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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복수 ㅣ 이야기씨앗 5
김영인 지음, 김잔디 그림 / 반달서재 / 2025년 11월
평점 :
우리 아빠는 61년 째 이발사로 일하고 계신다. 어려운 형편에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의 생계를 위해 이발 일을 배우셨다.
그것이 평생 직업이 되어 지금도 동네 골목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계신다. 동네 사람들의 오랜 헤어디자이너, 우리 가족 중 남자들의 이발담당선생님이 바로 우리 아빠다.
동구이발소도 우리 아빠의 이발소와 같은 그런 곳이다. 동구네 할아버지는 50년 째 이발을 하고 계신다. 우리 아빠처럼 변두리 골목에서 이발소를 운영하신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간 스쳐 지나온 우리 이발소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더 오래된 동네의 허름했던 이발소도 떠오르고, 대목에는 바닥에 쌓인 머리카락을 쓰는 심부름을 하고 김밥을 사와 입에 하나씩 넣어드릴 정도로 바빴던 날들도 떠올랐다.
어느 날, 동구 할아버지가 이발소 바닥에 떨어진 걸레를 밟고 미끄러져 병원으로 실려가게 된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입원하게 되고, 얼마간 이발소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 달 후 할아버지는 돌아오셨는데, 늘 오시던 동네 어르신들이 발길이 끊긴 것 같았다. 동구는 길을 가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계신 걸 보게 된다.
동구는 할아버지들이 배신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 도연이와 매운맛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자기들은 낄낄대며 성공했다며 하이파이브를 해댔지만, 어르신들을 곤란하게 하는 장난에 불과했다.
동구는 왜 그랬을까? 46년 째 이발소집 딸인 나는 동구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된다. 어릴 때부터 이발소 의자 하나 차지하고 앉아 티비를 보고, 단골 손님들께 용돈깨나 받던 우리 아들도 동구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사실 할아버지들이 병문안 조차 오지 않았던 건, 할아버지가 한사코 오지 말라고 하셔서였지만 말이다.
요즘 동네에서 이발소를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반면에 미용실은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로 많이 생겨나고 있다. 오래전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이발소의 전통이 사라져 가는 걸 보니 지난 날의 이발소에 대한 추억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할아버지의 이발 기술의 대단함을 알고 그 기술을 가르쳐달라는 동구에게 동구 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그저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뭐든 반듯하고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 아빠도 그랬다. 사람의 머리 모양이 다 달라서 그 모양에 맞는 이발을 해줘야 하는데, 적은 금액을 받고도 늘 정성을 다하던 아빠의 모습은 장인의 모습이었다.
뭐든 쉽게 가려고 하고, 쉽게 이루려 하는 시대에 오래도록 정성을 담는 태도는 고지식해 보여도 지금 시대에도 꼭 필요한 마음 자세이다. 오래전 어른들의 일을 대하는 모습 속에서 젊은 사람들도 정성과 깊이를 배워갔으면 좋겠다.
양육자와 아이들이 이 책을 함께 읽고 아빠 엄마의 지난날 에피소드 한 꼭지 들려주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