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의자
고야마 요시코 지음, 가키모토 고조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끼는 만들기를 좋아하는 친구였나보다. 자기가 앉기 위한 의자를 만든 게 아니라, 자기의 꼬리를 닮은 작은 나무를 덧댄 의자를 만들어 커다란 나무 아래에 두었다. ‘아무나’라는 팻말과 함께.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

이후 당나귀가 도토리 한 바구니를 낑낑대며 메고 오다가 ‘아무나 의자’를 보고 그 위에 도토리를 올려놓고 나무에 기대어 낮잠을 한숨 잔다. 당나귀가 자는 동안 그곳을 지나는 동물들은 의도와 다른 친절들로 인해 배불리 먹고, 또 나누고, 배불리 먹고 또 나누며 가던 길을 간다. 당나귀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의자에 올려놓은 바구니를 보고 깜짝 놀란다. 왜 놀랐을까? 생각지 못한 당나귀의 기발한 대답을 책에서 확인하기를 바란다.

이 책 표지에는 의자를 만든 토끼와 의자가 나온다. 그런데 토끼는 의자를 나무 앞에 두고 간 이후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토끼가 남기고 간 ‘아무나 의자’만 끝까지 나올 뿐이다. 토끼가 의자를 만들 때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새들이 있다. 그러나 그 새들도 전부 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은 아니고, 단 한 마리의 새만 끝까지 나온다. 토끼가 만들어서 둔 의자의 영향력, 그리고 그 영향력이 퍼져 가는 모습을 본 새 한 마리. 이 후 새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이 부분이 궁금해졌다.

이 책은 ‘토끼의 의자’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책이다. 토끼의 의자를 보았을 때는 토끼의 선한 행동이 그게 다가왔었다. 그런데 ‘아무나 의자’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재출간되면서 영향력의 선봉에 있는 토끼는 가려지고, 형태 없는 영향력만 이어져가는 모습이 내 마음에도 새롭게 다가왔다. 선한 행동을 하는 나는 그저 그 자리를 뜨면 되고, 이어지는 선한 행동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브 앤 테이크가 더 익숙하고, 더치페이가 자연스럽고, 사생활이 지켜지는 게 당연한 합리적인 세상 속에서 나눔은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니며, 손해보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더 살찌우고, 채워주고, 높여주는 행동이다. 아니 그런 모든 결과물이 없다 해도 토끼처럼 그저 나누고 떠나는 것, 바람처럼 영향력만 전파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는 길일 것이다.

‘아무나 의자’는 1981년에 출간된 이후로 일본 누적 판매 부수 168만부를 기록했다고 한다. 지금 아이들의 부모님 세대에 출간된 책이 아직도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은 변해도 우리 삶에 더 필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일 것이다.

‘아무나 의자’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내 것만 챙기기보다 내 것을 나누는 아이들로 자라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