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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비밀 코스 여행
최상희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작은 항공기들의 저렴한 비행기 삯 덕분에 제주도 여행가기가 더욱 쉬워져 많은 사람들이 이 섬을 다녀오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제주도 주민들과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올레길이 조성되면서 제주에 좀 가봤다 하는 사람들도 다시 한 번 지도를 펼쳐보게 하는 매력이 많은 섬이 됐다. 한국 사람에게 제주도는 하루키가 '둥둥둥' 북소리를 듣고 멀리 떠났던 것처럼 도무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곳이 됐다.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 그 도시 안에 갇힌 내 삶이 문득 버거워질 때마다 찾아가곤 했던 제주도. 자전거를 타고도 3박 4일이면 섬 해안가를 넉넉히 일주할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지만, 이상하게 해마다 또 가고 싶게 하는 섬이다. 제주의 풍광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같은 계절이라도 날씨에 따라 어제오늘이 다르고, 아침과 저녁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제주도만의 그런 매력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섬을 여러 번 여행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주 찾는 제주도를 여행책자나 TV에 나오는 관광지로만 돌아본다면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할 터.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던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최상희, 웅진리빙하우스)의 저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온몸을 들썩이게 하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찾아 아예 2년 동안 카메라를 친구 삼아 섬의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사는 것도, 여행하는 것도 아닌 '중간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고 느낀 제주의 매력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중간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제주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 - 최상희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제주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 섬에서 보낸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늦기 전에 나도 꼭 해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중간 여행자'라 함은 적어도 이렇게 한 여행지에서 사계절을 보내봐야 들을 수 있는 호칭 같다. 1년 예정으로 떠났다가 2년을 살게 된 이 책의 저자는 아직도 제주도를 잘 모르겠단다. 볼수록, 살수록, 알아갈수록 섬은 더 많은 매력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겠지.  

"사실 제주의 참다운 맛과 멋은 유명 관광 명소에 있지 않다. 바닷가 작은 마을과 동네 사람들이 들르는 소박한 식당, 내비게이션의 실수로 우연히 접어든 한적한 오솔길이야말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다."- 본문 중      

이렇듯 저자가 섬에서 주로 만난 곳은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라 지극히 '비관광지'인 곳들이 많다. '수월봉과 자구내 포구', '제주마 방목지', '행원리 바닷가 마을' 등은 중간 여행자의 감성이 묻어나는 비관광지로 밑줄을 쳐놓거나 메모해 놓았다가 찾아가보고 싶게 한다.     

저자는 섬에서 중간 여행자로 살면서 없어진 습관 하나가 카페에 가는 것라고 한다. 아침에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섬을 둘러보다 풍광 좋은 곳에 앉아 한잔 마신다. 그 커피가 다 떨어질 때쯤 집에 돌아오곤 하던 그에게 섬은 어디나 좋은 카페가 되어주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중간 여행자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은 돌아가신 사진가 김영갑씨다. 요즘엔 김영갑 갤러리가 제주의 명소가 되었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제주 사람들은 "당신이 찍은 것은 제주도가 아니"라고 했단다. 그건 아마도 (제주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것이 중간여행자에게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서 일 것이다. 여염집의 돌담 하나도, 그 돌담 너머 빨랫줄에서 춤을 추는 빨래 하나도.  

섬사람의 일상이 내겐 특별하다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 드는 제주의 밤도 아름답지만, 모처럼 여행으로 설레는 마음에 잠 못 드는 저녁이라면 제주도민의 일상을 마주해보는 것도 좋겠다. 제주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해질녘에야 비로소 섬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민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 들어가 육지에서는 맛보기 힘든 '고기국수'나 '갈치국'을 먹으며 섬사람들의 일상을 경험해보는 것도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된다. 

여행지에서 주민들의 삶과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시장이다. 제주에는 지역별로 날짜가 다른 오일장이 열린다. 이 밖에도 포구의 느낌이 나는 작은 항구들, 도회적이고 예술적인 갤러리와 미술관, 주민들이 애용하는 소박한 간판을 단 동네 골목의 맛집 등은 섬사람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소박하고도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는 여행지이다.  

