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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의경의 우주콘서트
태의경 지음 / 동아시아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 속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을 헤아리곤 했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딱히 해결책이 나올리 없건만, 마냥 그러고 있는 게 좋았다.

그래도 그 황홀한 밤풍경은 내 마음을 위로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별이 한 가득 내 가슴으로 날아 와 그곳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안을 삼았던 위안이 되어 주었던 하늘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그래서 마음 한 켠이 아파온다.

태초부터 나를 잘 알아 온 따뜻한 지기처럼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제 맡은 바의 소임을 다할 양, 내 주위를 둘러 쳐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하늘을 이제야 나는 알아갈 마음이 생겼나 보다.

별자리 이름 하나 모르고, 천체 현상 하나 몰라도 잘 살아 온 내가 갑자기 이렇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우주를 여행하고자 했던 동기는 이렇게 단순했다. 뭐, 거창하게 '학문적 지식쌓기'라는 명분과는 충분히 다르다는 것이다. 니가 나를 봐 주었으니, 이젠 내가 널 봐주겠단 식일 뿐... 

# 들어가기 #

항상 어떤 책을 읽든 나는 목차를 확인한다. 큰 제목안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가히 연계성을 가지고 있는 소재로 글을 썼는지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5개의 Chapter로 큰 단락을 나누고 그 안에서 각 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꼭 누군가에게 우주 여행을 가이드 받는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는 인문과학도서의 특징인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나운서다. 천문학과 우주에 아주 관심이 많은 아나운서.

전문가가 아닌 아나운서가 글을 썼다는 이유만이, 독자들이 이 책을 재미난 이야기책으로 인식되게 하였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태의경의 글은 단순한 취미수준의 'ilke'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무엇때문에 인문과학도서의 딱딱한 형식을 깨고 독자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었을까? 그건 아주 다양한 소재와 흥미거리들의 개연성을 잘 접목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저자의 박학다식한 '앎'이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이다.

Chapter 1, 2

별은 수명이 있다. 태양 또한 현재 50억년을 살았으며 앞으로 50억년을 더 살 수 있는 별이다. 물론 우주 역시 유한한 값을 가지고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밝은 별이란 뜻의 '초신성'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폭발하면서 굉장한 빛을 내는데, 개중에 어떤 것은 낮에도 보일 만큼 밝게 빛나기도 한다. '게성운(M1)'도 그 초신성의 잔해라 한다. (p. 25) 

우리가 흔히 들어봤음직한 '블랙홀'은 태양의 15배가 넘는 질량을 가진 별이 수명을 다해 초신성으로 폭발 후, 내부로 수축하며 오그라들면서 강력한 중력장을 지니게 된다. 그 중력이 빛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수 있을 만큼 아주 강력하다고 하니, 우주여행시엔 이 검은 터널을 만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듯 하다.
'메시에 목록'에 등재된 110개의 천체 중 일부 천체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젖어들 때쯤이면 이 두 단락도 거의 끝이 나게 된다. 사실 일반인들이 우주와 별에 접근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유성'이 떨어지는 날에 그것들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게 고작이다. 사실 쏟아져 내리는 유성들을 보면서 소원을 빌어본 적은 없다. 그냥 너무 이뻐서 '우와~' 그러고나면 이미 내 시야에 유성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Chapet 3, 4

역사와 종교, 미술, 신화, 영화에 아우르는 잡다한 우주관련 일화들을 저자 자신만의 지식과 사유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 단락이 사실 가장 흥미로웠다.

예전에 동양과 서양은 모두 '혜성'을 불길한 징조로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신라 진평왕 16년에 승려 융천사가 지은 향가 중 [혜성가]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혜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라에 무슨 위기가 닥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불안한 참에, 왜병까지 침략해 온다는 소식이 들려 신라가 혼란에 빠지자, 융천사가 이 혼란을 가라앉히고자 이 혜성의 모양이 빗자루 같다는 데 착안해 '길 쓸 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며 흉조가 아닌 화랑이 가는 길을 쓸어 주는 길조의 별로 의미를 바꾸어 노래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혜성이란 존재에 대한 옛날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다는 것!

