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드라큘라의 시 ㅣ 바람동시책 4
김개미 지음, 경자 그림 / 천개의바람 / 2023년 9월
평점 :
초2 아이가 대여섯 살 때, 불을 켜고 잔 적이 여러 날 있었다. 그맘 때 아이들이 많이들 그러듯이 무섭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5살된 둘째 아이도 자기 싫으면 하는 말이 괴물이 나올 것 같단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가 있는 방으로 자꾸만 들어와 칭얼거리는 날들이 많다.
아이들은 밤이면 무서운 생각이 드나 보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뭔가 나타날 것 같고, 꿈도 꾼다.
p.20
어둠 속의 괴물
어떤 아이는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괴물이 나타나
불을 켜면
감쪽같이 사라져
불을 끄면
또 나타나고
분명해
눈이 나빠 안경을 끼는 그 아이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일 때
눈이 아주 좋아
이렇게 무서운 걸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드라큘라, 귀신, 유령을 잘도 그려낸다. 그림 그리라고 하면 입가에 피가 묻어있는 사람을 그리는 아이들도 많이 봤다.
표지 제목부터 으스스한 「드라큘라의 시」를 쓴 김개미 시인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무서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펼쳐들 것을 기대하고 썼을 거란 생각이 든다.
p.86
나만 이상해서
장난감은 고장 나도
다 고장 나진 않는다
팔이 부러진 병정이
북을 치며 악대를 따라간다
오르골은 오래되어도
다 낡지는 않는다
금 간 뚜껑을 열면
새 노래가 시작된다
인형은 몸이 터져도
요양을 떠나지 않는다
바늘과 실로 배를 꿰매면
잠도 안 자고 논다
나만 이상해서
아무 일이 없는데도
웃지 못한다
아픈 데도 없는데
괜찮지가 않다
중간 중간에 코믹스러운 만화 몇 컷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시집의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외로움이다. 드라큘라가 외롭다고? 그는 그냥 상상 속의 인물, 우리의 피나 빨아먹는 괴기스러운 인간, 아니 악당일 뿐인데 그가 외롭다고?
다른 시들을 살펴보면, 다들 피하고 멀리하니 외롭겠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드라큘라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피하는 홀로 있는 누군가가 이렇게 외롭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혹 그 외로운 누군가가 아이라면 어쩐지 더 쓸쓸하고 마음이 아플 것만 같다. 외로운 아이가 시를 읽다가 위로를 얻고, 그렇지 않은 아이라면 외로움 속에 허덕이는 친구를 볼 수 있는 눈과 공감의 순간도 시를 읽다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니 약간 으스스해 하면서도 다음 주에 가니 또 읽어달라고 한다.
시지만 한편 한편 읽다보면 이야기가 되고, 마음 한 켠에 쓸쓸한 누군갈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책, 이 책은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