"제주도 사람을 제일 많이 만나볼 수 있는 큰 시장 동문시장, 울창한 나무 사이 길로 주민들의 산책로이기도 한 삼성혈, 돌과 바람과 물을 형상화한 독특하고도 멋진 건축물이 돋보이는 이타미 준의 미술관, 육지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고기국수집들..." 

내게도 섬사람들과의 잊기 힘든 추억이 있는데, 그건 바로 신비하고 애달픈 숨비소리를 내며 물질을 하는 해녀 할망들과의 만남이었다. 제주 해안가나 우도를 지나가다가 해녀들을 마주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그녀들의 삶을 바라보자. 보통은 60이 넘은 해녀 할망들이 힘들게 딴 꿈틀꿈틀 살아 있는 전복과 소라를 맛볼 수도 있다. 그녀들이 말할 때 들려오는 이국적인 제주도 방언속에서 진짜 제주를 느끼게 된다.

정말 가르쳐주기 아까운 나만의 아지트 

여행지에서 우연히도 혹은 길을 잘못 들었다가 마주치는 곳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장소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또 찾아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면 하는 나만의 아지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알려주기 아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 혼자 독차지하던 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눈물까지 머금고 나만의 비밀스런 여행지를 공개하는 이유는 항상 혼차 찾던 그곳에서 동행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경을 품은 멋진 곳에 가면 가슴이 뛰고, 이렇게 좋은 곳에 좋은 사람과 같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좋지 않냐?" 하면 "진짜 좋아"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도 반할 확률 100%라는 섬 속 나만의 아지트들이 여행을 가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게 한다. 핑크빛 솜사탕처럼 아름다운 왕 벚꽃이 피어나는 마을, 햇살과 바람이 통하는 어디에도 없는 파란 바다 앞 카페.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관능의 길이라는 올레길 어느 코스도 물론 나만의 아지트 목록에 들어 있다.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은 부제인 '럭셔리 패키지보다 백배는 재미있다!'가 아니라 '백배는 맛있다!'가 더 적절할 정도로 제주 전역의 추천 맛집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유난히 행복해하는 여성 특유의 식감과 섬세함으로 사진은 물론 음식 품평, 가격, 장단점, 맛있게 먹는 방법까지 잘 묘사(?)되어 있다. 색다른 추억을 위한 색다른 일정안내도 참신하다. 예를 들면, '오랜 친구들과 수다가 즐거운 볼거리&맛집여행 코스', '선배와의 짧은 2박 3일 겨울 여행 코스', '남자친구와의 가을 하루 여행 코스' 등. 

일반적인 여행책처럼 지도도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잡지사 기자 출신답게 유명 관광지들과 교통, 숙소, 축제 등이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을 갈 때 배낭 속에 넣고 다니면 유용할 것 같다. 올 휴가 때는 제주도에 가서 섬사람들의 일상도 가까이 접해보고, 저자가 추천한 비경 아니 비관광지가 주는 소박하고도 특별한 여행의 즐거움을 느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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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 조가 되어 우리나라와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될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 한반도의 열배가 넘는 큰 땅덩이에 칠레, 우루과이, 볼리비아, 파라과이와 국경을 이웃한 나라, 마라도나가 떠오를 정도로 세계 7위의 축구를 잘하는 나라 아르헨티나.  

영화 에비타(Evita)에서 나오는 애절한 노래 'Don't Cry For Me Argentina'가 들려오기도 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로부터 추앙받는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태어난 고향으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감동적인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픔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건지 내게 아르헨티나는 왠지 축구 강국보다는 슬픈 한이 많을 것 같은 나라로 다가오곤 한다.   

