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그 유명세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을 가진 작가… 어릴 적부터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그녀를, 나는 이렇게 나이가 차고 나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는 그녀의 작품을 읽고 있자니, 샹들리에 불빛 앞에 선 언제 꺼질지 모르는 성냥불 인마냥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책 표지를 처음 본 순간, 사실 표지가 너무 맘에 안들어서, 언제쯤이나 읽게 될까 생각했었다. 당췌 매력을 찾을 수 없어 쉽사리 손에 잡히지가 않았던 이 작품은 몇날 몇일을 내 책장안에서 썩고 있었는데, 차안에서 볼만한 두께의 책을 찾다가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띄여 보게 된 터였다. 그 유명세에 맞는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혹여 내허외식(內虛外飾)이 아닌지 그게 궁금하기도 했었던 참이었는데, 어떻게 잘 들어 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이런 생각이 기우였단 건 얼마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런 오해를 단번에 불식시켜버릴 만큼의 그녀의 글은 하루키처럼 서로를 방관하고 있었고, 폴 오스터의 작품처럼 '무(無)'로 돌아가기도 했다. 또 공지영의 소설처럼 다분히 감성을 자극했으며, 성석제처럼 막힘없이 깔끔한 글솜씨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중국에서 일제침략이 자행되던 시절, 중국 소녀와 일본 군인(일명, 무명씨)의 운명같은 만남과 그 과정을 교차적인 플롯으로 구성되어진 소설이다.
쳰훵광장은 중국인들이 바둑을 두기 위해 모이는 장소이자, 곧 두 주인공들의 운명적 만남을 예고해주는 장소이다. 그리고 전쟁과 테러의 공포감이 유일하게 미치지 않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더욱 바둑에 몰두할 수 있고 세상 시름을 잠시나마 떨칠 수가 있다.
첫 장과 두 번째 장까진 특이한 이중 플롯 때문에 소설에서 말하는 ‘나’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렸었다. 곧 세 번째 장까지 읽어 내려가니, 그제서야 화자인 ‘나’가 두 명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구성이 처음인 나에겐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 '냉정과...'는 작가가 두 명이었던 만큼 파랑과 빨강의 자기 색깔을 확실히 규정짓고 얘기를 진행시켜, 두 권의 책으로 나왔었다. 물론 이는 '냉정'과 '열정'이란 반의어를 채택하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바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책하곤 다르게, 이 책은 각기 다른 삶 - 크게는 지배국과 피지배국을 모국으로 둔, 작게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직업(?)인 군인과 여학생 등에서 - 을 살아가고 있는 남녀의 얘기를 교차 나열하면서 다른 듯 보이지만, 실은 한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운명을 알아보기 위한 과정.
서로를 처음부터 이해하는게 아니라 탐색하면서 자신의 운명임을 알아보는 과정 말이다.
그 과정 속에 주위 사람들의 일반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체념의 일상을 두 주인공은 각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일상이 어쩐지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아 있어 뜨악해 하며 하루를 보내고 또 두 주인공의 색다른 매력에 빠져 그 이튿날을 보낸 뒤, 마지막 밤, 마지막 장에선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을 뽑아냈다.
특이한 구성에 이미 반해버린 나에게 심연의 감성까지 요구했던 그녀, ‘샨샤’.
그녀를 이제야 내 위시리스트 목록에 올림이 오히려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