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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책이잖아! ㅣ 올리 그림책 32
로렌츠 파울리 지음, 미리엄 체델리우스 그림, 이명아 옮김 / 올리 / 2023년 6월
평점 :
태어날 때부터 기계에 익숙하고,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되어 자라가는 알파세대들은 때가 되면 뒤집거나 걸음마를 하듯이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클릭하면 바로 답이 보여지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이니, 직접 답을 찾아야 하거나, 기다려서 답을 얻어야 하는 것들은 오히려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 되어버렸다.
「맙소사, 책이잖아!」 는 글을 모르지만 책을 좋아하는 조카와 스마트폰이 익숙하다 못해 책을 낯설어하는 이모의 책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글 작가 로렌츠 파울리는 스위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유명한데, 유치원교사로, 동화구연과 어린이 공연을 하는 활동가로도 그 지역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림작가인 미리엄 체델리우스와의 첫 번째 책, <저를 돌봐 주면 되죠!>로 2015년에 화이트레이븐상을 받기도 하였다.
어린이 책을 사랑하고, 어린이를 존중해 마지않는, 책에서 배운 것을 삶에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이명아번역가님이 글을 옮겼다는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표지부터 살펴보면, 작은 쥐가 자기 몸집보다 커다란 책을 머리가 세 개 달린 용에게 던진다. 그 때, 책이 주둥이에 딱 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용이 이렇게 말한다.
“맙소사! 책이잖아!”
이것은 마치, 쥐 따위가 나를 공격해? 근데 그 무기가 책이라고? 이런 속뜻이 담겨있는 말로 다가온다.
시작부터 맹랑한 쥐의 등장은 도대체 어떤 내용이 나오려는 거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런데 책 속에 더 반전이 있으니, 스마트폰에 익숙한 사람이 조카가 아닌, 이모라는 사실! 물론 나도 스마트폰을 좋아하고, 이제는 없으면 생활이 마비될 만큼 스마트폰에 과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들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조금은 바보 같은 이모의 모습은 웃기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설정이라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아이는 이모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앞에서 뒤로 넘어가며 읽는 거라고.
책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고, 책에서는 안 되는 게 없다고.
그렇다. 책에서는 생쥐가 괴물을 이기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글을 읽지 못해도 그림을 보며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해석할 수도 있다.
괴물에게서 살아남아 집에 돌아온 생쥐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라는 말을 한다.
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책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게 맞을까? 진짜일까? 바뀔 수는 없는 걸까? 많은 질문과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내용에 접근한다.
틀어놓으면 넋놓고 끝까지 보게 되는 영상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책을 보는 묘미.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는, 책을 꼭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앞에서 뒤로 읽어야하는 걸까?
이 책을 초등학교 2학년 아이와 함께 읽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엄마, 정말로 책에서는 안 되는 게 없어?”
“책은 확대할 수 없는데!”
“여기에서 보면 이쪽이 오른쪽이지만, 뒤돌아서 보면 이쪽이 오른쪽이야.”
책에 담긴 내용 한줄 한줄 놓치지 않고 다 반응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역시 평이한 내용보다는 ‘반전이 있는’ ‘현실에는 없지만 책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 자신에게도,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에 대한 질문을 남겨준 고마운 책이다.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 있는 모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게 훨씬 어색한 시대이지만, 반전이 많이 일어나길 꿈꿔본다.
맙소사! 지하철 문이 열렸는데, 다들 책을 읽고 있었어!
이런 반전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