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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세상 ㅣ 베틀북 저학년 문고
조성자 지음, 한아름 그림 / 베틀북 / 2023년 10월
평점 :
책을 받고, 작가 소개를 보는데, 한 책의 제목에 눈이 머물렀다.
벌써 20여 년이 지났는데, 막 대학을 졸업하고 독서지도 한다고 어린이 책을 읽어대던 시절, <나는 싸기 대장의 형님>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어린 동생을 질투하는 형님의 이야기. 나는 동생이라 나만 부족하게 받았다고 느꼈었는데, 그 책을 보며 오빠가 참 힘들었겠다 싶은 맘을 가졌던 게 기억이 난다.
조성자 작가님은 아이들의 마음을 참 잘 읽어내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신간 「놀이터 세상」에서도 아이들의 예민하고 세밀한 감정까지도 너무나 잘 표현해 주셨다.
엄마면 다 되던 나이를 지나 친구가 좋아지는 나이. 혹여 친구를 잃을까, 다른 친구에게 가버릴까 서운함도 아쉬움도 가슴 깊이 넣어두고 쉽게 꺼내지 못하는 나이. 벌써 30년쯤 지난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나도 미래처럼 말을 많이 삼켰었다. 툭 내뱉는 친구들의 말에도, 얄밉게 실속 차리는 친구들의 모습에도 별 대꾸를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믿음’이라는 단어에 꽤나 예민한 편인데 그 때도 그 문제는 나에게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다.
미래는 소이를 만나기로 한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약속을 잘 지키려 하는 모습이 소이의 첫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놀이터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했고, 30분이 넘어가도 1시간이 넘어가도 오지 않는 건 약속을 어겼다기 보다 무슨일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나 늦게라도 달려와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니까, 자기가 가버린 후에 소이가 온다면 또 자기를 찾을 테니까 그런 걱정들로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미래는 오후 늦도록 놀이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흡수하고 있었다.
소이는 약속을 까먹은 걸까? 아니면 뒤늦게라도 약속을 지켰을까?
이 책은 3학년 여자아이들의 작은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사실은 두 친구의 약속이라는 키워드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일어나는 많은 만남들 속에서 외롭고, 속상한 마음들을 들을 수 있다. 어른들의 욕심때문에 힘들어진 아이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손주가 보고 싶은 할머니도 놀이터에 오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가님은 놀이터에서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키운다고 작가의 말에서 말씀하셨지만, 요즘의 놀이터는 아이 단독으로 와서 노는 일이 거의 없다. 아이는 놀고 양육자는 지켜본다.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작은 다툼도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 주는 모습을 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해버린 놀이터.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 사이의 질서와 규칙이 존재하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좋고 싫은 감정들을 통해 아이들은 한 뼘 더 성장한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놀고, 다른 방식으로 친구들을 대하는 처음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성장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아야 마음이 건강해져.”라는 미래 엄마의 말에 속이 시원했다. 난 뽀글이 아줌마처럼 아이를 잡으며(?) 양육하지는 않지만, 학원 뺑뺑이만 안 돌릴 뿐, 말로 행동으로 아이의 단단해질 기회를 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아무래도 양육자가 읽어야겠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읽으면 더 많이 공감하고 위로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놀이터 투어를 다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