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진 심야의 시간, 하루의 지친 고단함의 무게를 덜어내고 새벽녘으로 빠져드는 묘한 안락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알 수 없는 음침하면서도 어둑한 짙은 밤의 발걸음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감춰두었던 두려움과 불안함이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마침 이 여름의 무던하고 무더운 갈증을 씻어내주려고 하는듯 평화로운 심야의 도로를 달리는 2002번의 버스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기대어있고 우리가 알 수 없던 운명의 비틀림이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요했던 이 곳의 공기는 의도하지 않는 사고와 죽음으로 극도의 혼란과 공포로 휘감아졌고 우리는 자연스레 이 버스에 탑승했던 6명 인간들의 깊은 절망과 한숨을 들으면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죄악의 무게를 더 이상 저울질 할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눈 앞에 당장 벌어진 참혹한 살인의 현장에선 누구든지 도망치고 싶었고 그 순간의 기억을 영원히 삭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죄책감은 덮어질 수 없었고 이들의 운명에는 비극적인 복수의 칼날이 어지럽게 서서히 다가서고 있음을 점점 깊이 느껴볼 수 있겠다. 내가 만약 저 버스 무대에 서 있었다면 그 극도의 공포와 절망의 고통에서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며 사람들을 안전하게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상상이 아닌 눈 앞에 분명해진 이미 갇혀버린 현실이라면 더더욱 그 순간을 믿고싶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내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또 다른 탐욕을 내보일 수도 있을테니까. 행복한 가정이 일순간에 파탄이 나고 가장 믿고 의지했던 이에게 버림을 받으면서 삶의 모든것을 포기하고 싶은 한 명의 아버지부터 시작해 인생의 무료함을 일상의 탈출과 쾌락으로 바꿔버지만 곧 후회와 죄책감으로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일순간의 기억과 시간을 깨끗이 지우고 싶은 아줌마, 그토록 자기가 믿고 있는 유일신을 향해 구원과 용서를 외치지만 결국엔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스스로 깨버린 또 한명의 남자 등 누군가에게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과거와 현재를 붙잡고 있는 6명 얼굴을 지켜보면서 동시에 그들이 금세 버리고만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짙은 흔적들이 다시 그들의 심장을 깊숙하게 죄어오는 잔혹한 풍경들을 또 어떤 눈초리로 각자 바라볼 수 있을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피비린내는나는 살인마의 칼날은 극도로 날카롭고 온몸이 몸서리칠만큼 잔인했다. 더 이상의 희망이 존재하지않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지고 찢겨버린 삶에서 시작된 피에 굶주린 살의의 복수에도 일말의 망설임과 양심이란 것은 이미 존재할 수 없게되었다. 그리고 따뜻한 행복한 가정에 숨쉬어야할 어린 내가 배신과 깨져버린 신뢰로 파탄나 철저하게 버려진 인생에서 커져갈 때 얼마나 무서운 괴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이 소설속에서 서서히 등장하는 살인마의 시선을 통해 철저히 실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괴담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다양한 사건과 삶의 관계들을 꺼내 맞추어 가다보니 왠지 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일상이 더욱 좁게 느껴진다. 타인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불안전한 삶의 얼굴, 평화롭지 못한 불편한 관계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듯한 모습, 끊임없이 벌어지는 주변의 시간과 사건들을 애써 가벼운 무질서로 한정되게 가둬두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가 없다.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떤 하나의 마침표로 맺어지는 느낌은 들지않는다. 아직도 어둠속에서 끊어지지 않는 고통과 공포가 금세 나의 발목을 잡으려고 무서울만치 쫓아오는 듯한 예감이 깊이 베어나오니까 말이다. 왠지 장맛비가 거칠게 쏟아져내리는 한 여름의 밤에 누군가에게 갑작스레 펼쳐보이고 싶은 소설로 제격이 아닐까하고 길어졌던 생각을 매듭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