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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어쩌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후의 묵시록이자, 인간성에 대한 실험의 소설이다. 만약 이 책이 사회주의 실험 이전에 나왔다면, 사회주의는 그 실험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이렇게 많이 쳐보기는 밀란 쿤데라와 움베르토 에코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생산양식'과 '지배양식'을 오랫도록 고민해 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년에 '존재양식'을 고민하는 하이데거주의자들이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 또한 다르지 않다.
차이라면 사라마구는 미학의 존재론으로 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게 이 책이 주는 강렬한 힘일 것이다.
근데, 이 책은 무엇보다 이명박 시대에 읽어야 할 책이다. 눈 먼 자들보다 먼저 눈먼자들이었던 '장님'들은 '이명박'을 지시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복화술사인 '의사의 아내'까지 눈을 멀게 했다면 이야기는 불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들었다. 어차피 전지적 작가 시점과 주인공 시점을 왔다갔다하는 소설인데. 그러나 저자는 '증언', '응시'가 가진 긍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단 한 사람의 눈 뜬 자를 남겨둔 게 아닐까 싶다. 사소한 것 같지만, '증언'과 '응시'가 역사에서는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데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그것은 이 소설은 어차피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떠듬떠듬 읽어가야 제 맛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