우주에 관련한 영화가 생각보단 참 많았다. 그 중 내가 본 것은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토탈 리콜'이란 영화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랑은 다르다. 저자가 가장 첫빼로 꼽는 영화는 '콘택트'였다. [콘택트]는 주인공 앨리가 '웜홀'을 통과해 베가성에서 지내 18시간의 경험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과학은 증명과 증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과학의 힘은 지속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종교 역시 증거를 댈 수 없는 학문이라는 것을 작가는 얘기한다. 똑같이 증명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종교는 증거도 없는데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 이 부분에 이르렀을 땐, 이 말이 가장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 아인슈타인

또한 저자는 반 고흐의 그림에 그려진 별자리와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에서 본 별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한다. 그만큼 별과 우주에 관련한 이야기는 아주 무궁무진하다.

Chapter 5

우리나라가 우주에 관심을 두고 인공위성 개발을 시작한 건 1989년부터였다. '최순달 박사'가 인공위성 기술을 배우기 위해 우수한 학생 5명을 유학을 보내고 그 이후 1992년에 처음 '우리별 1호'를 쏘아 올렸다. 선진국보다 많이 뒤늦게 시작했지만, 그 이후 계속된 노력으로 2008년이면 전남 외나로도에서 순수 우리 기술의 로켓발사대와 인공위성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 이야기와 사진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갈 수 있었던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천문학에 대한 이해가 가능했다고 하면 오만일까? 사실 단 한 권의 책으로 천문학을 이해하기란 어려워 보이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기본 재료의 맛을 봤으니, 이젠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보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기억나는 구절(p. 198)

'칼 세이건'은 분명히 말한다. 우주에는 약 4,000억 개의 크고 작은 별이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큰 우주 공간에 생명을 가진, 지능이 있는 존재가 우리뿐이라면 그것은 정말 엄청난 공간 낭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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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1 - 그대가 하늘이오
허수정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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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첫 만남에서부터 경상이(최시형의 본 이름)는 대범함인지 멍청함인지 모를, 바른소리를 양반네들 앞에서 해댄다. 이는 곧 그의 대범함과 특출난 심성을 통해 우리가 그를 기억하게 만들어 놓는 하나의 일화를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의 나의 그 뒤틀린 성격이 이러한 상황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내심 무모한 영웅심이야! 책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대게 한 인물을 그려낼 적엔 독자들이 그 인물을 우러러 볼 수 있고 남과 다름을 이해시킬 수 있는 어떤 특수한 일화를 곧잘 만들어 내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읽다보니,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배짱을 부린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제지소의 임금이 계속 밀리다보니, 자기도 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다른 가족들의 식솔들이 끼니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다보니 자신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었다.
 
첫 시작을 이렇게 시작한 그를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진실인지를 알 수 없는 정도까지 알아가는 동안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나 존귀한 가치인가?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의 존귀함을 어떻게 증명하고 그 가치를 척도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기준은 나만이 정할 수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가 내 앞에 있다면 붙잡고 물어보면 좋으련만...
 
그가 내세운 동학은 '인내천' - 사람, 만물이 곧 하늘 - 사상을 교리로 내세우고 신분제도등에 반기를 든 혁명적인 성격이 강해 포덕활동과 그네들이 염불하는 '시천주 조화정 ... '을 제외시키면 종교적인 색채가 그리 강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혁명처럼 여겨진 동학은 지금은 천도교란 이름으로 우리들 곁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동학과는 조금 다르게 확실한 종교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2부에서 해월은 부던히도 비폭력운동을 전개한다. 인도의 간디와는 또 다르게 조정과, 백성과, 동학을 따르는 사람들과도 싸워가며 혹은 외면하면서 그렇게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다. 동학이 조정의 눈밖에 나서 '타도동학'이 되어버린 것도 그 혼자만의 사투가 힘에 부쳤기 때문이리라~ 이 점이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사람의 존귀함을 아는 자들이 어찌도 그렇게 무참히 살육을 자행할 수 있었던 걸까?
이러한 비폭력과 동학의 가름침에 대한 해월의 생각이 담겨 있는 소절이 있어 옮겨 본다.
 
