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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300쇄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ㅣ 마흔에 읽는 서양 고전
강용수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난해한 사상을 ‘삶의 기술’이라는 언어로 다시 풀어내,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마흔이라는 시기에 꼭 필요한 통찰로 들려주는 책입니다. 젊을 때는 이상과 가능성으로 버티던 삶이 마흔을 지나며 현실의 한계와 상실, 반복되는 일상과 책임감의 무게로 다가올 때, 쇼펜하우어의 냉정한 비관주의는 의외로 묵직한 위로가 됩니다. 이 책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단편적 문장을 넘어서, 그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그리고 그 인식이 어떻게 더 성숙한 삶의 태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이 쇼펜하우어를 단순한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환상을 걷어내고 삶을 직시하도록 돕는 현실주의자”로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젊을 때는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이 희망처럼 들리지만, 마흔 즈음에는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의 바탕에 언제나 결핍과 욕망이 있으며, 욕망이 채워지는 순간에도 곧 다른 결핍이 뒤따른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 사상을 빌려, 우리가 끊임없이 더 많은 성취와 인정, 소유를 좇다가도 채워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완전히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욕망할지, 어느 선에서 만족할지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깊게 남았습니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핵심 개념인 ‘의지’에 마흔의 삶을 포개어 해석합니다. 쇼펜하우어에게 의지는 세계를 움직이는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힘이자 고통의 원천입니다. 이 책은 이를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멈추지 못하는 비교와 경쟁, 끝없는 자기증명 욕구”로 보여줍니다. 마흔 이후의 삶에서 우리가 진짜 힘들어하는 부분은, 외부 환경이라기보다 멈추지 않는 내면의 의지, 즉 ‘더 잘돼야 한다’는 집착이라는 점을 짚어 줍니다. 이때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길은 의지를 완전히 끊어내는 극단이 아니라, 의지의 흐름을 낮추고, 예술·사색·관조를 통해 잠시 의지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책은 독자가 현실을 도피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내적 거리를 연습하게 합니다.

또한 이 책은 인간관계와 타인에 대한 기대를 다루는 쇼펜하우어의 냉혹한 통찰을 마흔의 시선에서 재해석합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 깊이 실망하며 상처받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기심과 한계를 직시하라고 말하며, 타인에게 지나친 기대를 거는 대신 “거리 두기와 단호한 경계”를 통해 자신을 보호할 것을 권합니다. 이 책은 이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 마흔 이후의 인간관계는 불필요한 사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소진시키지 않는 건강한 거리와 소수의 깊은 관계를 선택하는 시기라고 설명합니다. 타인에게서 모든 위로와 의미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를 돌보고 내면을 단단히 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조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일과 성공에 대한 부분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명성과 부, 지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이 아니며, 오히려 남의 시선과 비교에 우리를 더 깊게 묶어 둔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 사상을 바탕으로, 마흔 이후의 커리어는 “이기는 싸움”보다 “지지 않는 삶”이 중요해지는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젊은 날처럼 무한 경쟁의 출발선에 서 있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흐르듯 살 수도 없는, 애매하고 복잡한 시점에서 ‘적당한 포기’와 ‘현명한 만족’을 배우는 것이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쇼펜하우어식 비관은 결국 ‘다 이룰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할 가치가 없다’는 냉소가 아니라, 욕망을 줄여 얻는 마음의 평온과 자유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총평하자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적 이론을 해설하는 책이기보다, 삶의 현실 앞에서 상처받고 지친 사람에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름의 평온을 찾자”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안내서였습니다. 쇼펜하우어 특유의 비관을 빌리되, 거기서 무력감이 아니라 현실을 견딜 힘과 작은 자유를 길어 올리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마흔 전후의 독자에게 특히 깊이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