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붐피는 인파로 채워지는 거리와 지하철, 계단 그리고 그 속을 걸어거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소매치기,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에 손이 닿고 그 지갑을 다시
나의 주머니속에 넣어 버리며 아무 상관없는 일상의 순간을 지나치는 것처럼 다시
거리로 향한다. 무엇이 그를 이런 삶속에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었을까?
누군가가 지켜보지 않는 홀로 남겨진 마음의 눈길이 향하는 저 멀리 아득히 떨어져 있는
탑은 어둠보다 더 깊은 잿빛처럼 더 이상 동경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지워져버린 존재로
변해버린지 오래이고 말이다.
소매치기에 필요한 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 처음부터 혼자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또 인간의 의식을 이용하는 일이란 것을...
그 세가지는 세 사람이 부딪치는 역할, 옆에서 그 순간을 가려주는 역할, 빼내는 역할,
그 절묘한 조화와 타이밍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켜주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시선을 빠져나가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리고는 너무도 당당하게 다시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그 무언가가 떠오르며...
사람과 사람을 상대하면서 걸어온 그에게 어느날 알수없는 불길한 손짓이 다가온다.
미래라는 운명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영원히 끌려나갈지도
모른채로 이시카와, 다치바나, 나 이렇게 세명은 한 범죄에 동참하게 된다.
생각보다 너무도 손쉽게 끝나버린 범죄의 현장 뒤에서 조용히 큰 돈다발을 쥐고
사라질거 같았지만 슬금슬금 자신이 살고자 하려는 곳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모습에선 이미 비참함을 넘어선 안타까움이었다.
오직 그 누군가가 선택한 사람만이 조금 더 오래 남아있는 것일뿐 그 운명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채로 남아있다. 원치도 않지만 아무런 힘없이 시키는 명령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결국 주어진 각본대로 운명의 끝을 지켜보며 쓰러져야 한다면
그 누군가의 손을 가리키며 남기는 씁쓸한 원망은 이미 늦어버린 깨달음이라는 것도
조용히 지워져나갈 것이다.
우연히 마추친 어린 꼬마 아이가 자신과 같은 범죄를 하는 모습에선 무언가 누군가에
떠밀려버려진 아이의 슬픈 운명을 본 것 같았다.
그 자신의 어린 모습을 본 것처럼 소매치기나 도둑질로 점점 몸과 마음이 더럽혀지고
무뎌지는 것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했다.
아직은 늦지 않는 그 아이가 자신을 밀어버린 엄마의 손길에서 벗어나 새로 다시
시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과 다시 손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모습은
다 말하지 못한 그의 또 다른 간절한 바람이 되어준 것 같았으니까...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과 손길은 잊혀진채로 자신밖에 남겨지지 않은 채 쓸쓸함과
고독한 삶의 그림자에 쌓여있는 모습이 아닌 비참한 운명을 넘어선 제대로 된 삶의
얼굴을 마주보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결코 시시한 인간처럼
자신을 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어느덧 그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자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죽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울하면서 비참하게 다가오는 끝을 모른채로...
도대체 나는 무엇이었을까? 운명이란 것을 믿고 살아갈 수 있나? 그 운명의 삶을 내가
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쥐어잡히며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일까?
인간이란 존재가 신처럼 운명의 장난을 치며 자신의 결정대로 삶을
끝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쾌락이 될 수 있다니...
불가해한 인생에 대한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들며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어버린다.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던진 그의 인생이 남긴 삶의 무게는 여전히 답을 내릴 수 가 없었다.
그리고 혼돈에 빠진 어려운 미궁속에 서 잇는 기분처럼 과연 나란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은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본다. 어쩌면 이 책이 내가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운명과 세상을 향해 다시한 번 가리켜주는 손짓을 내밀고 있지
않을까하며 페이지를 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