일생을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아르헨티나의 도시와 사랑에 빠져 지내던 왕가위 영화 감독은 평생을 벼르고 별렀던 야심작 <해피 투게더>를 만들었는데 원래 이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였다고 한다. 영화가 완성된 뒤 제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고백했다. 아르헨티나는 그런 곳이었다고, 실제로 알기 전에는 잘 알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는데 막상 겪어보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어떤 곳인지 표현하기는 더더욱 힘든 난해한 사랑 같았다고.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의 저자 손미나는 역사나 축구보다 학창시절 우연히 보고 접한 탱고 공연과 아르헨티나가 낳은 천재 작가 보르헤스의 작품들에 마음을 빼앗겨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여행을 떠난다. 나도 가끔 TV에서 탱고춤을 보긴 했지만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비행기로 가는 데만 이틀이 걸린다는 멀고도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까지 했나 궁금해서 책장을 서둘러 넘긴다.   

다양한 이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도시가 주는 환상과 로망, 그것을 뛰어넘는 도시 곳곳의 열정, 사랑과 열망, 아픔과 열정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그 도시의 비밀을 한꺼풀씩 벗겨가는 일은 진정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 본문 중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한 저자의 심정이 담긴 글인데, 누가 내가 사는 도시 서울에 대해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이 나라에 대해 호기심과 함께 부러움마저 느끼게 된다. 그것은 드넓은 대평원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소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와 감미로운 와인,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도시의 수려하고 세련된 유럽풍의 이국적인 건물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르헨티나 사람은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유대인처럼 일을 하고 스스로를 독일인이나 영국인이라고 착각하는 이탈리아인이다'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다양한 민족이 충돌하고 융화하면서 생겨난 독특한 문화에 대한 느낌일 것이다. 

그런 문화 덕분인지는 몰라도 춤추는 슬픈 생각, 노래하는 영혼, 아르헨티나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는 탱고가 생겨나고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이 탄생하여 탱고라는 예술적인 춤과 노래로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요즘은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천국이니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성형의 나라, 세계 최고 거짓말쟁이들의 나라라느니 하는 오명도 생겨났다고 하지만.     

그러다보니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 아르헨티나에는 심리학자가 무척 많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 물음을 온 국민이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나라,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일주일에 한번씩은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는단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탱고춤을 추는 예술활동 역시 스스로를 치유하는 심리치료가 아닐까. 16세기 에스파냐(스페인)가 침략해 원주민들을 죽이고 쫓아내 세운 이민국가의 원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쌩뚱맞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사랑 보카, 챔피언이 되어주어 고마워  

'이름도 바꾸고 성도 바꾸고, 종교도 바꾸고 국적도 바꾸고 마누라도 바꿀지언정 내가 지지하는 축구팀만큼은 절대 바꿀 수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축구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자존심이고 열정의 대명사이며,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마다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준 절대적인 존재다.  

우리나라도 그랬듯이 축구나 야구같은 스포츠들이 국민들의 관심과 불만을 정치에서 떼어내려는 국가의 기만술에 활용되는 건 더 심하면 심했지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나라는 그런 것을 뛰어넘는 것 같다. 우리의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만큼이나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극적인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1986년의 월드컵 축구경기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영국에 자국의 영토였던 포클랜드 섬을 영영 빼앗긴 아르헨티나는, 1986년에 전쟁 상대국 영국과 축구로 월드컵 16강에서 정면 승부를 하게 된다. 우리의 한일전만큼이나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던 그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2-1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콧대를 꺾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대신해 한풀이를 제대로 한 셈이다. 게다가 결승에서 세계 최강 중 하나인 독일을 만나 후반 5분을 남겨두고 극적인 한 골을 성공시켜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그런 축구 역사에 아니 아르헨티나 역사에 길이 남을 두 골을 넣은 사람이 바로 극 빈민촌 출신의 디에고 마라도나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시 영국과의 경기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두 골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헤딩을 하면서 너무나 절묘하게 손으로 슬쩍 밀어 넣었던 첫 번째 골은 지금도 '신의 손이 넣은 골'로 유명하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날 경기에서 마라도나의 손은 그야말로 신의 손과 같은 역할을 해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크나큰 기쁨과 위안을 안겨주었고, 지금까지도 그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마라도나의 세 가지 꿈 중 하나였다는 보카 주니어스팀 선수. 수많은 이민자들을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받아들인 항구 '라 보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축구팀인데, 아르헨티나 서민들에게는 단순한 축구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 독재정권은 새발의 피였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1970년대 군사독재 권력의 횡포와 저항하던 국민 3만여 명을 사망하게 하거나 실종하게 한 인권유린 등의 풍파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사람들에게 축구는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된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한다. 민주화된 근래에도 나라가 휘청할 정도로 끔찍한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파산하고 힘을 잃은 서민들이 시원하게 골문을 차고 드는 공을 보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빈민촌의 스타 배우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  