- 2부 (p. 56 / p. 57)
"야소(천주교)도 폭력에는 반대했다고 하더구나. 물론 그가 정말 상제의 아들인지는 모르겠다만, 백 마리의 양보단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을 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더구나. 옳은 얘기라고 생각한다. 서양 오랑캐의 행각 때문에 스승님께선 야소를 배척하셨지만, 넓은 의미에선 야소 역시 사람이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가름침을 남겼고, 그걸 시기한 사람들로 인해 참수당한 것을 보면 야소의 가르침 역시 우리 도의 본질적인 모습과 적잖이 닮아 있는게 아니겠느냐? 엄밀히 얘기하면 야소 역시 서양 오랑캐에 희생된 격이지."
 
"나와 도가 다르다 하여 배척하는 건 필시 분쟁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론 야소든 뭐든 혹세무민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도이든 사람의 행복을 염원하는 게 진실이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해월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교주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도 동학을 따르면 행복할거라 믿었기에 이곳 저곳을 떠돌며, 때론 끼니까지 구걸해 가며 포덕활동을 해왔었다.
그의 소리없는 말이 아직까지도 내게 전해진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다. 그렇게 존귀하다. 고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그건 다시 말해 하늘과 대지가 부모인 것이다. 그런 사람의 은애하는 마음이야말로 한울님의 덕을 표현하는게 아니겠는가.' (2부 p.87~89)
 
그를 단순히 동학의 교주로만 알고 있던 내게 그는 '사람이라면 무릇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누구보다는 자연과 만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어느 한 사람의 행복도 놓치지 않고 지켜나가기 위해 애썼던 그의 모습에서 오늘의 나를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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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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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세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을 가진 작가… 어릴 적부터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그녀를, 나는 이렇게 나이가 차고 나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 있자니, 샹들리에 불빛 앞에 선 언제 꺼질지 모르는 성냥불 인마냥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책 표지를 처음 본 순간, 사실 표지가 너무 맘에 안들어서, 언제쯤이나 읽게 될까 생각했었다. 당췌 매력을 찾을 수 없어 쉽사리 손에 잡히지가 않았던 이 작품은 몇날 몇일을 내 책장안에서 썩고 있었는데, 차안에서 볼만한 두께의 책을 찾다가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띄여 보게 된 터였다. 그 유명세에 맞는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혹여 내허외식(內虛外飾)이 아닌지 그게 궁금하기도 했었던 참이었는데, 어떻게 잘 들어 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이런 생각이 기우였단 건 얼마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런 오해를 단번에 불식시켜버릴 만큼의 그녀의 글은 하루키처럼 서로를 방관하고 있었고, 폴 오스터의 작품처럼 '무(無)'로 돌아가기도 했다. 또 공지영의 소설처럼 다분히 감성을 자극했으며, 성석제처럼 막힘없이 깔끔한 글솜씨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중국에서 일제침략이 자행되던 시절, 중국 소녀와 일본 군인(일명, 무명씨)의 운명같은 만남과 그 과정을 교차적인 플롯으로 구성되어진 소설이다.

쳰훵광장은 중국인들이 바둑을 두기 위해 모이는 장소이자, 곧 두 주인공들의 운명적 만남을 예고해주는 장소이다. 그리고 전쟁과 테러의 공포감이 유일하게 미치지 않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더욱 바둑에 몰두할 수 있고 세상 시름을 잠시나마 떨칠 수가 있다.


