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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ㅣ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7
모리 오가이 지음, 김용기 옮김 / 소화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현 일본 문학은 매우 활발히 소개되고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지만, 실상 일본 근대 문학의 고전들은 소개가 거의 되지 않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나쯔메 소오세끼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모리 오가이의 장편 소설 <청년>이 소개된 것은 일본 문학을 제대로 아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일이다.
<청년>은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 지망생 쥰이찌가 본격적으로 당시 일본의 가장 첨단적인 모습을 통해 소설을 쓰기 위해 동경으로 상경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나 소설 쓰기는 진척되지 않는다. 급격한 자본주의화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큰 혼동에 싸여 있게 된 이 일본의 수도는 시골뜨기 쥰이찌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경의 사회상과 문화를 그 심층에 파고들어 소설가적 안목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여러 새로운 체험의 충격에서 생각을 가다듬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소설 쓰기보다는, 일기를 쓰며 근대 동경에 대해 적응하지 못한 자신을 성찰한다. 특히 자신의 동정을 주게 된 사카이 부인과의 사건과, 곧 이은 그녀에 대한 환멸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그 사건으로 그는 당시 동경의 근대적 새로움이라는 것이 하나의 가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사카이 부인에게 치욕을 느끼고 난 후 새로운 충일감으로 소설을 쓰고자 마음먹게 되었을 때 그 소설의 소재를 고향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들려준 전설에서 따오려고 한 쥰이찌의 결심이 그것을 말해준다.(그런데 바로 이 소설가 지망생이 갖가지 체험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구도는 바로 성장 소설의 구도라 할 수 있다.)
한데, 근대 동경의 이야기가 아닌 대대로 무려 내려온 전통적 이야기에서 근대적 문학 장르인 소설을 개척한다는 이 아이러니칼한 결심은, 소설을 자본주의적 근대의 퇴폐성에서 구해내려는 결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당대 일본에서 맹위를 떨치던 자연주의 문학으로부터 소설을 빼내야 한다는 결심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그러므로 모리 오가이의 근대 동경에 대한 세태 비판이자 탈자연주의라는 자기 문학의 전망을 끌어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모리 오가이는 이 소설을 쓰고 정말로 전설을 활용하는 역사소설로 나아갔다고 한다.
이 소설을 통해 초창기 일본 근대 소설의 한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근대 초기의 혼란상 속에서 자신을 정립하고자 하는 한 청년의 모습에서 참다운 근대 정신을 정립하려고하는 일본 문인들의 노력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 고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런 소설들이 더 많이 소개되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통해 피상적 일본관, 일본인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번역이 직역투라 한국어로서는 어색하다는 점이다. 윤문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굴곡이 별로 없어 좀 지겨운 느낌이 든다라는 점도 이야기해볼 만하다. 대체로 일본 자연주의 소설이 그렇다고 하는데 자연주의에 반대하는 결론을 내장하고 있는 이 소설도 역시 자연주의적으로 쓰여졌다고 생각되어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실제 인생에 극 같은 큰 굴곡은 별로 없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이 삶을 수놓는 것이라면 일본 자연주의 소설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삶 자체를 그리려고 하였던 것 같다. 이 소설의 끝을 읽으면 대단원은 보이지 않고 사건이 진행되다 만듯한 느낌이 든다. 인생에 대단원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