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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2 - 식객이 뽑은 진짜 맛집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2
허영만.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제작팀 지음 / 가디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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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아무리 변해도 세계는 변하지 않는 것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음식과 맛이 그 가운데 하나다. 재미의 어원은 ‘양분이 많고 좋은 맛’이라는 한자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가 약속을 잡을 때 맛집부터 검색하는 걸 보면 재미는 곧 맛있는 걸 먹는 데서부터 온다는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에게 밥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식객 허영만 화백은 ‘백반기행’을 통해 전국의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만의 맛집 기준은 첫째 ‘집밥 같은 백반’, 둘째 ‘비싸지 않은 가격’, 셋째 ‘그럼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맛’이다. 밥을 먹다가 어머니의 손맛이 절로 그리워질 만큼 마음을 파고드는 맛, 다양하고 풍성한 반찬과 제철 음식으로 신선하게 담은 넉넉한 한 상. 그중 소박하지만 확실한 한 끼를 선사하는 진짜 맛집을 골라 이 책에 담았다.

백반(白飯)은 밥이 희어서 백반이 아니라 두드러지는 요리(반찬)이 붙어 있지 않아서 '백'자가 붙었다. 하얀 손이 아니라 일할 손이(필요) 없어 직업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백수(白手)도 같은 의미다. 백반은 장터에서 만나는 국밥과 비슷한 서민의 음식이다. 저렴하고 국물의 도움으로 빠르고 일시적으로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메뉴다.


- 하단에 넣은 나만의 기록장 


총 6개 지역(서울, 인천/경기, 강원, 충청, 부산/경상, 전라)의 음식점을 한데 모은 이번 책은 지역별 맛집 지도와 나만의 노트를 추가했다. 전국 팔도 곳곳을 세분화한 지도는 도, 시·군별로 식당들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표시했으며, 식당 이름과 대표 메뉴를 함께 실어 지도 하나만 봐도 국내 여행객들이 맛집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뿐 아니라, 식당이 소개된 각 페이지 아랫면에 방문 날짜와 나의 평점, 그리고 방문 후기를 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실었다. 맛집을 다녀온 뒤 간략한 메모를 책 위에 남김으로써 이 책은 단순한 맛집 소개 책이 아니라 내 추억이 담긴, 나만의 맛집 기록장이 되어준다.

오랜 시간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 고수들의 한 상은 물론, 지역에서 구한 제철 음식으로 정성껏 준비한 한 상, 개성 있는 메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상, 술 한잔 기울이면 좋은 한 상까지 다양한 맛과 취향을 고려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맛’과 ‘저렴한 가격’(가성비)이다.

맛도 좋고 가격도 싼 맛집에서 나만의 소울 푸드(Soul Food)를 발견하는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 내겐 동태찌개, 어죽 수제비, 시장표 밀면, 빈대떡 등이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는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누구나 맛집 하나씩은, 자기만의 맛집이 있는게 좋겠구나 싶다.


- 도토리묵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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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 생계형 마르크스주의자의 유쾌한 자본주의 생존기
임승수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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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작가 브로니 웨어가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는 저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환자나 노인들을 돌보는 간병인 일을 하면서 나온 책이다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쏟아내는 후회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후회는, ‘다른 사람이 아닌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다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못 번 돈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못 살아본 시간을 후회한다.


자신을 '생계형 마르크스주의자'라 일컫는 이 책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의 저자(임승수같은 자유인 혹은 작가적 기질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못 번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시간을 너무나 아까워한다.


생계형 마르크스주의자의 유쾌한 자본주의 생존기라는 재밌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읽다보면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이 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간의 관점으로 삶을 통찰하고사회와 경제를 본다돈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며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본질은 시간이다시간의 관점에서 분석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알려주고 진흙탕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의 주인이 되어 진짜 행복을 찾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그러고 보면 내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직업 또한 돈을 벌기 위해 나의 시간()을 갖다 바쳐야 하는 것이지 싶다.

시간의 관점으로 삶과 사회를 보다


이 사회에는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부모가 원하는 삶회사 사장이 원하는 삶스승이 원하는 삶남편이 원하는 삶아내가 원하는 삶애인이 원하는 삶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삶...

