 요구에만 끌려가지 않는 법—을 다시 일상으로 끌어내리도록 돕는 책입니다. 읽는 동안 내 하루·일주일·한 해를 떠올리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가?”, “10년 뒤에도 이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떠올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립』은 효율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싶다”고 느끼는 모든 이에게, 늦기 전에 시간을 다시 붙잡아 보라고 조용히 권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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