탱고와 보르헤스의 시(詩)에 끌려 떠난 작가는 시간이 지나고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고 얘기를 나누면서 아르헨티나의 다른 모습들을 경험하게 된다. 주민들이 아르헨티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말하는 안데스 산맥이 있는 북쪽지방의 원주민 지역,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평원 팜파 그리고 경찰들조차 가기 꺼려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외곽 빈민촌이 그곳들이다.    

우연히 알게 된 영화 스타라고 하는 사람이 집이라며 초대한 곳이 '비야 21'이라고 하는 소외된 빈민촌이다. '비야'는 스페인어로 '마을'이라는 뜻인데 중남미 지역에서는 극빈민촌을 구분하는 행정단위로 고유의 이름도 지니지 못하고 있는 살기 비참한 동네들이다. 택시기사에게도 세 번 거절을 당한 다음에 겨우 찾아간 이곳은 아르헨티나에 와서 본 모습과 너무나 달라서 과연 같은 도시, 같은 나라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 아르헨티나도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매우 심각한 빈부격차를 겪고 있나 보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는 영화 배우를 하고 싶어서 무작적 영화감독을 찾아다니다 조연이나마 꿈을 이룬 이 빈민촌의 스타배우는 무려 열일곱 명의 자식을 둔 장년의 가장이다. 얼마 전부터 동네 젊은사람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영화 학교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는, 영양부족으로 이가 듬성듬성 빠진 이 아저씨는 우리를 슬프고 절망하게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이란 과연 어떤 것들일까. 

탱고춤과 아름다운 도시를 동경하여 떠난 여행기에도 아르헨티나인들의 아픈 상처와 한(恨)이 그려져 있는 건 지금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이 나라 정치·경제의 암울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책으로나마 대해 보니, 이번 남아공 월드컵 축구에 나오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나 응원하는 국민들의 열광적인 모습이 남다르게 보일 것 같다.    

참조) 이 책 끝부분에 나오는 이국적이고도 간단한 인사말을 적어본다.

ㅇ 감사합니다 : 무차스(Muchas) 그라시아스(gracias).

ㅇ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 소이(Soy) 데(de) 꼬레아(Corea) 델(del) 수르(sur).

ㅇ 제 이름은...입니다 : 메(Me) 야모(llamo) ...

ㅇ 안녕히 가세요/계세요 : 아디오스(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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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한국여행작가협회 지음 / 열번째행성(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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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말은 오랜시간 어떤 것을 사람이 '길들이다'의 표현에 나오는 그 길이다. 사람들이 각양각색이듯 그래서 길들도 무척이나 다양하게 나있다. 임도길, 오솔길, 옛길 등으로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길은 바람과 악수하고 인사하며 걷는 길,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는 길, 길에서 길을 배우는길..명상과 치유의 길로써 사람들을 길들이더니 그만 걷기에 푹 빠지게 한다.  
 
