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의 시정신
최두석 / 실천문학사 / 199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리얼리즘을 선도적으로 주장한 최두석의 글을 모은 책이 <리얼리즘의 시정신>이다. 이 책에서 1984년에 발표된 1)'시와 리얼리즘', 89년에 발표된 2)'이야기시론', 90년에 발표된 3)'리얼리즘의 시정신'은 그의 리얼리즘 시론의 골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들이다.

1)에서는 서정과 서사를 구분하는 기준과 시와 소설을 구분하는 기준은 서로 다른 위상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서정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시의 대상 영역을 사건, 이미지, 감정, 생각이라고 하고 리얼리즘 시의 가능성은 능동적인 생각이나 동태적인 사건에 넓게 열려 있다고 주장한다.(27면) 또한 작품 자체에 현실의 구조적 진실이 얼마나 잘 드러나 있는가에 사회의 진보에 대한 문학의 기여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의 구조적 진실이란 사회의 총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는 전망의 충실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2)는 이러한 시의 리얼리즘 달성을 위한 창작 방법으로 이야기 시를 제안한다. '가치가 왜곡되어 있는 시대에 가치 있는 이야기는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의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17면)고 전제하고, 일인칭 양식이라는 시에서도 이야기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역사적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사람살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서는 시 속에서 이야기를 제대로 구사할 필요가 있다. 즉 서사지향성 문제는 시의 현실 대응력 문제이고 시에서의 리얼리즘 실현 문제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성취에의 노력에 의해 현실을 부정하는 진보주의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비관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3)은 이러한 현실주의의 정신을 내세워 80년대 말에 나타나는 경향인 비관주의와 진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한 글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전망을 찾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비관주의나 민중을 선동의 대상으로 삼는 진보주의보다 창작자에게 중요한 것은 '부당한 사회 현실 속에서 그들(대중들-인용자)의 욕망이 어떻게 억눌리고 왜곡된 형태로 발산되는 가를 보여주는 전형적 형상을 찾아내는 일'(46면)이라는 것이다.

최두석이 제기한 리얼리즘 시론은 당시 체계적으로 시의 리얼리즘을 밝힌 논의가 없다라는 것을 감안하면 선구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글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의 리얼리즘시론은 문학과 시의 본질에 대한 나름대로의 논리를 통해서 도출되고 있기에 정연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또한 많은 반론에 부딪칠 수도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리얼리즘 시를 서사와 사상으로 묶어 놓는다면 시가 가진 무기, 즉 독자의 정서를 움직여 삶에 대한 다른 태도와 생각을 갖게 만든다는 특유한 효과를 시에서 제거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시가 인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충격적 정서 체험을 통해 가져다 주는 것이 그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정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 시의 리얼리즘을 말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의 이론의 기반이 되는 감정, 사건, 이미지, 생각에 기초하여 시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은 시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고 여타 다른 장르, 특히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우선 시의 특수성을 밝힌 후에 시적 대상을 설정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지만 반론격으로 제시한 나의 의견도 모자란 부분이 많다. 최두석의 시론은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으나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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