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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자식들 외
옥타비오 파스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흙의 자식들>은 윤호병 역의 <낭만주의에서 아방가르드까지의 현대시론>-원제는 '흙의 자식들'이다-과 1990년에 출간된 <타자의 목소리>라는 두 권의 책을 한 권에 엮어 번역한 것이다. 스페인어에서 직접 번역한 김은중의 이 책 번역이 훨씬 좋다. 발된 한국어 번역문으로 외국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맥락이 잡히지 않는 번역글을 읽는 괴로움은 다른 사람도 많이 겪어 잘 알리라.
<타자의 목소리>에 실린 글들에 대해서만 언급을 해보겠다. 이 책은 또 시기를 달리 한 세편의 시론 글을 모은 [시와 근대성]과 세기말 문학 상황을 다룬 [시와 세기말]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시와 근대성] 중 2. 단절과 수렴 부분은 <낭만주의에서 아방가르드까지의 현대시론>을 요약한 글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1. 이야기하기와 노래하기는 장시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3, 시, 신화, 혁명은 혁명의 역사에 대한 비판과 혁명과 시의 관계를 다시 살피고 있다. 특히, 3장과 [시와 세기말]은 1990년에 쓰여진 글인데, 이 글들은 <낭만주의->와 어느 정도 시각차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혁명에 대한 비판이 또렷하게 전개되고 비난의 어조가 강화되면서 자유 민주주의의 의의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시장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세기말의 시적 상황의 문제로서 시가 읽히지 않는다거나 시가 더 이상 걸작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는 진단이 잘못된 것이라 비판하면서, 시는 어느 때보다도 많이 읽히고 있으며 걸작은 이후에 평가되는 것이기에 아직 모르는 것이고 이전의 걸작들도 당시대에 그런 명예를 얻은 적이 거의 없다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출판이 거대 자본화되고 독서가 소비화 되는 측면이라고 한다. 글을 상품 논리화 시켜 유통시키는 시장 자본주의 논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때 비판되는 것은 <낭만주의->에서 파스가 근대시의 대안으로 내세웠던 '지금-여기'라는 현재의 시간의식이다. 자본주의 시장 판에서의 소비는 지금-여기의 논리라는 것이다. 책은 지금 소비되고 망각된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성격을 증폭시킨 책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 파스가 이전 책에서 보였던 전위주의적 충동은 거의 사라진다. 소비 논리에 맞서 파스가 내세우는 것은 '고전성'이다. 근대시는 이전 문학 조류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일이었으며, 실제로 가려졌던 과거의 문학조류에서 전통을 찾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스는 문학 고전에 대한 교육이 미래의 정치가를 위해서도 행해져야 하며 문학교육 역시 고전을, 그것을 사회학이나 정신분석학의 자료로 삼지 않고 문학으로서, 가르쳐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 공산주의 이후 문명을 구상할 새로운 정치 사상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또한 자유와 평등 원리를 잇는 형제애를 심는 작용을 할 것이라 그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는 일자와 다자 사이를 맺어주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으로 조화와 일치의 정신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시학을 보면 유기체적 시학으로, 전위적 충동을 질서를 세우는 것으로 해석하는, 보수주의로 회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낭만주의->에서의 '지금-여기'의 시학은 신좌파의 새로운 반체제 운동에 고무받아 제기된 것임이 밝혀져 있었다. 1990년, 팔순의 노시인은 이제 고전과 인문교육에 미래를 걸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은 오늘날, 노시인의 진단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안 역시 공유해야할까? 미래를 생각한다는 면에서 이젠 이세상 사람이 아닌 노시인이나 나나 아직 근대성의 자식인지 모른다. 70년대에 내논 그의 대안은 숙고할 수 있지만 90년대 내논 그의 대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근대성의 역설이 아닐까.