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철 옮김 / 범우사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3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 이제는 모두의 관심 밖에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십명의 각기 다른 생각의 첨단을 보여주는 인물묘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가령 <태백산맥>같은 '대하소설'과 비교해보자.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은 훨씬 더 다양하고 다면적으로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독해법은 책 말미의 번역자 이철씨의 해설과 같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리스 정교에의 귀의와 러시아의 전통사상을 옹호하며 이 소설 주인공들의 서구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무신론적인 철학을 비판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작중화자의 논리와 작가의 논리사이에 간격이 있어, 작가는 이 이야기가 다양한 각도에서 읽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악령'이란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잠시 후에 살펴볼 것처럼 인간의 오래된 습성이다. 그것이 오늘의 내게 낡은 이 소설이 감동적이었던 까닭이 아닐까? 이렇게 다르게 읽은 소설의 부분을 나누어 살펴보자.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의 주인공은 서양교육을 받았으나 생각은 어린애 같은 늙은 퇴직교수가 있다. 그는 마치 드라마 '아줌마'의 '장진구'처럼 조롱되고 있으나 한편 순진하게 우스꽝스럽고 그 자신이 인생의 모순에 괴로워하는 가련한 인물이다. 열에 들뜬 상태에서, '너희 청년들이 폭동을 계획하는 등의 일은 오래된 이상향에의 열정의 전통아래 있는 거다. 너희는 우리와 같다'라는 어떻게보면 정곡을 (우연히) 찌르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가장 희화화되어 있는 3장의 첫부분의 '축제'도 그렇다. 축제를 준비하며 빚을 내어 딸들은 옷을 장만하고, 귀부인들은 허세를 부리고, 부랑패들은 조롱하는 음악과 그림을 창작한다. 사람들은 축제를 준비하며 모이고, 웃고, 싸우고, 운다. 축제의 현장에서 '당대의 문호'는 바보가 되고, 폭동주동자들의 계획과 무관하게 폭동이 발생해 버린다. 모두가 비속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혁명적인 힘이 결집되고 걷잡을 수 없이 발산된다.

이 축제 뒤에는, 소설의 첫머리에 적힌 '예수가 악령을 미치광이로부터 돼지무리로 옮겨놓자, 돼지들은 모두 강으로 쓸려가 쳐박혔다'라는 성경의 구절이 실현된다. 이 악령이란 소설 속 퇴직교수의 해석에서나 전통적인 독해법에서 말하는 사회주의 무신론 사상에 한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악령은 허위와 악의에 찬 믿음을 만들어내고 거기 휩쓸려서 일들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습성이다. 이 악령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또 인간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이 말하는데로, '이것 없이는 인간이 살 수 없는 무엇'이다.

축제와 대소동의 와중에 삼년전 남편을 떠났던 아내는 해산하려고 남편 곁으로 찾아온다. 남편은 기꺼이 아내를 맞이한다. 냉소적이지만 일 잘하는 산파의 등장과 새 생명의 탄생은 참 아름다운 부분이다. 실은 '악령'의 핵심인물 스따브로긴이 고백한 바, 인간을 대상으로 비정하게 실험한 결과 탄생한 아이다. 비열한 파괴와 성스러운 창조가 함께가는 악령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렇게 내가 읽은 '악령'에서 작가는 특히 러시아의 장래의 투쟁과 혁명과 변질의 모습, 또 이상향에의 인간의 동경과 인간의 모순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철저하게 다루고 있다. 책장을 덮을 때, '악령'에 빠져들어 살인하고 자살한 숱한 인물들이 이해할만하고 가련한 사람들, 즉 내 자신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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