안타깝게도 타인의 욕망이 투사된 삶에는 나의 욕망이 들어설 곳이 없다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사는 사람은 노예일 뿐이다설사 타인의 욕망이 바람직한 것이라 할지라도 - ‘1만원보다 1시간이 중요하다’ 가운데


물론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시간 혹은 일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게다가 많은 한국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끌려 살아오다보니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체를 발견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저자는 용기를 내어 다양한 시도를 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며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 아니라면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딴짓을 하라고 조언한다.


책속에 이해하기 쉽게 소개되어 있는 저자의 인생책’ <자본론>에도 경제를 돈이 아니라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카를 마르크스가 써서 사회주의에 대한 책으로 오해받기 쉬운 <자본론>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에서 왜 이렇게 엄청난 빈부격차가 발생하는지그런 불평등이 어떻게 시간이라는 요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소름끼치도록 예리하게 파헤친 고전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느낌을 아는가감히 얘기하는데나는 안다매일매일 작가로서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나 스스로 통제한다이 해방감과 충만함을 맛본 사람은 다시 시간의 노예로 돌아갈 수 없다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살 것이다이 모든 것은 내가 규격품의 삶을 거부하고 불량품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다 -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은 낭비이며 쓸데없다는 식으로 취급한다거리 공연하는 청년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꿈을 가진 21세기 대한민국 청년들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 다음과 같은 질문에 부딪친다. “그거 해서 얼마 버는데?” 기업의 논리자본가 계급이 내세우는 논리를 마치 불변의 진리인 양 받아들인 사회의 흔한 현상이다.


어쩌면 거리공연을 하는 청년들은 이제 거리공연의 순간들을 젊은 날의 추억으로 묻어두고 생업을 찾아 나섰을 수도 있다아마도 그쪽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거리공연을 했던 시간은 무의미한 것일까단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자신의 삶에 이런 종류의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불행한 것은 아닐까나와 주변인들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돈벌이가 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는 시간에서 삶의 의미보람감동행복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국가나 기업이 원하는 인생이 아닌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행복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여러 면에서 공감하게 된다.




이 사회에는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사는 사람은 노예일 뿐이다. 설사 타인의 욕망이 바람직한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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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철덕(철도 덕후)’이라면 타고 싶고 떠나고 싶은 기차가 몇 있다. 매주 한 차례씩 알래스카의 주요 도시인 페어뱅크스와 앵커리지 사이를 왕복하는 알래스카 열차는 평균 시속 48킬로미터로 550km의 거리를 11시간 동안 달린단다.

 

중국 칭짱철도는 칭하이 성에서 티베트의 랏싸에 이르는 1,142km을 달린다. 특히 전체구간의 86%가 4,000m이상의 고지대로 세계의 지붕을 달리는 열차로 유명하다.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이 있다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광활한 대륙을 횡단하며 장장 19일이나 달려 모스크바에 닿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 <시베리아 시간여행>은 철도 기관사가 쓴 18박 19일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여행기다. ‘덕업일치’의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 23년 경력의 ‘철덕’답게 책 곳곳에 나오는 철도 이야기가 새롭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9,288km나 되는 세계최장의 철도 길이만큼이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와 사연을 품고 있었다.

 

시베리아 열차가 머물고 지나가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롭스크, 우수리스크, 연해주 지방은 나라를 빼앗긴 조선 백성이 찾아든 터전이었다.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달리는 열차에 20세기 한국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타고 내렸고, 1937년 수십만 동포들의 슬픈 디아스포라(이산(離散))의 역사가 담겨있다. 현재 러시아, 중국으로 일하러 오가는 북한 노동자들이 타는 열차이기도 하다.

 

기차 여행기이지만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참고한 문헌이 참 다양하다.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에서 <대륙으로 간 혁명가들>, <러시아 예술기행>까지 수 십 권에 달한다. 덕택에 시베리아 철도여행과 이어진 흥미롭고 풍성한 역사·도시·사람이야기를 접했다. 시베리아 철도에 ‘시간여행’이란 말을 넣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에는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를 횡단한 여정이 담겨있고, 2부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모스크바 여행 후 국제 열차를 타고 우리에게 통일조국의 선례를 보여준 독일 베를린을 오갔던 기록을 담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라고 해서 영화 <설국열차>가 떠오르는 눈 덮인 설원과 극한의 추위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여행기는 밤에도 대낮처럼 환한 백야가 있는 시베리아의 여름 풍경이 배경이다.

