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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덮고나니 호화롭고 고풍스런 옛 서양 양식의 기품이 느껴지는 로트레크 저택이
우리 앞에 등장하기 전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 "나"의 고백과 그 존재를
기억해두면서 예고된 트릭의 얼굴이 무엇이 될지 미리 머릿속에 떠올려보지 못했던
후회와 아쉬움이 비로소 찾아왔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 속에 교묘하게 감춰든 트릭의
허실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지우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고 어느새 비틀어진 인칭의
시점을 자연스런 착각속에 하나로 동일시하면서 결국엔 작가가 설치해놓은 미스터리
무대와 트릭에 절묘하게 걸려들고마는 그 기만감과 배신감을 철저하게 느껴보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느껴지니까 말이다.
분명히 이 작품의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는는 아주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말투로 이 저택속에
감춰진 한정된 공간과 구조, 장치에 대해 미리 친절하게 가리켜주고 있다.
그것을 가볍게 놓치지 않고 어떻게 받아들일지, 더 깊게 들어가서는 살인사건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을지는 독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음도 확인해볼 수 있다.
물론 범인의 흔적을 하나씩 돌아보면서 확실한 물증과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알리바이에
대한 진실을 사로잡는 것은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았고 범행이 벌어지는 바로 직 후 사건의
현장에서 절묘하게 빠져나가는 범인의 타이밍과 자연스런 태도와 조치는 남겨진 용의자에
대한 지목을 더 불분명하게 만들며 범인에 대한 가설을 더 헤메이게 만들었다.
결국 범인의 모든 살인이 끝난 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구석으로 내몰린
예상치못한 진실의 고백이 시작되고 나서야 그동안 숨겨졌던 범행의 동기와 이에 얽혀든
인물들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 어긋난 애증과 깊어진 피해망상이 자아낸 참혹한
한 인간의 고통과 후회의 뼈저린 목소리가 밝혀지게된다.
공들여 준비된 서술트릭에 서서히 빠져들다보면 분명 우리의 시선은 모호하고 흐려지게 된다.
아마 작가가 마련해둔 봉인을 뜯어보면서 이 친절한 복기를 통해 자신이 무심코 사건속에
무엇을 놓치고 말았고 중요한 힌트를 왜 눈여겨보지 않았는가에 대한 개운치 않은 후회와
아쉬움이 묻어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허를 찔리고 미스터리의
트릭에 절묘하게 넘어가 보는 것으로써 곧 이 본격 미스터리의 얄미운 매력에 깊이 빠져보는
하나의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여유롭고 느긋한 태도로 이 소설에 접근하다보면
허겁지겁 다시 곳곳을 찾아 확인해야하는 수고를 더할 것이니 조금은 더 천천히 긴장감과
함께 날카로운 시선을 열어두면 또 다른 미스터리의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 대한 기억의 경계가 뿌옇게 흐려진다면 다시 한 번 이 준비된 게임을 맞아들여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