비슷한 뜻의 도로라는 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화려하지 않은 소박함, 인위적이기보다는 자연 그대로, 내 눈 밖의 것보다는 내 마음 안의 것을 바라보는 감성을 싹트게 해주기도 하는 것이 또한 길이다. 느림의 미학과 여행의 감성에 있어서 동지이기도 한 기차는 경의선에 이어 경춘선도 곧 복선 전철화 되면서 속도의 효율논리에 의해 사라지고 있다. 길이 도로에 의해 덧발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111곳이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걷기 좋은 곳을 싣기 위해 총 27인의 여행작가가 참여한 이 책에는 서울의 하늘공원부터 눈길 닿는 곳마다 미소로 답해주는 지리산 둘레길,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 나들길, 돌담으로 이어진 고샅길 하회마을, 바람과 돌이 공존하는 제주 올레길까지 짧게는 2km 안팎에서 길게는 30km가 넘는 걷기 좋은 길들이 실렸다.  

길은 그것을 길들인 사람을 닮아 다채롭기도 하다  
서산 오솔길, 외암리의 옛길, 영덕 블루로드..
 
이미 유명해진 관광지 주변의 작고 소박한 길들도 나오는데 동네 주민들만이 애용할듯한 길이 호기심과 함께 날씨가 좋은날이라면 당장이라도 떠나고픈 발동이 들게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덜 길들여져 익숙하지 않은 이런 길을 좋아한다. 
 
개항기로 떠나는 인천 시간여행 길,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 나들 길, 잃어버린 가야 역사를 찾아가는 길..에서는 소중하고 안타까운 역사를 생생하게 배우기도 하고 삶이 담긴 이야기를 한껏 상상하게 한다. 소설 지망생이나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번쩍이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투박하고 거친듯 하지만 길 본래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그만 중독되듯 빠져들게 하는 동강의 비경이 담긴 칠족령 길, 노래 선율같은 대관령 옛길, 진양조로 걷고 싶은 슬로시티 청산도 길도 걸어본 사람에게 오래도록 기억과 추억에 남아 삭막한 현대의 삶에 한줄기 위로가 되어주는 곳이다.
 
걸어도 걸어도 언제나 또 걷고 싶은 제주도를 포함해 서울, 인천, 경기를 시작으로 전라도,경상도, 충청도까지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걷기 좋은 길이 풍성하게도 펼쳐져 있다. 더불어 길에 대한 특징을 손으로 그린듯한 작은 지도와 여러 사진들과 함께 소개하고, 그 길로 접근하기까지의 자세한 교통편과 주변의 음식점, 숙박지도 친절하게 나와 있다.

길따라 전국일주를 한 느낌의 책 

골짜기, 산길, 바닷길 위로 굽이굽이 흐르는 길 위에서 피어난 이야기들은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답답했던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전국일주를 한 느낌이 든다. 그 동네에 사는 주민이거나 여러 번 다녀오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길 곳곳에 흩뿌려진 글들은 작가들의 소담한 사진들과 함께 여유를 더하고,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데다 육지길은 그나마 철책선으로 가로막힌 이 작은 땅덩이에 이렇게 갖가지 길들이 있었고 계속 길들여지고 있으니 대단하고 놀랍다. 아마도 땅의 70%가 크고 작은 산으로 이루어진 것이 그러한 길들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걷기 좋은길을 걷다가 중간에 길을 잃지 않도록 산행코스처럼 길을 나누어 소개하는 등 세심한 마음으로 담아 전하고 있어 걷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 떠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할 것 같다. 백가지가 넘는 많은 길이 소개된 두툼한 책이지만 무슨 종이를 썼는지 무척 가벼운게 여행자의 배낭을 부담없게 해주어 더 맘에 쏙든다. 

재미있는 것으론 이 책 마지막에 오려낼 수 있게 붙어있는 부록이다. 겉에 도보 여행자용 여권이라고 써있는데 문화체육관광부가 2009년에 시작하여 앞으로 더욱 확대해나갈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코스들이 담긴 것이다. 여권에 그려져 있는 여행지에 들러서 도장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천천히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여행이 한층 즐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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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학교 - 입문에서 100km 달리기까지
니와 다카시.나카무라 히로시 지음, 민경태 옮김, 스피드웨이브 감수 / 마고북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자전거를 타고 50km 정도를 달린다. 듣기만 해도 '엉덩이가 아플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행주산성이나 서울숲 같은 곳에 라이딩을 갔다오면 그렇지 않아도 살이 없는 엉덩이가 아예 골짜기만 평평하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100km를 덜 힘들고 즐겁게 달릴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 있어 눈에 번쩍 와닿는다.  

