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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1 - 그대가 하늘이오
허수정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2월
평점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첫 만남에서부터 경상이(최시형의 본 이름)는 대범함인지 멍청함인지 모를, 바른소리를 양반네들 앞에서 해댄다. 이는 곧 그의 대범함과 특출난 심성을 통해 우리가 그를 기억하게 만들어 놓는 하나의 일화를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의 나의 그 뒤틀린 성격이 이러한 상황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내심 무모한 영웅심이야! 책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대게 한 인물을 그려낼 적엔 독자들이 그 인물을 우러러 볼 수 있고 남과 다름을 이해시킬 수 있는 어떤 특수한 일화를 곧잘 만들어 내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읽다보니,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배짱을 부린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제지소의 임금이 계속 밀리다보니, 자기도 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다른 가족들의 식솔들이 끼니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다보니 자신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었다.
첫 시작을 이렇게 시작한 그를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진실인지를 알 수 없는 정도까지 알아가는 동안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존귀한 가치인가?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의 존귀함을 어떻게 증명하고 그 가치를 척도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기준은 나만이 정할 수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가 내 앞에 있다면 붙잡고 물어보면 좋으련만...
그가 내세운 동학은 '인내천' - 사람, 만물이 곧 하늘 - 사상을 교리로 내세우고 신분제도등에 반기를 든 혁명적인 성격이 강해 포덕활동과 그네들이 염불하는 '시천주 조화정 ... '을 제외시키면 종교적인 색채가 그리 강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혁명처럼 여겨진 동학은 지금은 천도교란 이름으로 우리들 곁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동학과는 조금 다르게 확실한 종교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2부에서 해월은 부던히도 비폭력운동을 전개한다. 인도의 간디와는 또 다르게 조정과, 백성과, 동학을 따르는 사람들과도 싸워가며 혹은 외면하면서 그렇게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다. 동학이 조정의 눈밖에 나서 '타도동학'이 되어버린 것도 그 혼자만의 사투가 힘에 부쳤기 때문이리라~ 이 점이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사람의 존귀함을 아는 자들이 어찌도 그렇게 무참히 살육을 자행할 수 있었던 걸까?
이러한 비폭력과 동학의 가름침에 대한 해월의 생각이 담겨 있는 소절이 있어 옮겨 본다.
- 2부 (p. 56 / p. 57)
"야소(천주교)도 폭력에는 반대했다고 하더구나. 물론 그가 정말 상제의 아들인지는 모르겠다만, 백 마리의 양보단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을 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더구나. 옳은 얘기라고 생각한다. 서양 오랑캐의 행각 때문에 스승님께선 야소를 배척하셨지만, 넓은 의미에선 야소 역시 사람이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가름침을 남겼고, 그걸 시기한 사람들로 인해 참수당한 것을 보면 야소의 가르침 역시 우리 도의 본질적인 모습과 적잖이 닮아 있는게 아니겠느냐? 엄밀히 얘기하면 야소 역시 서양 오랑캐에 희생된 격이지."
"나와 도가 다르다 하여 배척하는 건 필시 분쟁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론 야소든 뭐든 혹세무민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도이든 사람의 행복을 염원하는 게 진실이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해월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교주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동학을 따르면 행복할거라 믿었기에 이곳 저곳을 떠돌며, 때론 끼니까지 구걸해 가며 포덕활동을 해왔었다.
그의 소리없는 말이 아직까지도 내게 전해진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다. 그렇게 존귀하다. 고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그건 다시 말해 하늘과 대지가 부모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은애하는 마음이야말로 한울님의 덕을 표현하는게 아니겠는가.' (2부 p.87~89)
그를 단순히 동학의 교주로만 알고 있던 내게 그는 '사람이라면 무릇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누구보다는 자연과 만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어느 한 사람의 행복도 놓치지 않고 지켜나가기 위해 애썼던 그의 모습에서 오늘의 나를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