 


시베리아 열차 삼등석에서 만난 남북 노동자들

 

통로를 지나려는 순간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와 마주친 사람도 눈이 휘둥그레지긴 마찬가지였다. (중략)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남과 북의 여행자를 자연스럽게 섞어 놓았다. 분단 이후 평범한 남북의 노동자들이 이토록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 ‘횡단 열차 대사건’ 가운데

 

저자와 일행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비좁은 6인실 삼등석을 타게 됐는데, 이일은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끊임없이 낯선 사람, 이방인이 타고 내리는 시베리아 열차에서 러시아로 일하러 가는 북한 노동자들을 만난 것이다. 저자나 북한 주민들 모두 처음 눈이 마주치면서 깜짝 놀라고, 아주 잠시 객차 안에 정적이 감돌았지만 분단된 땅의 반대편 사람임을 바로 알아본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상적이다.

며칠 간 기차 냉방장치가 고장 났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북한 주민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 저자가 콜라를 건네면서 “동무, 미제의 쓴 물을 마셔 보라우!” 농담을 할 정도로 친해졌지만, 오랜 시간 갈라져온 분단국가에서 생길법한 ‘웃픈’ 일화가 일상 곳곳에서 터진다. 서울에서 개성이나 평양은 러시아나 중국의 철도 여행 개념으로 보면 코앞을 오가는 것이다. 우리와 북한 주민들은 기껏해야 20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 떨어져 사는 이웃이었다.

 

해빙의 상태를 깬 열차 안 남북 노동자들은 서로 궁금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려 지내다 이르쿠츠크역에서 헤어지게 된다. 이때 북한의 현장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기는 미안합네다만....” 하면서 그동안 함께 찍은 모든 사진을 지워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마음이 짠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본래 마음이 이게 아닙니다’라는 게 느껴져서다.

 


한인들의 발자취가 서린 철길

 

기울어 가는 나라를 지켜보며 울분에 찬 조선인,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유랑하는 조선인, 만주에 침을 흘리며 새로운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일본인, 청나라 북쪽의 이권을 잃지 않으려는 러시아인, 모든 이민족을 불안한 눈으로 감시하는 청나라 관헌과 주민들이 한꺼번에 모이던 유일한 공간이 바로 열차 안이었다. 근대 문명의 대전환을 이룬 철도에 몸을 맡겼던 사람들은 차창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인생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모두 불안한 현실에 하염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 ‘100년 전 열차의 승객들’ 가운데

 

경기도 수원시엔 이곳이 고향인 화가이자 우리나라 근대 신여성 가운데 한 분이라는 나혜석(1896-1948)을 기념한 거리가 조성돼있다. 안내문을 읽다가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유럽여행길이 눈길을 끌었다. 1927년 서울역에서 경의선 기차를 타고 개성, 신의주를 지나 중국 만주와 옛 소련 모스크바를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갔다. 그녀는 철도를 통해 근대를 경험한 최초의 조선 여성이 아닐까싶다.

 

<시베리아 시간여행>를 읽는 가장 큰 묘미 가운데 하나는 손기정, 안중근, 홍범도, 이광수, 조봉암, 여운형 같은 근현대의 역사적 인물들이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다니며 남긴 행적을 소설 읽듯 생동감 있게 묘사한 내용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열차에 올랐던 청년 손기정, 레닌의 초청을 받고 민족대회에 참가하러 가는 고려혁명군 대장 홍범도, 권총을 가슴에 품고 기차에 오르며 생의 마지막을 각오하는 안중근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던 수많은 한인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들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던 동포(고려인 혹은 카레이스키)들이다. 극동 내 일본 첩자의 침투를 차단한다는 명분이었다. 당시 18만여 명의 한인들은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는, 가축을 실어 나르는 화물칸에 실린 채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40일을 달려야했다. 80년 전 생사를 건 여정 끝에 도착한 허허벌판에 서서 망연자실했을 사람들이 떠올라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책에는 실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을 위한 정보도 빠짐없이 수록되어있다. 저자가 권하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던 구간은 바이칼 호수 순환열차다. 바이칼 호수는 한민족의 시원이라고 불리는 바다 같은 호수다. 횡단철도 노선을 지나며 방문한 도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추천한 도시는 크라스노야르스크로 10루블짜리 지폐에 나오는 도시다.

