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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알면 여행이 보인다 - 청소년을 위한 세계 여행 가이드 ㅣ 창비청소년문고 44
최재희 지음 / 창비 / 2025년 9월
평점 :
평소에도 세계사나 지리적 배경을 수업할 때마다 “세계는 정말 지리 위에 쌓인 역사구나”라는 걸 느끼곤 했지만, 이 책은 그런 깨달음을 더 직접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보여준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 속 예쁜 장소 를 따라 떠나곤 하지만, 정작 그 장소가 왜 그런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 채 지나간다. 그런데 이 책은 여행을 ‘보는 행위’가 아니라 ‘읽는 행위’로 바꾸어준다. 여행지의 형태와 문화, 도시의 구조는 단지 우연이 아니라는 것, 모든 풍경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이 책이 도시나 국가의 모습 뒤에 숨어 있는 지리적 필연성과 역사적 선택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도시들이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유는 단순한 경관 선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물 공급, 생업의 기반,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자연 방벽의 역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같은 기후권이라도 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전혀 다른 문화적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왜 일본은 자연환경으로 인해 내향적 색채와 외세에 대한 경계심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는지, 미국의 서부와 동부가 왜 산업과 사고방식이 극명하게 다르게 자라났는지 등이다.
지형과 기후의 제약이 선택을 만들고, 그 선택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국가의 구조가 되며, 결국 오늘날 우리가 여행지에서 풍경 으로 목격하는 모습이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아주 친절하고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을 가장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지리를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세계 이해의 가장 강력한 사고 도구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하듯, 지리는 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렌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세계지도 자체가 다르게 보인다. 지도 앞에서의 막연함이 사라지고, 사유할 수 있는 눈이 열린다. 도시의 항구, 국경의 선, 국기 색의 의미마저 달리 보인다.
여행이 당장 계획되어 있지 않더라도, 세계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는 것만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하게 만들고, 이미 다녀온 장소를 다시 읽게 하며, 앞으로 떠날 여행을 훨씬 지적이고 풍부한 경험으로 바꾸어 준다.
세계가 더 넓어 보이고, 동시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책.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