첫 장과 두 번째 장까진 특이한 이중 플롯 때문에 소설에서 말하는 ‘나’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렸었다. 곧 세 번째 장까지 읽어 내려가니, 그제서야 화자인 ‘나’가 두 명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구성이 처음인 나에겐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 '냉정과...'는 작가가 두 명이었던 만큼 파랑과 빨강의 자기 색깔을 확실히 규정짓고 얘기를 진행시켜, 두 권의 책으로 나왔었다. 물론 이는 '냉정'과 '열정'이란 반의어를 채택하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바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책하곤 다르게, 이 책은 각기 다른 삶 - 크게는 지배국과 피지배국을 모국으로 둔, 작게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직업(?)인 군인과 여학생 등에서 - 을 살아가고 있는 남녀의 얘기를 교차 나열하면서 다른 듯 보이지만, 실은 한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운명을 알아보기 위한 과정.

서로를 처음부터 이해하는게 아니라 탐색하면서 자신의 운명임을 알아보는 과정 말이다.


그 과정 속에 주위 사람들의 일반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체념의 일상을 두 주인공은 각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일상이 어쩐지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아 있어 뜨악해 하며 하루를 보내고 또 두 주인공의 색다른 매력에 빠져 그 이튿날을 보낸 뒤, 마지막 밤, 마지막 장에선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을 뽑아냈다.


특이한 구성에 이미 반해버린 나에게 심연의 감성까지 요구했던 그녀, ‘샨샤’.

그녀를 이제야 내 위시리스트 목록에 올림이 오히려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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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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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이력만으로도 이 책은 내가 선택하기에 충분했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엔 그의 발자국을 따라 조금씩만 움직이면 되었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은 이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실로 난감하다. 그래서 책장을 덮은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이렇게 책을 열게 되었다.

'조광조'란 인물을 이렇게 가까이 조우한 건 처음이다. 학창시절, 국사란 과목을 배우면서 잠깐 지나쳤었고 예전에 정선경이 열연한 '장희빈'이란 역사물에서 본 게 다다. 

그런 조광조를 떠올릴 땐 항상 '주초위왕'이란 네 글자와 함께 쌍을 이루며 내 기억속에 머무른다.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함으로 인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그의 지난날을 찬찬히 훑다보니 변화와 변혁을 꾀하는 게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임을 새삼 느낀다. 그것을 두려워 하는 이들의 모함이, 그의 뜻을 꺾어 왕도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음을 이제야 한탄해본들 무엇하겠냐만은 대대손손 그 명맥만은 지켜왔음에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유림 왕도편에서는 유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증적인 물음에 대한 답보다는 조광조란 인물이 유교를 위시로 어떤 행적을 해왔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 당시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이 위인전이었는데, 꼭 그 때 기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아마도 작가의 편애때문이 아닌가싶다. 작가는 조광조의 짧다면 짧은 삶을 높게 치하하고 있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한 결과이지 않나싶다. 

작가는 처음 이 책의 구상을 15년 전쯤에 했었다고 서문에 밝혀 두었다. 그만큼 사전답사와 기획과정이 길었음에 짐작해 보건데, 조광조란 인물의 됨됨이에 심히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가 행한 업적은 물론 높이 치하할 만하다. 백성들을 위한 향약 실시와 신분제적 질서에 따른 권력세습에 대항하여 '현량과'를 설치토록 해 인재육성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조선 초기 정치판의 흐름을 바꾸려 했던 이러한 노력들이 당시 훈구파들로 하여금 곱게 보일리 만무했고, 그 결과 '기묘사화'란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아마 이는 조광조가 정치가의 길로 들어섬과 동시에 예견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맹신과 실천이 화를 부르기 쉬운 일임을 그는 지난 역사를 떠올려 진즉 알았어야 했다. 왜 몰랐던 것일까? 알았지만 모른척 했던 것일까 아님 자신에겐 전혀 해당치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생각컨데, 아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런 화를 피하기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애초부터 나라의 녹을 먹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들이 작가가 만난 조광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다. 때론 독자가 작가도 의도치 않았던 부분들을 독자 나름대로 해석하고 교감을 만들어 나가기도 하는게 소설의 묘미가 아닌가?

간결한 문체와 기행문의 구조로 시작된 첫 단락부터 거부감없이 읽혔던 이 책은 출.퇴근 시간과 잠들기 1시간 전 시간대를 이용해서 3일만에 읽었다.