자전거로 출퇴근도 하고 동네 마트나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주말엔 가까운 곳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기도 하면서 나도 자전거 고수가 되어 멀리 떠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달리기를 취미로 하다가 마라톤 하프코스에 이어 풀코스에 도전하고픈 것과 비슷하겠다. 인터넷 자전거 카페에 가보면 많은 자전거 고수들의 이야기와 여행기를 볼 수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빠른 속도도 아니고 산길을 오르는 것도 아닌 꾸준하고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다. 

시속 20km의 속도로 5시간만 내달리면 100km를 달리는 것이니 뭐 어려울게 있겠냐 싶지만 막상 자전거 위에 올라타서 한강둔치를 따라 50km만 달려도 다리 아픈건 물론 손목, 사타구니, 목까지 안 아픈 곳이 없어 그만 안장에서 내려오고 만다. 장거리 라이딩은 체력 이상의 무언가가 더 필요하겠다는 것을 몸으로 절실하게 느낀다.  

세계를 자전거로 누비고 현재 일본에서 자전거 투어 가이드를 하는 사람과, 자전거 엔지니어 출신의 연구원이 같이 자전거책을 썼는데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단다. 부제는 <입문에서 100km 달리기까지>로 자전거와 친해지는 입문과정에서 20km, 50km, 100km까지 주행 거리별로 나누어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조언과 노하우(Know How)를 전해준다. 그 내용들이 '보다 빠르게'가 아닌 '보다 재밌있게'라서 더욱 좋다.

'보다 빠르게'가 아닌 '보다 재미있게' 타자 

자전거를 오래 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닮아 있다. 삶을 힘들고 아프게 단지 오래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것처럼, 자전거도 고통 이외의 즐거움이 없다면 멀리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저자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는 재미있게 달리자고 말한다.  

거기에는 세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숨이 차지 않게(싱글벙글 페이스), 자동차가 적은 길 선택, 마음에 드는 좋은 자전거 구입이 그것이다.  

특히 마지막의 좋은 자전거 구입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는데,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의 건강 또한 지키는 행위이니 자기 자신에게 상을 준다는 생각으로 좋은 자전거를 구입하자는 발상이 참신하다.  

'무조건 열심히'로는 안되는 50km 이상의 장거리 라이딩

50킬로미터라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사는 곳에서 잘 알려진 자전거 여행지까지의 거리를 인터넷 지도로 측정해보면 감이 온다. 서울시청에서 양평의 두물머리, 경기도 화성의 제부도가 그 정도 거리가 나온다. 지도를 봐도 아니면 직접 달려본 사람이라도 거리가 상당히 멀게 느껴질 것이다.  

당신이 이 정도 거리의 자전거 여행에 도전한다면 바로 본격적인 라이더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저자는 4시간 정도의 시간을 잡아서 천천히 즐기듯 50km를 달려보라고 권한다. 4시간이면 시속 12km 정도 되는 저속으로 달려도 되니 일단 자전거도 나도 부담이 없다. 이렇게 어디를 어떤 식으로 달릴 것인지 계획을 짜는 작업 자체가 장거리 라이딩의 시작이다.  

자전거를 오래 탄다고 할때 맨 먼저 걱정되는 부위는 엉덩이다. 이에 대한 여러가지 해결법이 나와 있고, 목이 마른 다음에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닌 효과적인 수분공급의 요령, 장거리 주행에 맞는 안장과 핸들의 세팅법이 사진과 함께 잘 나와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경험상으로도 라이더와 자전거의 핸들, 안장, 페달의 조화로운 위치는 매우 중요해서, 이것이 내 몸과 맞지 않을때는 손목, 목에 통증이 오고 20km만 달려도 벌써 피곤해져 자전거에서 내려오고만 싶어진다.  

