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
이정화 지음 / 달꽃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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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 - 서예가 인중 이정화

오랜만에 마음 푸근한 책을 손에 잡았다. 이 책은 젊은 서예가인 이정화씨의 에세이로 살면서 만난 소재를 이야기로 엮어낸 아름다운 글들이 가득하다. 계절별로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들을 먹으로 담아낸듯 구수한 느낌이다.

젊은 서예가인 이정화씨는 1991년생으로 7살 때 붓을 잡은 갓 서른의 청년 서예가로. 2010년부터 드라마 및 영화 서예 대필하기 시작해 방송으로 SBS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사의 찬미]의 타이틀을 맡았으며 MBC 드라마 [동이], [아랑사또전], [해를 품은 달], [구암허준], [기황후] 등 수 많은 작품에서 그녀의 붓글씨를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서예한마당 초대작가, 문경새재전국휘호대회 대상, 여초선생추모전국휘호대회 우수상, 반월문화제 및 전국 휘호대회 우수상, 부천휘호대회 우수상 등 그녀의 이력은 화려하다.


계절마다 만나는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제1장 봄' 으로 시작하여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만나는 5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기 만나는 계절마다 자연이 종이가 되고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붓과 먹이되는 구수함이 들어 있다. 읽으면서 느낀것인데 모든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같아 옛생각이 새록새록 솓아나기도 했다.

특히 겨울 눈밭을 보고 종이로 생각하여 글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동감이 갔다. 사실 눈밭을 보면 그냥 지나기 어려운 것이니까 말이다.



예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을 때 '어린아이가 바라보는

맑은 마음'을 최우선으로 지키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주일간 빛을 받고 아름다움을 내뿜었지만,

전시가 끝나면 내 방 한구석에서 먼지나 먹게 될 운명을 바라보는

것도, “쓰다가 망친 작품 있으면 나를 달라.”는 농담을 듣는 것도,

서예를 한다는 나만 보면 무작정 “좌우명 한 번만 그냥

대충 써서 달라."는 사람들의 말에 실없이 웃는 것도,

반강제적으로 작품을 가져가면서 “너무 고마우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먹어라.”는 사람들의 말에 차라리 밥값을 돈으로

주었으면 싶은 괴로운 생각까지.

그런 생각이 하나 둘 손을 들고 일어나면 마음에 먼지가 쌓여서

'맑은 마음이 점점 탁해져

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P.150)

그녀가 적은 글들에는 묵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서예가가 어떻게 아름다운 글을 빗어내는지 신기할 정도다. 마치 한권의 시집을 읽는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서예가라기 보다는 수필가가 더 어울릴것 같은 문장력에 미소도 지어본다.

그녀가 적은 글들을 읽노라면 명쾌한 성격에 무척 소박한 예술가라는 느낌이 든다.

한 대목 대목마다 사실적인 묘사기법들이 실제 내가 그런 당사자인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마치 긴 산문의 시를 접한것 처럼. 그래서 읽음에 대한 친근감이 더 한지도 모른다.



꼭 그런 시간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썩은 가지를 닮은 시간과 손톱 같은 사람들,

아무리 예쁘게 꾸미고 가꾸더라도 결국에는 잘라내야 한다.

생을 다한 것들이기에, 하지만 그동안 고생스럽게

아니, 사실 고집스럽게 지켜왔기 때문에 놓기가 쉽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터질 듯해도 꼭 안고 있었다. (P.153)

남의 부탁에 뿌리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응대하는 모습은 정에 끌리듯 마치 건축가인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다듬으며 열심히 사람을 만나고 계절을 즐기는 그녀에게 진심어린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부디 이 책이 단편이 아니라 1편이길 바란다. 다음에 2편의 포근함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꼭 그럴수 있기를 바라며 인중에게 거는 기대만큼 독려와 박수를 보낸면서 벼루에 연적의 물을붓고, 천천히 먹을 가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물은 먹 덕분에, 먹은 물 덕분에, 서로의 색이 이토록 아름다웠음을 알게 되었다. 새하얀 붓은 먹빛을 담아, 달을닮은 종이 위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그들의 마음을 담아내었다. 덕분에 서로를 비춰볼 수 있음을 감사하며 잊지않기를, (P.163)



글자 한 자 한 자를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래토록 함께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을 이해 할 것 같다.

모든 색을 합치면 먹의 색인 현색(현색)이 된다. 붓 끝으로 느끼는 진솔한 경험들을 아름다운 표현으로 나열한 열정에 그러지 못한 내 자신이 퇴색해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마음 푸근한 글이 많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내것만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주의인 사람(내 주위에 만나는 우인 중에도 몇몇이 있다), 그리고 매일을 여유없이 무었엔가 쫒기는 듯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에게도 권하고 싶다. 내일은 아내의 화장대 위에 이 책을 놓아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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