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최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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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느낌(35p-감각): 언어가 구체적인 현실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바로 법인 것이다. 관념과 실재, 언어와 사물이 만나는 지점이 설정되게 되었다. 따라서 관념(철학적 사유, 논리의 범주)은 정치성과 권위를 이성으로부터 부름받는다. 이성이 감각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적(기독교적) 죄의식은 그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이성의 체벌이다. 왜냐하면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감각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하지만 감각은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관념으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감각에 대한 역사의 궤적은 종교와, 사회, 정치, 사상 모두에까지 영향을 미침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감각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성의 역할은 교환 될 것이다. 감각은 순수한 지각의 소여로서 찬양받을 것이며, 지각 이후의 불온한 것들에 대한 응징을 가할 운명을 예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성의 범주들(논리, 관념, 사상, 이데올로기, 정치, 학문 등)은 금기의 영역으로 속죄의식(인간은 근원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정당성을 요구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살아있음조차 불안 위에 구조되었다는 것이, 그리고 감각적 쾌락조차 무언가에 대한 대가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는 것과 같이)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녀의 이 느낌은 그런 여성성의 부활에 대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닫아버리고 감각의 극점으로까지 밀고가서 감각밖에 남기지 않는 주인공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말했듯이 거시의 극에 놓인 채 미시의 (여성의) 소리지름, 여성의 정체성, 여성의 존재성을 대변하기 위한 가치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소리치고 있다. 인간의 감각은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감각은 지각을 통제하고 이성을 규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인간의 감각은 <말할 수> 있다. 

   

    2. 틈(150p-기억):  아련하면서도 말하지 않은 채 분위기와 기운으로 소설을 밀어내버리는 잔잔하지 않은 오히려 거대한 여운. 인과를 밀어내고 다만 현실의 단면만을 절연해서 보여주는 것에서 오는 것. 독자의 상상은 열려 있고, 작품으로 빨려들어가고, 마지막 달밤의 영상처럼 은은하게 슬프게 묘사되어지는 풍경이 그래서 기억 같다. 구멍은 그래서 분위기로 상징되는 아련함의 도구, 현실을 낭만화하기 위해 인간의 인식이 가져오는 결점, 기억에 대한 망각이 주는 늬앙스인 것 같고 여성성의 비극을 훨씬 넘어 말해지는 것 성에 대한 본질적으로 내포된 비극을 비유하는 것 같고, 그러나 이런 늬앙스를 위해 성을 인식하게 되는 아이들이 통로이지만 작가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위해 풍경이 등장되어 지게 되는 것이다. 기억에 대한 관념적 사색, 기억의 현존성의 요구, 현재에 침투하는 과거의 성질에 대한 탐구, 어찌보면 근원적으로 물리성을 초월하고 싶은 낭만적 노발리스.

           

    철학적인 작품이 사회성을 지닐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어필이 되는 소설이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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