여행과 모험의 세계로 뛰어들자

자전거를 타고, 다시 말해 자신의 힘으로 멀리까지 간다는 것은 스포츠로서의 즐거움을 더해 여행이 주는 설렘, 도전정신, 낭만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전거로 전국일주나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들의 여행기을 읽다보면 그 사람에게서 순수함과 동지애까지 느끼게 된다. 

한창 힘이 좋은 젊은이라면 자전거 타고 멀리 가려면 페달을 무조건 오래, 열심히 돌리면 되지 않을까 하겠지만 페달링의 기술은 자전거 여행 혹은 100km 장거리 주행을 좌우한다. 필자도 장시간, 장거리 주행을 할 때 그 차이를 확실히 느꼈던 부분이다. 과학에 근거한 페달링 기술이 사진과 함께 어렵지 않게 나오니 기억해 두었다가 자전거 탈때 의식적으로 따라 하다보면 어느새 오묘한 자전거 파워를 체감할 수 있다. 

오르막 덜 힘들게 오르기, 땀으로 인한 체온저하 대처법, 힘을 내는 활성산소 만들기, 펑크난 타이어 때우기 같은 기본적인 자전거 정비법등 자전거를 오래 즐기기 위한 궁리들은 많기도 하다.   

이밖에도 살찌기 어려운 몸 만들기 전략, 성인병아 물렀거라, 관절이여 걱정마라 등 일본사람 특유의 섬세함과 실용성이 돋보이는 내용들이 많아 자전거와 함께 일상생활의 활력을 찾고 유지하는 데 좋은 정보가 된다. 

100km를 달린다, 라는 식의 목표설정은 자전거를 오래 즐기기 위한 동기부여로 좋다. 자전거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완주하는 것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서 얻는 상쾌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떨까. 쾌적한 길을 골라 달리며 사계절의 변화를 즐기기,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는 길.. 자기만의 자전거 코스를 만들어 즐겁고 오래 달려보자.  

덧붙이는 글 | 이 책의 내용을 감수한 스피드 웨이브 (www.speedwave.co.kr) 홈피에 가보니 다양한 자전거 타기 정보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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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지식의 최전선 1
피터 조셉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탐욕과 경쟁은 변하지 않는 인간본성이 아니다.
탐욕과 경쟁에 의한 공포는 만들어지고 증폭된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워야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 버너드 리에르테 (EU 통화체제 창설자)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미국과 캐나다의 독립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던, 
이 책 <시대정신>에 나오는 여러 유명인들의 증언과 말 중 책의 내용을 아우르는 명언으로, 수단(전쟁)과 방법(화폐)을 가리지 않으며 부와 권력을 끝없이 추구하는 미국 기득권 세력의 본질과 진실을 날카롭게 가리키고 있다. 독립영화 작가이자 감독인 피터 조셉이 쓴 책으로 미국의 종교, 정치, 경제의 본질과 실체를 전방위로 두드리지만 우리나라의 현실과 나아가 세계의 미래와도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라 흥미롭게 때론 주먹을 불끈쥐기도 하며 읽어 나가게 된다. 

책을 다 읽고 진실을 모두(?) 알게 되어 세상을 다시 바라보니 역시 진실은 불편하다. 좋은 것 예쁜 것만 보고 싶고 신경 곤두서지 않고 살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인가보다. 이 책의 부제인 '진실을 아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는 사실 '진실을 아는 것은 피곤하다, 그러나..'가 더 적합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일상의 노동에 힘든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골치 아픈 <PD수첩>, 용산 철거민 사건보다 토크쇼, 오락프로그램이 위로가 되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실을 알아야 하는 건 우리가 사육당하는 가축이 아닌 생각하고 연대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 영화이기도 한 시대정신의 원제인 'Zeitgeist'는 독일어로 '시대정신'이라는 의미이다. 철학자 헤겔이 역사속에서의 명징한 이성을 지칭했다는 단어로 길게 표현해보자면 역사속에서 발전되어 나가는 깨어있는 인간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실을 알고자 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인간정신은 그러나 수많은 위협을 받게 되고 저자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제외한 '피터 조셉'이라는 이름만 사용하면서 다른 작품을 만들고 있다. 