 

러시아와 유럽에서 가장 큰 철도 박물관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도 미술관 같은 모스크바도 꼭 들를 곳이다. 책 말미 부록처럼 붙어있는 3박 4일 시베리아 횡단 열차 맛보기에서, 7일과 15일간 시베리아 깊이 들어가기 까지 여행 코스 안내서도 시베리아 횡단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유익할 것 같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남과 북의 여행자를 자연스럽게 섞어 놓았다. 분단 이후 평범한 남북의 노동자들이 이토록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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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허기 - B급 주방장 박찬일 에세이
박찬일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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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좋은 직업군 가운데 하나가 요리사가 아닐까 싶다. 요즘엔 TV '먹방'의 영향으로 요리사를 셰프라고 부른다. 세상에 많고 많은 음식과 식당, 사시사철 새로 생겨나는 요리까지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좋은 소재다. 이 책 <미식가의 허기>를 쓴 박찬일(1965~)도 요리사다.

남들은 '셰프'라고 부르지만 스스로를 'B급 주방장'이라고 말하는 저자. 내성적인 성격에 사교성이 부족해 TV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여행 삼아 찾아가게 만드는 식당들이 나오는 <백년식당>(2014) 등 음식 관련 여러 권의 책을 낸 바 있다. 칼도 잘 쓰고 글도 잘 쓰는 보기 드문 셰프다.

음식을 먹으러 갈 때 정작 주요리보다 반찬 같은 '곁들이'가 더 좋은 경우가 있다. 평범한 칼국수집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알고 보니 맛있는 김치 덕이라거나 스파게티보다 피클이 더 좋은 집이 그런 예다. 그의 책도 그런 면이 있다. 음식과 요리에 버무려 곁들이는 달면서도 매운 세상사와 삶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져 좋다.


B급 주방장의 특별한 미식 이야기 

'그럼에도 미식이라고 할 한 줄기 변명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순전히 음식의 건실한 효용을 사랑했던 것이다. 가장 낮은 데서 먹되, 분별을 알려고 했다. 뻐기는 음식이 아니라 겸손한 상에 앉았다. 음식을 팔아 소박하게 생계 하는 사람들이 지은 상을 받았다. 그것이 미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미식의 철학적 사유와 고급한 가치의 반대편에 있는 저 밥상들이 나는 진짜 미식이라고 생각한다.' - 본문 가운데. 

여행을 떠나 밥 먹을 때가 되면 블로그나 SNS를 검색해 지역에 소문난 밥집을 찾아 먹기 보다는, 동네 주민들 혹은 지나가는 경찰 아저씨에게 백반집을 추천받아 간다. '2인 이상'이 가능한 메뉴 사이에서 혼밥이 가능한 데다 집밥 같은 푸근함 분위기는 맛있는 음식 이상의 포만감과 만족감을 준다. 맛이란 직관적이고 생화학적인 결과이지만 이렇게 심리적인 요소도 많이 차지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미식도 비슷하다. 저자는 요리사 후배들과 정기적으로 우리 땅 구석구석을 여행한단다. 음식재료와 맛을 탐구한다는 명목이고 실은 술추렴이라는데, 이 책은 그 와중에 나왔다. 

제목에 미식가가 들어가지만, 책 속에 나오는 요리들은 어찌 보면 미식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소 등심 대신 돼지국밥, 곱창 같은 내장요리가 나오고, 장터 노천의 국숫집, 기사식당의 조미료가 듬뿍 든 찌개가 나온다. 자칭 B급 주방장의 미식 리스트답다.

책장을 넘길수록 좀 더 높은 경지가 느껴지는 미식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요리들을 혀 외에 머리와 가슴으로 새롭게 맛보게 된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찬양과 숭배보다 먹고 사는 일의 소중함이 담겨있다. 

그냥 미식가와 요리를 직접 하는 미식가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다르구나 싶다. 저자가 주방장으로 일한다는 식당엔 못 가봤지만, 그가 쓴 책은 꼭 찾아 읽게 되는 이유다.

 소 내장을 식용으로 수입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
▲  소 내장을 식용으로 수입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
ⓒ 경향신문사



우리나라 대중음식에 대한 소중한 기록

저자는 8년간 잡지사 기자를 하다 요리사가 되고 싶어 이탈리아로 떠났던 특이한 이력의 요리사다. 해외에서 요리를 배우며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선 우리가 매일 먹는 평범한 음식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단다. 이 책은 바쁜 주방장 생활 틈틈이 전국을 다니며 먹거리와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알려진 대로 강릉 초당에는 두부집이 많다. 본디 두부를 파는 식당이 아니라 대개는 가내 두부공장이었다. 몽양 여운형이 해방공간에 이 지역에서 야학을 운영했고,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이 학교 출신들이 전쟁 기간의 흉악한 정치상황에서 무고하게 처단되었다고 한다. 몽양의 제자이니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처벌했다는 것이다. 토지 없고 남편 잃은 아낙들이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새워 만든 두부를 시내에 내다 팔면서 초당두부의 명성이 생겼다. 초당의 두부는 그래서 더욱 슬픈 음식이 아닌가 싶다.' - 본문 가운데

