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해보니 혜인과는 2011년, 그녀가 졸업할 때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럼에도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이토록 허무하고, 쉽고, 단박에 잡혔다. 안부도 기별도 없이 용건만 말하고 끊었지만 그게 부족했다거나 미안하지 않았다는 점마저 익숙했다. - P12

누군가에게 고백을 들은 것도 누군가의 첫 연인이 되는 것도 처음이었으며, 무엇보다 연애나 사랑 같은 건 먼 훗날의 것이었지 그게 내 것이 될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시원하게 좋아, 하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심각하게 보수적이었거나 심각하게 조심스러웠거나 이미 심각한 게이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다 떠나서 나는 그저 상상력이 턱 없이 부족한 모범생이었다. - P33

봄밤의 불가해한 기운 속에서 혜인과 나는 손을 잡았다. 봄밤의 부드러운 바람이 없었어도 우리는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또 어른이 되어 좋은 점은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이 더는 열없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먼저 어른이 된 친구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 P45

조금은 서글픈 기분 속, 여전하게 뛰는 이 심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닿았다 떨어진 가슴의 감촉 역시 여전히 저릿한 감각으로 끈질기게 맴돌았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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