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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과의식사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나츠메 소오세끼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 이 책은, 자전적 성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도입과 이로 인한 가족 관계의 변모, 그리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의 지식인에 대한 날카로운 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어렵사리 영국 유학을 갖다 오고 대학 강사가 된 겐조에게 옛날 헤어졌던 양아버지가 나타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이 양아버지의 등장을 통해 겐조는 별로 유쾌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여 도달하게 된 현재의 자기를 성찰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겐조의 자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근대에 돌입한 일본인의 문제를 짚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뿌리없다고 생각하는 겐조의 내면적 방황은 바로 근대 사회 관계의 핵심적 고리라고 할 수 있는 돈 때문이기에 그렇다. 겐조가 양아들로 시마다 밑에 들어간 것은 막내인 겐조를 아버지가 양육할 능력이 별 없었기 대문이었는 데다가, 시마다가 이혼한 후 다시 친아버지 밑으로 겐조가 들어간 후 양아버지도 금전상 어려워지자 겐조를 양육했다는 사실로 아버지로부터 돈을 뜯어 가려고 했다. 겐조는 아들로서의 애정 대상이 아니라 돈을 위해 주고받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가 두 아버지를 모두 싫어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두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시마다의 등장은 뿌리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현재의 그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가족 아래서의 개인의 존재를 날카롭게 집어내는데 이 소설의 문제성은 끝나지 않는다. 묻혀져 있던 겐조의 주변 가족과 겐조의 만남을 한 축으로 하면서(종축이라고 하자) 그 만남에 대한 아내와의 대화가 또 소설의 한 축(횡축이라 하자)을 이루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면이 많은 것이다. 종축에 서 있는 겐조의 흔들림은 횡축의 아내와의 관계에도 투영되어 있다. 근대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근대적 지식인은 자신의 과거, 그리고 그에 얽혀 들어가는 현재의 생활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방편으로 지식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 겐조의 모습에서, 특히 생활에 밀착해있는 아내와의 말싸움에 지식을 늘어놓으며 아내를 짓누르려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러므로 근대 일본 지식인 탄생의 사회 역사적 배경을 가족 관계를 통해 드러내고, 그리하여 탄생된 그 지식인이 삶에서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가 날카롭게 해부한 소설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거창하다고 할 이러한 문제들은 그러나 겐조의 일상사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 소설은 좀 지루하리만큼 큰 사건이나 굴곡이 없다. 하지만 양아버지가 나타나 돈을 얻어 가는 이 작은 사건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조금씩 드러내어 뿌리까지 파헤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뿌리를 보기 위해서는 차분하고 꼼꼼한, 그리고 인내력 있는 독서를 이 책은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