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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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이력만으로도 이 책은 내가 선택하기에 충분했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엔 그의 발자국을 따라 조금씩만 움직이면 되었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지금은 이 방대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실로 난감하다. 그래서 책장을 덮은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이렇게 책을 열게 되었다.

'조광조'란 인물을 이렇게 가까이 조우한 건 처음이다. 학창시절, 국사란 과목을 배우면서 잠깐 지나쳤었고 예전에 정선경이 열연한 '장희빈'이란 역사물에서 본 게 다다. 

그런 조광조를 떠올릴 땐 항상 '주초위왕'이란 네 글자와 함께 쌍을 이루며 내 기억속에 머무른다.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함으로 인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그의 지난날을 찬찬히 훑다보니 변화와 변혁을 꾀하는 게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임을 새삼 느낀다. 그것을 두려워 하는 이들의 모함이, 그의 뜻을 꺾어 왕도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음을 이제야 한탄해본들 무엇하겠냐만은 대대손손 그 명맥만은 지켜왔음에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유림 왕도편에서는 유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증적인 물음에 대한 답보다는 조광조란 인물이 유교를 위시로 어떤 행적을 해왔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 당시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이 위인전이었는데, 꼭 그 때 기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 아마도 작가의 편애때문이 아닌가싶다. 작가는 조광조의 짧다면 짧은 삶을 높게 치하하고 있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한 결과이지 않나싶다. 

작가는 처음 이 책의 구상을 15년 전쯤에 했었다고 서문에 밝혀 두었다. 그만큼 사전답사와 기획과정이 길었음에 짐작해 보건데, 조광조란 인물의 됨됨이에 심히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가 행한 업적은 물론 높이 치하할 만하다. 백성들을 위한 향약 실시와 신분제적 질서에 따른 권력세습에 대항하여 '현량과'를 설치토록 해 인재육성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조선 초기 정치판의 흐름을 바꾸려 했던 이러한 노력들이 당시 훈구파들로 하여금 곱게 보일리 만무했고, 그 결과 '기묘사화'란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아마 이는 조광조가 정치가의 길로 들어섬과 동시에 예견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맹신과 실천이 화를 부르기 쉬운 일임을 그는 지난 역사를 떠올려 진즉 알았어야 했다. 왜 몰랐던 것일까? 알았지만 모른척 했던 것일까 아님 자신에겐 전혀 해당치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생각컨데, 아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런 화를 피하기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애초부터 나라의 녹을 먹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들이 작가가 만난 조광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다. 때론 독자가 작가도 의도치 않았던 부분들을 독자 나름대로 해석하고 교감을 만들어 나가기도 하는게 소설의 묘미가 아닌가?

간결한 문체와 기행문의 구조로 시작된 첫 단락부터 거부감없이 읽혔던 이 책은 출.퇴근 시간과 잠들기 1시간 전 시간대를 이용해서 3일만에 읽었다.

평균적으로 내 책읽는 시간을 봤을 땐 상당히 빨리 읽은 축에 속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용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껏 이 한권을 읽어 놓고선 유교가 어떻네. 저떻네 괴리망상적인 말을 할 마음은 없다. 단지 첫 단추를 아주 어렵게 끼운 것만으로 만족할 뿐이다.

2권부터는 본격적인 유교수업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내심 기대되고 설레인다. 서둘러 만나고 싶다. 진정한 유교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에 나는 오늘도 돌입한다.

 

---- 갖바치의 점괘(?) <<p. 219>> ----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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