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다. 무대의 중심에는 두 사람의 거장이 있다.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플라톤, 땅을 가리키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그림을 좀 확대해서 보면 플라톤은 (그냥 알파벳 식으로 읽으면) ‘티메오’라는 책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티카’라는 책을 들고 있다.


읽어 보지 않았지만, ‘티메오’, 그러니까 <티마이오스>는 우주의 탄생과 세계의 구성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손에 그의 베스트셀러 격이라 할 수 있는 <변명>이나 <향연>, 혹은 <국가>가 아닌 <티마이오스>가 들려져 있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에는 왜 <형이상학>이 아닌, ‘에티카’, 그러니까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들려져 있는가?

그건 아마도 라파엘로 당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한 방식 때문이 아닐까 한다. 관념론의 뿌리로 플라톤을, 경험론의 뿌리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놓는 방식 말이다. 따라서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로 당대의 관점으로 해석한/혹은 이해한 고대 그리스철학에 대한 훌륭한 그림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보면, 어쩌면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해석된 것보다 훨씬 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가깝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차이를, 막연히, 세계에 대한 해석/이해의 차이라는 식으로 돌릴 게 아니라, 플라톤이 씨름했던 현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씨름했던 현실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한국어 번역본을 산 건 지금부터 13년 전이다. 그때까지 나는 플라톤의 경우 엉성한 번역본으로나마 <변명>, <향연>, <국가> 등을 읽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요하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를 통해서 그의 사상을 일별했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하이데거의 <기술과 전향>을 읽게 되었고, 기억이 어렴풋한데, 원문이었는지, 역자해설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언급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읽어나갔던 하이데거의 책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물론 그 개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개념이라기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 당대의 일반적인 어휘였을 것이다. 기술(techne), 인식(episteme), 진리(aleteia), 산출(poiesis), 자연(physis), 활동(energeia), 능력(dynamis) 같은 어휘들에 허우적대면서 결국 그리스 고전 철학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관심도 모락모락 피어났다. 저 어휘들을 보라. 오늘날 우리가 쓰는 무수한 개념들이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에, 혹은 그리스 철학 사상에 맹아적으로나마 다 녹아 있는데, 공부해고픈 욕심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최명관 번역본을 구입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3.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플라톤의 책과는 또 다른 명쾌함이 있는 책이었다. 중간 중간 아리스토텔레스가 드는 예들이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물어가는 철학하는 사람의 전형을 이 책에서 보여 주었다. 그냥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들려주는 ‘중용’이라든지, ‘행복’의 개념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보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니까 ‘중용’, ‘행복’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별 생각 없이 쓰는 무미건조한 단어들이 오랜 철학적 고민의 산물인지를, 우리가 사는 동안 계속해서 곱씹어 보아야 할 말들인지를, 이런 말들을 숙고하는 것 속에 철학함이 있음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더불어 윤리학을 논하는 책에서 ‘정치학’에 대한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학문 일반에 대한 이야기가 왜 언급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윤리학 책이면서도 윤리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학, 철학 일반의 문제까지 건드리는 책이었다.    

물론 <니코마코스 윤리학> 중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학문적 인식에 대한 논의가 들어있는 제 6권이었다. 기예(techne), 학문적 인식(episteme), 실천적 지혜(phronesis), 철학적 지혜(sophia), 직관적 지성(nous) 등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부분 말이다. 잡 잡히지는 않은 이 개념들을 속 시원히 이해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때였다. 물론 한국어 번역본, 그것도 영어본에서 중역한 게 확실한 책만 가지고 이 개념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번역본과 해설서가 없었던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4.

올 초에 그리스 철학 전공자들이, 그리스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니코마코스 윤리학>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가급적 두툼한 해설서까지 더해 두 권의 책이 나오기를, 아니 개념어 사전까지 더해 세 권의 책이 나오길 바랬다. 그래서 그럴까. 비록 두툼하지만 한 권으로 된 책을 받은 지금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했다는 것에, 그래도 애쓴 흔적이 보이는 해설(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사상,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둘러싼 이야기,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구조에 대한 해설),  용어해설, 그리스-우리말 대조표가 있다는 걸로 만족해야 할까.


이 책은 의역이 아닌 직역을 택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흐름을 놓치면 다시 거듭 읽어야 하는 만년체가 수두룩하다. 따라서 독파가 그리 수월할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2002년에 옥스퍼드대학에서 출판한 브로디와 로우(Broadie & Rowe)의 탁월한 영역본을 옆에 놓고, 올해가 가기 전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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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0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무지 힘든데 리뷰를 잘쓰셨네요. 저도 대학원 다닐때 읽어 봤는데 어려워 죽는 줄 알았어요. 서광사에서 번역한 책이거든요. 아무튼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