홀로 된 여성들이 일구어낸 강릉 초당 순두부이야기부터, 일본으로 넘어가 인기 요리가 된 '호루몬 야키'(버려진 것 구이·소 내장 요리), 민족성이 고스란히 나오는 한국 계란찜과 일본 계란찜의 차이, 혹한의 맛 농사 김, 인천의 밴댕이 골목 이야기, 우리는 왜 전래의 그릇을 밥상에서 내려버렸을까 등등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가득하다. 주식으로 혹은 외식으로 자주 먹는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니, 먹을 때 마다 새롭고 다르게 다가올 듯하다.


- 글 : 써니21




토지 없고 남편 잃은 아낙들이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새워 만든 두부를 시내에 내다 팔면서 초당두부의 명성이 생겼다. 초당의 두부는 그래서 더욱 슬픈 음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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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프린스 바통 1
안보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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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맞을 때, 사는 게 왠지 밋밋하게 느껴질 땐 동네 도서관에 가서 단편소설집을 찾아 읽곤 한다. 다채로운 풍경과 여정이 있는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편안한 여행이 고팠을까, 서고에 꽂힌 책들 사이에서 이 책 <호텔 프린스>가 반짝 눈에 띄었다.

젊은 작가들 8명의 글이 담긴 단편소설집으로, 특이하게 모두 호텔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흥미롭게도 호텔에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소설가의 방'이라는 공간을 작가에게 제공해서 나온 일종의 테마소설집이다.

창작활동하기 좋은 고장(통영이나 제주도, 파주 등)에서 기획했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레지던스 그 자체를 소설의 소재로 한 작품은 처음이라 특별했다. 작가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화법과 시선을 통해 호텔은 잠시 머물다 가는 숙박시설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문학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가 담긴 여덟 개의 호텔방

어느 누구도 절대로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한 남자만 사랑하지 않겠다고,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 김혜나 <민달팽이> 가운데 

호텔이 주는 화려하고 멀끔한 이미지와 다르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내면엔 저마다의 결핍어린 상념과 아픔이 배어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 소통과 불통을 넘나든다. 주변에 인간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음은 자꾸만 표류하고 방랑하는, 어쩐지 남 같지 않은 사람도 나온다.

유방암 수술을 한 아내가 냄새에 민감해지자 점점 소심해지는 남자 이야기 (김경희 <코 없는 남자 이야기>), 사라진 아내를 찾으러 하와이로 떠나는 어느 가장의 사연 (서진 <해피 아워>) 등은 짧지만 짙은 여운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머무는 호텔은 어느새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이 되어 머릿속에 그려진다.

운명같이 재회한 옛 남자 친구와 번잡한 섬 페스티벌 장소를 떠나 가까운 호텔로 향하는 정지향의 <아일랜드 페스티벌>, 식사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린 달팽이 화가와 애무도 키스도 없는 정사를 습관적으로 나누는 김혜나의 <민달팽이>에서 호텔 프린스는 묘한 낯설음과 익명성이 보장된 은밀한 공간이 된다. 

<호텔 프린스>에 있는 여덟 개의 방(소설)을 흥미롭게 지나면서, "Do Not Disturb!(깨우지 마시오!)" 카드를 걸어놓고 잠시나마 내 마음을 뉘어놓고 싶은 책속 공간을 만나 좋았다.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운 좋게 나만의 '소울 플레이스'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문득, 책상 하나와 노트북 그리고 읽고 싶은 책 몇 권이 놓인 내 작은 방이 귀하게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후련한 마음으로 뒤표지 그림을 감상하는데 표기된 책 값이 5,500원이다. 잘못 기재된 건가 했더니, 한국문학의 발전을 응원하기 위해 출간 후 1년 동안은 이 가격으로 나온단다. 여러모로 특별한 책이다.


- 글 : 써니21 



작가들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화법과 시선을 통해 호텔은 잠시 머물다 가는 숙박시설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문학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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