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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ㅣ 스콜라 창작 그림책 82
장프랑수아 세네샬 지음, 오카다 치아키 그림, 박재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평점 :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우리 가족 모두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
우리 할머니는 워낙 무서운 할머니셨기 때문에 따뜻함을 느끼기 어려웠지만, 귀가 어두우셔서 큰 소리로 대화를 이어가야 했던 우리 할아버지는, 늘 반달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야~ 허허허." 하셨다.
할머니집을 나오게 되어, 짐을 비우고, 책을 버릴 때였다. 할아버지가 고물을 모아 파실 때라 리어카에 채워지는 것을 보시며 무척 좋아하셨었다. 왜 버리는지도 모르고.
이사하는 날,
비가 내렸다.
할아버지는 1층 계단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시며,
"아이고, ♡♡야. 어디 가냐."
하셨다.
그 이후 할아버지는 치매와 노환으로 입원하셨고, 병원에서의 모습만 뵙고 이별하게 되었다.
이 책 속의 꼬마 여우는 할머니를 많이 사랑했다.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이 많았고, 할머니와 공유한 보물상자도 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신 할머니.
꼬마 여우는 할머니를 찾아다녔지만, 정말로 할머니는 어디에도 안 계셨다.
할머니 없이 비바람과 벼락을 견디는 것이 무서워 소리도 질렀다.
꼬마여우는 할머니에게 사랑한다고 쓴 편지를 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를 보며 자신을 다독여 간다.
그리고 전할 수 없는 편지를 쓴다.
할머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쓴다.
"할머니, 사랑해요.“
글을 쓴 작가 장프랑수아 세네샬은 인류학을 공부하며 아이티에 관한 글을 쓰다가 오랫동안 꿈꾸던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첫 책이다.
글의 주제가 슬픈 것도 있지만, 간결한 문장들 속에 문학성이 짙게 묻어나고, 다음 글로 넘어갈 때 독자들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여백을 주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다 못해 오열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오카다 치아키의 일러스트도 너무나 놀랍다. 미술관이 아닌 내 방에서 이렇게 감정이 깊이 담긴 작품을 볼 수 있어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글이 없는 장면에도 꼬마 여우의 마음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겸허하게 나 역시 미처 애도하지 못한 어떤 이별을 마주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 와 후회가 되지만,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게 되는 날 후회함이 없도록 한 번이라도 이 말은 꼭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도하지 못한 이별이 있는 어른,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특별한 추억이 있는 어린이들이 이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말을 전하지 못한 채 이별했더라도 보내지 못한 편지라도 써가며, 또 지난 시간들을 끌어와 좋은 것들을 마음껏 추억하며, 꼬마 여우처럼 ”이젠 안녕.“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