평균적으로 내 책읽는 시간을 봤을 땐 상당히 빨리 읽은 축에 속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용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껏 이 한권을 읽어 놓고선 유교가 어떻네. 저떻네 괴리망상적인 말을 할 마음은 없다. 단지 첫 단추를 아주 어렵게 끼운 것만으로 만족할 뿐이다.

2권부터는 본격적인 유교수업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내심 기대되고 설레인다. 서둘러 만나고 싶다. 진정한 유교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에 나는 오늘도 돌입한다.

 

---- 갖바치의 점괘(?) <<p. 219>> ----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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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정글 1
캔디스 부쉬넬 지음, 서남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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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즐거움은 이런 걸 두고 얘기한다.

사실 이 책은 2편이 궁금하지가 않다. 이 말은 '1편만으로도 충분히 전달이 가능한 스토리'라는 말도 되지만, 이 이후의 얘기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거란 생각에서이기도 하다.

TV방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섹스 인 더 시티]의 작가라 그런지 내용 전체가 익숙하다. 성공한 뉴요커 여성들의 일과 사랑얘기...

이전 작품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은 사랑보다는 사회적인 지위과 자신의 일을 더 중요시하는 여성 - 웬디, 니코, 빅토리 - 을 만날 수 있다는 것과, 이들이 여권 시장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페미니스트'의 전형적인 완악적인 모습을 삽입했으나, 어설픈 흉내내기에 그쳤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성공이라는 부르는 모습의 그 이상을 달리고 있으나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도전하고 매진한다. 그도 그럴것이, 40대에 성공을 이룬 남성들은 그 자리에  머무른다고 해서 뒤쳐지거나 실패할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쥐어주지 않는다. 물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여성은 좀 다르다는 것-. 잠시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머무르고 싶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면 이  '실패'라는 놈이 슬며시 다가와 다신 일어서지 못하게  바닥에다 강력접착제를 발라놓고는 여성이 앉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곤 어깨를 눌러 다신 일어서지 못하게 해놓을려고 덤벼든다.

적들은 도처에 널렸다. 누구에게도 지는 걸 참지 못하는 능력있는 여성들에게도 적들은 존재한다. 그게 바로 남성들이다.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여성들의 발목을 붙드는 것이 대부분 차별적 존재에 대한 평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경험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 반기를 든 주인공들의 일과 사랑을 막힘없는 글로 풀어나가고 있는 이 책은 유쾌하기도 하거니와 재미있다.

그렇다고 해도 예전부터 구별되어져 왔던 성(性)의 역할은 변함이 없기에, 이에 계속된 갈등과 불안은 존재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느끼는  '사랑'에 대한 원천적인 반응은 성공한 여성이든, 그렇지 않은 여성이든 비슷하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되든 이 책이 해피엔딩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여성들의 선택은 언제나 하나다. 굳이 내 입을 빌려 얘기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 알거라 생각한다.

물론 내 예상과 빗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빗나감'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완독해 볼 것을 권한다. 사실 나 역시도 내심 그걸 바라고 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 이 구절 ***

사랑은 예고없이 온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이...?

(p.205) 네가 그를 좋아한다고 느낄 때, 그가 괜찮은 사람,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는 좀 나은 사람이 아닐까 싶을 때 도는 그가 어쩌면 매우 남다르다고 문득 깨달았을 때 그 남자에 대해 갖게 되는 따스하고, 몽롱하고, 사랑스런 감정 말이야. 그건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야. 마음 속은 아늑해지고, 밖을 보면 모든 게 예쁘고 반짝거리는 기분.

실패에 대한 두려움 혹은 성공을 향한 갈망?

(p.322) 멋진 초록색 스윙코트를 입은 스물다섯 살짜리가 되는 건, 걱정 근심 하나없는 그 나이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다시 성공을 해야 하며, 필사적으로 자기 안 깊숙이에서 영감을 끌어내고 실패를 감수해야 하는 그 어지러운 중압감이 없는 나이가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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