신(God)의 나라 미국  

정신없이 흘러가는 역사속에서 깨어있는 인간정신을 잃지 말자는 이 책의 첫 주제는 놀랍게도 종교,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폐해를 다루고 있다. TV의 공식연설이나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이 신의 이름을 꼭 들먹이고 기도를 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신의 나라 미국.  

저자는 유일신 종교의 폐해와 특히 기독교 예수의 존재가 사실은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의 종교들을 짜깁기한 패러디 신화라고 역사적 증거들까지 나열한다. 2007년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한국에서는 '만들어진 신'으로 출간)>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유일신 종교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권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면 의문을 가져라 

두 대의 비행기가 날아와 충돌하여 세 개의 고층빌딩이 폭삭 무너져버린 2001년 9.11사건은 미국 내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으로 허술한(?) 점이 너무 많아 그 진상을 파헤치는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가 미국내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9/11>, 2편까지 나온 다큐멘터리 <9.11 Loose Change (감독 : 딜런 애버리)> 그리고 <War made easy (로레타 엘퍼와 제레미 업 공동연출)>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도 9.11사건은 세계를 무대로 한 미국 부시 정권의 자작극이라며 다종다양한 증거들과 함께 입다물고 있는 지식인들을 향해 권력의 노예, 미디어의 노예라고 욕하며 지식인들의 침묵도 비난하고 있다. 소설 <1984>의 조지오웰은 '지식인들은 잘 훈련된 똥개'라고 했다는데 4대강 개발 관련 토론회에서 '흐르는 강물을 막는 보를 만들어 세우는게 강물을 더 깨끗하게 한다'고 주장하던 어떤 교수가 떠올랐다. 

커튼 뒤에 숨어있는 진짜 권력자들  

세계를 호령하고 주도하는 초강대국 미국은 대통령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나라가 아니라니 과연 실체는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그것은 1913년 윌슨 대통령이 승인한 연방준비법과 중앙은행에서 비롯된다. 화폐발행을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로 위임하는 이 중대법안은 국회의원들이 만든것이 아니라 JP모건, 록펠러, 골드만 삭스 같은 몇몇 유태인 은행가들이 준비하여 만든 제도이다. 당연히 FRB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고 국가의 감시가 법적으로 차단된채 국가기관이 아닌 주식회사 같은 사기업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거대 금융가들의 집단이 미국 달러의 환율과 통화량을 조절하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The International-2009년 톰 티크베어 감독>에도 이런 내용이 생생하게 나온다. 역사적으로도 중세시대 로마 교황청이 FRB처럼 화폐통화량을 확 줄여서 일반 백성들이 신성한 종교권력을 감히 넘보며 비판하지 말고, 오로지 먹고사는 데만 함몰되도록 일부러 궁핍한 경제 암흑기를 조장했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그 밖에도 기업정치, 세계화, 자본의 본질등 복잡하게 보이는 현실을 꿰뚫어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게 하는 살아있는 지식들도 많아 한 번 더 읽게 되는 책이다. 책의 후편에서 저자는 돈, 에너지, 교통수단, 노동, 교육, 문명 등에 대한 다른 생각들과 실천적 대안, 행동강령까지 제시한다. 그 중 우리나라에서도 통과된 미디어법과 관련하여 공감이 가는 내용은 TV에 관한 것이다. 거대기업들이 소유한 방송사는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떤 거짓도 사실로 둔갑할 수 있다. 독서인구가 전 국민의 3%인 미국 국민들에게 TV의 뉴스들에 의존하지 말고 인터넷을 활용하라고 말한다.  

몇 차례 국가적인 경제위기를 겪은 한국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내용들이 많다. 피곤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진실이지만 그것을 알고자 하는 시대정신이 우리에게도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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