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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시문학연구
오성호 / 태학사 / 1993년 11월
평점 :
절판
오성호는 이 책에서 서정양식으로서의 시의 특수성을 견지하면서 이를 유물 변증법적 반영론으로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리얼리즘의 요건을 탐색한다. 일반 미학-반영론적 미학을 통해 서정이란 특수한 범주를 설정함으로써 탄탄한 이론적 고리를 만들면서 시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는 입장을 가질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먼저 해명해야 할 문제는 시 역시 소설처럼 현실을 총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그는 <시에 있어서 리얼리즘 문제에 관한 시론>이라는 책 속의 대표적 논문에서 '시는 전적으로 시인의 주관성에 의존한다.'며 못박고는 '시인의 주관, 내면세계란 것은 객관적 현실이 시인의 의식 속에 반영된 것'(281면)이라며 반영론적으로 시에 대한 설명을 한정짓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리얼리즘이라고 오성호가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성호는 전형성이라는 개념을 끌어오면서 특정 시가 리얼리즘적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오성호는 시인의 '목소리'를 중요시한다.
시는 시의 '목소리' 주인공의 '주관적'인 체험 내용을 진술한 것이 곧 그 내용과 형식을 이룬다고 보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서정적 주체라고 이름짓는다. 서정적 주체는 '시인의 창조적 자아가 객관화된 시적 형상'(286면)인데, 그것은 시인의 주관에 전적으로 종속된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환경이나 상황은 서정적 주체의 체험 속에 완전히 용해되어 있기에 시에서는 인물의 전형성이나 상황의 전형성을 논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서정적 주체가 소설 속에서의 인물처럼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는 대신 '목소리'로서만 감지되고 간접적으로만 확인되기 때문에 서정적 주체가 진술하고 있는 내용과 진술방식, 그리고 그것에 의해 환기되는 정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서정적 주체의 주객 통일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 표현된 정서는 이미 그 속에 주객관계를 통해 획득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가치 평가, 태도 등을 포괄한다. 오성호는 이 정서에 전형을 관련시켜 '이 서정적 주체,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서정적 주체가 환기하는 정서, 혹은 정서적 체험'으로 그것을 설명한다.
즉 시의 서정적 주체가 환기하는 정서적 체험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의 정서로 형상화되었으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의사회의 객관적인 삶에서 우러나는 보편적 정서를 환기하는 것이 시의 전형성 획득 여보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리란 것이다. (289면)
이러한 주장은 전형의 개념만이 리얼리즘의 척도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인데, 하지만 무리한 결론을 낳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정서의 전형성'이란 개념은 실로 당혹스러운 개념이 아닐 수 없는데, 정서가 감성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한다면 과연 감성에도 전형적인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전형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기쁨의 전형성'이란? 이런 개념은 실제 작품 평가에 작용하면 또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기도 하다. 이용악의 <낡은 집>의 전형성을, 정서의 전형성에서 찾은 결과, '전망의 부재 상태에서 허덕이는 서정적 주체와 그것이 환기하는 절망적인 비애'(297)라는 주장이 도출되는 것이다.
이 시가 발표된 1930년대 후반의 '정서의 전형성'이 이러하다면 당시의 리얼리즘 시는 절망적인 비애의 정서를 보여주는 시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이론은 시 창작을 위축시키는 실제 비평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시의 특수성으로서 정서를 들고 정서의 전형성을 가치 평가의 중심에 두면서 그 정서를 시인의 주관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하면, 그 정서의 최대치는 투쟁적 정서라고 주장할 수 있고 투쟁성의 정서가 우러나오지 않으면 시인의 사람됨이 아직 그에 못미쳤다는 식의 평론에 이론적 기반을 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시의 특성을 살리려다가 시를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오성호의 논의엔 잠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